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정권 동향]

현대와 LG의 반도체 빅딜 성사, 반도체 산업의 대외종속 우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월 6일 청와대를 방문,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

에서 현대를 경영주체로 하는 반도체 통합에 동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

회장은 이런 결정에 이르기까지 많이 고뇌했으나 기업구조조정에 동참함으로써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앞으로 타분야를 주력기업 중심으

로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결심에 따라 이같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이같은 구 회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LG그룹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국가경제 발전을 선도해 줄 것을 간곡

히 당부했다”고 박 대변인은 밝혔다.

LG그룹 강유식 구조조정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승적 차원에서 LG 그

룹이 보유 중인 LG반도체 지분 1백%를 현대에 양도키로 결정했다”며 “주식 양도

를 위한 구체적 조건은 현대측과 시간을 정해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

와 LG는 1월 말까지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하는 등 통합작업을 최대한 앞당겨

마무리하기로 합의했으며 양사는 실사기관으로 아서 디리틀(ADL)이 아닌 제3의

평가기관을 선정, 실사를 맡기기로 했다.

현재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은 LG의 지분양도에 따른 양사간 가격협상이다.

LG는 매각대금으로 5조∼6조 원을 현금으로 받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그

룹 계열사와 구본무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소유한 LG반도체 소유 주식에다 현

주가의 30%선인 프리미엄, 여기에 현대전자가 추정한 향후 5년 간 통합 시너지

효과에 따른 62억 달러의 경비절감 중 절반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룹의

반도체 소유지분은 59.95%로 총 9,200만 주(1조3,000억 원)를 갖고 있다. 구본

준 LG반도체 사장은 이와 관련, “유 무형 자산에 대한 프리미엄을 철저히 요구

할 것”이라고 밝혀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현대는 그러나 주

식양수도 방식으로 경영권을 인수할 경우 현재 주가에다 프리미엄을 더해 주면

인수가 끝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향후 시너지 효과 중 절반을 반분하자는 LG

의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지분정산 과정에

서도 공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LG는 전액 현금으로 받겠다는 입장인데

현대측이 현금결제를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현대가 올 들어 기아자동차, 한

화에너지 등을 인수하면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거액의 돈을 마련할

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대가 정산과정에서 현금에다 정보통신, 박

막 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 정유, 유화 등 일부 사업들을 패키지로

넘겨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이와 관련, “현대측

이 LG의 반도체 포기에 상응하는 대규모 사업을 포기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LG측과 제2차 빅딜이 추진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런데 현대와 LG 간의 반도체 빅딜을 둘러싼 이러한 표면적인 움직임의 이면

에는 ‘빅딜 보상설’ 등 이면 거래설이 무성하다. LG그룹에서는 대승적 차원에서

기업구조조정과 국가신인도를 위해 지난 합의(지분 7 : 3 비율)보다도 파격적으

로 지분을 100% 양도하고 주가와 프리미엄 등 5조 원의 돈만 챙기겠다고 발표했

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재벌의 행태로 볼 때 이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

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현대 정몽헌 회장과 구회장은 지난 4일

단 한 차례 협상테이블에 앉았을 뿐이고 그 자리에서 서로의 기존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 아무런 그런데 6일 청와대에서 구본무 회장이 전격적으로 발표를 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대가’를 얻어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차후 민영화될 공기업에

대한 우선 인수권 보장과 보상 빅딜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LG측은 “보상 빅딜설은 말 그대로 설”이라며 일축해 왔지만 최근 자세가 달라

졌다. “현대에는 탐나는 물건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면서도 “현대에 무엇이 있

는지 잘 모르니 현대가 제의해 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보상빅딜의 가능성을 열

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미 채권금융기관에서는 현대측이 당초 인수키로 했던 한

화에너지의 정유부문을 LG칼텍스에 넘기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거론되

고 있으며(이렇게 되면 LG칼텍스는 SK와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 LG

가 온세통신과 데이콤의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

다. 데이콤을 비롯하여 온세통신, 하나로통신 등 현대가 참여하고 있는 유선통

신사업의 지분과 현대의 우호지분을 넘겨받는다는 것이 그것인데, LG는 데이콤

에 대해 공개한 지분 5% 외에 계열사와 우호지분을 포함해 3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상태이다.

결국 LG가 ADL사를 미국법원에 제소하겠다고까지 하면서 진행되었던 반도체

빅딜 거부는 기득권을 지키고 보다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고, 그러한

재벌간의 힘겨루기를 정부가 나서서 불리한 재벌에게 또다른 특혜를 주거나 재

벌 내부의 이해 조정을 통해 빅딜을 성사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그 결과

는 재벌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보장해 주는 대신 그에 따른 부담은 국민에게 세

금의 형태로 전가되거나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고용감축(통합될 경우 양사 직

원 2만6천 명 가운데 6천여 명)으로 노동자에게 정리해고로 돌아오게 될 것이

다.

한편 반도체 빅딜의 결과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노동자 민중에게 그 부담이 전

가될 뿐 아니라 향후 국민경제의 대외종속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빅딜이 난항을 겪고 있었던 지난 연말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미

국의 무디스 사가 LG의 반도체 빅딜 거부에 대해 한국의 국가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협박했던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의 반도체 시장을 2사 체계

로 재편하는 데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가 크게 개입되어 있다. 이렇게 3사 체

계를 2사 체계로 재편함으로써 국제 반도체시장의 과잉생산 압박을 일정하게 해

소하는 한편, 이후 초국적 자본이 한국 반도체시장에 파고들 수 있는 여지를 확

보하는 것이다.

6일 반도체 통합이 전격적으로 발표된 직후인 8일 미국의 또다른 신용평가기

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통합될 현대반도체가 대규모 감량경영을 통

해 과잉생산을 줄이지 않는 한 현대반도체의 신용등급을 현재대로 “부정적 관찰

대상”인 B급으로 유지하고 상향 조정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벌써부터 현대반도체를 압박하는 것이다. 또 LG

반도체를 100% 인수하게 될 현대는 향후 그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규모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통합된 현대반도체가 실

질적으로 초국적 자본의 하위파트너로서 편입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5대 재벌 간의 빅딜은 국내 주요 산업의 대외종속, 즉 경제의 식민지화로 귀결

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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