“돈만 생각한다면 벌써 팔고 도망갔어야죠.”
과천시청 정문 앞에서 만난 권순무 씨는 집값 때문에 데이터센터를 반대한다는 말에 선을 그었다. 올해 은퇴했다는 권 씨는 입주 예정인 아파트 바로 앞 데이터센터 건립을 막기 위해 이곳에 나왔다.
집회에 나온 것은 권 씨만이 아니었다. 역시 입주예정자인 A씨에 따르면 아파트와 데이터센터 예정부지는 가장 가까운 곳을 기준으로 25m 떨어져 있다. A씨는 “집값은 부수적인 문제”라며 “당장 제가 입주해서 들어가 살아야 되는데 건강이 걱정”이라고 했다. 권 씨와 A씨는 모두 과천시 주암동에 건설중인 아파트 디에이치아델스타의 입주예정자다.
아델스타 입주예정자들은 9월 7일부터 과천시청 앞 집회를 매일 이어왔다. A씨는 일곱 달 된 아기를 데리고 나오는 주민도 있고, 임신한 몸으로 집회에 나오는 이들도 있다며 “우리 집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시는 것”이라고 전했다.
아이들과 그 집에서 살아야 하는 A씨는 냉각설비의 저주파 소음과 열섬, 화재 위험을 걱정하며 “가족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영향을 조사하고 주거지와의 이격거리를 정해주길 바라지만, “입법을 기다리기에는 저희 입장에서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입법이 이뤄지는 동안 과천시가 건축심의 등 건립 절차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매일 시청 앞 집회에 나섰다.

같은 회사, 인접 부지, 다른 데이터센터?…‘쪼개기’ 의혹
건립에 반대하는 입주예정자 권 씨는 “상식적으로 7·8·9를 같이 지으면 되잖아요”라며 분노했다. 데이터센터가 줄지어 들어설 주암지구 업무시설용지 1-7·1-8·1-9블록은 모두 과천주암대토개발제1호리츠의 투자대상 부지다. 붙어 있는 부지 3개에 데이터센터 3개가 들어서는데, 모두 같은 부동산투자회사의 사업이라는 것이다. 인근 1-1·1-2블록 데이터센터는 마스턴투자운용이 운용하는 각각의 리츠가 추진한다.
주민들이 ‘쪼개기’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전력 사용을 심사하는 기준 때문이다. 분산에너지법 시행령상 전력계통영향평가의 규모 기준은 전기사용 규모 10MW(메가와트) 이상이다. 과천주암대토리츠가 10월 6일 주민설명회에서 밝힌 1-9블록 데이터센터의 수전용량은 9.5MW로, 기준보다 0.5MW 적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결과를 보면, 전기사용 규모 10MW 이상으로 평가를 받은 수도권 데이터센터 사업 27건 중 19건, 약 70%가 통과하지 못했다. 사업을 10MW 미만으로 나눠 각각 별개 사업으로 인정받으면 평가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씨도 같은 리츠의 인접 사업들을 나누는 방식을 두고 “결론적으로는 편법이에요”라고 했다. 같은 회사가 추진하는 사업을 나눠 평가를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사업을 추진하는 대토지주들의 설명은 다르다. 배성식 주암 대토지주협의회 위원장은 기자와의 전화에서 쪼개기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주암 대토지주협의회는 주암지구 개발로 LH에 넘긴 땅의 대가를 현금 대신 새로 조성될 땅으로 받는 대토보상을 택한 토지주들의 모임이다. 배 위원장은 센터마다 운영주체가 다르다며 “한 업체에다가 다 판다 그러면 쪼개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각자 다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운영사가 다르다는 설명만으로는 같은 사업자가 개발사업을 나눠 평가를 피하려 한다는 의혹을 해소하기 어렵다.

