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씹어 드시겠습니까? 데이터센터를 구워 드시겠습니까!”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초광역특구법 철회를 요구하며 이렇게 외쳤다. 첨단산업을 키우겠다며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할 농지와 물까지 기업에 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계와 환경·보건의료·인권단체도 기업 투자를 위해 노동권과 생태계, 공공성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반대에 나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134개 단체가 참여하는 ‘메가특구특별법 저지와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을 위한 공동행동’(메가규탄행동)이 27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초광역특구법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철회 대상은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지난 20일, 최기상 의원이 21일 각각 발의한 두 법안이다. 특히 박상혁 의원안에는 근로시간 규제 예외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 노동특례가 담겼다.

“악마의 선택”…양대노총, 노동권 보장부터 요구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특례가 포함된 박상혁 의원안이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고착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함 부위원장은 근로시간 규제 적용 예외,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의 최대 6개월 확대,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의 최대 4년 연장 등을 문제로 짚었다.
그러면서도 함 부위원장은 “두 개의 법안 중 하나를 고르라는 식의 악마적 선택을 강요하지 말고,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해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라”고 촉구했다. 노동특례를 뺀 별도 법안을 내놓는 것으로는 노동계의 반발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 완화 경쟁이 아니라 안전한 일자리, 노동시간 단축, 직접고용 확대와 원청의 책임 강화”라며 “주4일제 도입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과로 없는 안전한 일터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도 “기업의 투자와 산업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노동기준을 낮추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역시 노동특례 포함 여부와 관계없이 두 법안을 모두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농지·생태계 훼손 우려…환경영향평가 완화도 도마에
엄청나 정책위원장은 농업진흥지역 해제와 농지전용을 쉽게 하고 농업용 수리시설의 폐지 절차를 완화하는 특례에 대해 “식량안보를 부르짖으면서 농지를 없애고,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면서 농업용수를 산업개발에 통째로 내어주는 것이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전략이냐”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장과 발전소가 들어설 농지뿐 아니라 주변 농경지에도 피해가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농업용 저수지와 용수로의 물길이 바뀌면 개발구역 밖에서도 농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도 초광역특구 내의 개발사업을 충분히 검증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초광역특구법이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간을 30일 또는 45일로 제한하고, 평가서 보완 요청도 원칙적으로 한 차례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평가의 충실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보다 협의를 얼마나 빨리 끝낼 것인지부터 법으로 정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도 “이익은 기업이 쏙 빼먹고, 위험은 공공에게 넘기는 구조”라며 “성장과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생태 학살을 정당화하는 메가프로젝트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영리병원 허용에 개인정보 수집까지…공공성 훼손 우려
이서영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박상혁 의원안을 두고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이 특구 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의료법상 개설 주체 제한에 예외를 두는 조항이 있다”며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해진다”고 경고했다. 지역의 응급의료와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할 상황에서 기업의 수익을 위한 병원 설립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정책위원은 “지역 주민들의 생명은 영리병원에 눈독들이는 기업들에 담보 맡길 밑천이 아니다”라며 법안 폐기를 요구했다.
김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정책활동가는 자율주행차와 드론 등을 이용한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수집 특례를 짚었다. 기업이 시민과 노동자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심의·관리 절차를 피해갈 수 있다는 우려다. 김 활동가는 “우리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고 이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며 정보 수집·이용 과정을 공개하고 인권 침해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메가규탄행동은 기자회견 직후 ‘초광역특구법’ 입법 저지 투쟁계획 논의를 위한 전체회의에 들어갔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