화재·저주파·열섬…아이들과 살 집은 안전할까
입주예정자 A씨는 배터리에서 난 불이 비상발전용 연료로 번지는 상황을 걱정했다. 그는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불이 잘 안 꺼진다”며 불안을 드러냈다. 시설이 여러 곳 모여 들어서는데, 불이 나도 아이들과 살 집은 안전할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화재만이 걱정은 아니었다. A씨는 냉각팬에서 나오는 저주파 소음이 주거지에 미칠 영향도 우려했다. 냉각설비가 24시간 돌아가며 내보내는 열이 주변 기온을 높이는 열섬현상도 걱정했다.
사업 추진 측인 과천주암대토리츠는 10월 6일 설명회에서 배터리실을 방화벽으로 구획하고, 열 안정성이 높은 배터리를 쓰겠다고 설명했다. 유류탱크를 땅에 묻고 화재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소음·진동은 발전기와 냉동기에 방음·방진 장치를 달아 줄이겠다고 했다. 열섬 우려에 대해서는 냉동기에서 나온 더운 공기가 위로 빠르게 퍼져 주변 주거지 기온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대토지주협의회의 배 위원장 역시 새로 짓는 시설은 소음과 화재에 이중·삼중으로 대비한다며, 과천시·주민들과 함께 기존 데이터센터에서 소음 등을 측정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A씨는 정부가 직접 저주파 소음과 열섬, 화재 위험을 조사해 일관된 보호 기준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집값 때문이라더니, 사업 손실은 왜 주민에게
사업 추진 측인 대토지주협의회 배 위원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소음·화재 우려는 “구실”이라며 반대 주민들의 실제 관심은 아파트 가격과 상가 임대·분양에 있다고 했다. 데이터센터는 국가 핵심 기반시설이고, 주민들도 그 편익을 이용하면서 집 근처 건립은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배 위원장은 8월 27일 과천시의회에서 정부 권유로 대토를 선택했지만 개발 지연과 대출이자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며, “살기 위해서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대토보상을 택한 토지주들은 리츠에 참여해 개발 수익을 나누는 사업에 들어왔다.
반대 집회에 나온 입주예정자 권 씨는 사업 추진 측이 주민들의 반대 이유를 집값 문제로 돌린다고 했다. 자신들이 제기한 것은 쪼개기 의혹과 주거지의 안전 문제인데, 아파트 가격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A씨도 자신이 AI를 사용한다며 “데이터센터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주거지 인접을 반대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토지주들의 사업 손실에 대해서도 권 씨는 책임을 물을 상대가 잘못됐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또 권한 것도 아니”라며 “(대토보상을 권유한)LH나 정부에 얘기해야지 왜 주민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냐”고 반문했다.

건축심의위도 “재검토”, 지주협의회는 서류보완 예정
시청 앞 인터뷰 이틀 뒤인 10월 30일, 과천시는 업무 1-9블록의 건축·경관공동위원회 심의 결과를 공개했다. 10월 21일 열린 심의의 결론은 ‘재검토 의결’이었다. 보완해 다시 심의받도록 한 결정으로, 최종 불허나 사업 철회는 아니다.
위원회는 설비가 24시간 돌아가는데도 야간 상주자가 없다는 이유로 주간 소음 기준을 적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섯 데이터센터의 사업 연계성과 전력사용계획, 전력계통영향평가 대상 여부를 확인할 자료도 요구했다. 법정 평가 대상이 아니더라도 계약전력이 10MW에 가까운 만큼 이에 준하는 평가와 주민설명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담았다. 대토지주협의회 배 위원장은 심의에서 요청한 사항을 보완해 다시 제출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주거지 인접 건립에 대한 기준도, ‘쪼개기’를 판단할 법령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데이터센터 건설을 독려하는 동안, 안전을 요구하는 주민과 온전한 대토보상을 요구하는 토지주 사이의 갈등은 깊어지고만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권 씨는 발언을 이어가기 위해 메가폰을 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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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수고 하셨습니다.그동안 어느 기사 보다도 양측의 의견을 나름 잘 전해 주셨네요.데이터센터 건축 불허의 그날까지 활동하는 저희 주민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보시고 후속 기사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