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10주년 전야에 심화되는 정치, 경제위기

10월평론(October Review) 통권 26호, 99/5/31 사설

올해는 89년 민주화운동의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죽거나 고통받은 이들에게 애도와 공감을 보낸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반체제 인사들이 계속해서 체포, 구금, 협박당해온 지난 10년간 새로운 인물들이 투쟁 속에서 계속 등장하였다. 80년대에는 학생과 지식인들이 앞장섰다. 공산당 관료제의 통치 하에서 사회적 갈등이 악화된 90년대에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투쟁에 등장했다. 공식 보고에 따르면, 1998년에는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증가하였다. 농민들 또한 폭동과 시위 속에서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연좌, 항의시위가 수도 중난하이에 있는 당-정부 센터 밖에서 벌어졌다. 4월 25일에는 팔룬공(法輪功)을 신봉하는 만여 명의 사람들이 13시간 동안 종난하이를 둘러싸고 자신들에 대한 당국의 비판에 항의하면서 이 무술에 대한 공식적 인정을 요구함으로써 당국을 놀라게 하였다. 당과 국가기구의 통제를 완전히 넘어선 이러한 대중행동은 당국에 대해 영향력 있는 종교 세력(수천만 명에 이르는 신도를 갖고 있으며 이중 많은 사람들은 고위 당간부나 군간부이다)의 존재에 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나토의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폭격에 대한 반응으로 5월 8일 분출된 대중시위의 물결은 지난 10년간 가장 대규모의 대중동원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베이징에서만 2십 5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광조우에서는 십만여 명, 그리고 다른 몇몇 주요 도시에서도 수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몇몇 시위는 당국에 의해 세심하게 조정, 통제되긴 했지만, 이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헤게모니에 대한 민족주의적 감정의 표출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대중적 폭발은 중국 사회의 긴장, 국내적인 사회적 모순에 대한 민중의 불만, 그리고 대외정책에서의 정부의 무능력(특히 세계무역기구 가입 신청)이라는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시위 도중 베이징의 한 교사는 “우리의 지도자들은 너무도 나약하다. 그들은 감히 (50년대 초반의) 한국전쟁 시기처럼 행동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일본을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또 다른 몇몇은 “퇴진 주룽지(총리)!”라고 연호하였다. 셴젠에서는 몇몇 이들이 “배신자를 처단하자!”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이틀간의 항의시위를 조직한 후, 당국은 재빨리 봉쇄책으로 돌아섰으며, 당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법과 질서를 준수하고 폭동을 유발할 기회를 노리는 불순분자들을 경계하자고 호소하였다.

시위의 파고가 가라앉기는 했지만 그 반향은 아직도 확산되고 있다. 이번 기회는 공개적인 정치적 논의를 위한 대중적 공간을 확장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이징대학에서는 민주주의의 벽(democracy wall; 톈안먼 시위 당시 베이징에서 대자보가 나붙던 벽. 80년에 해체되었음 – 옮긴이)이 다시 활성화되었고 크고 작은 인물 포스터가 등장했다. 이들 중 하나에는 “유고슬라비아 중국대사관 폭격은 우리에게 과학과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또 다른 포스터는 “정치개혁과 반부패를 위한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시기이지 않은가?”라고 말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학생과 시민의 불만 증대에 직면하여 주룽지는 3월 정부활동보고를 통해 국민들 사이의 내부 모순을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전국인민대회에 제안하였다. “문제는 싹틀 때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모순을 단순하고 야만적으로 악화시켜선 안되며 국민과 대중을 독재적 수단으로 다뤄

서도 안된다”. 하지만, 그가 진정 이러한 말을 의도했다면, 첫 번째 조치로 모든 정치범을 석방해야 한다.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체포와 감시가 증대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주룽지 총리는 학생들은 89년에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법을 위반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였다. 그는 이러한 경험 이후 그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어조는 89년의 운동을 “반혁명 폭동”으로 규정짓는 공식적 입장과는 다소 다르지만,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89년 운동이 복권되지 않고 있다.

89년 민주주의 운동의 복권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6·4 탄압에서 희생된 이들의 친척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런민대학 철학부 부교수인 딩질린과 89년 희생자들의 친척들은 최근 당국에 공개서한을 보내 역사 청산과 정치개혁 착수, 시민권 보호, 6·4 사태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출범, 사망자 수와 이름 공표, 유가족들에 대한 정부의 보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중국 내외에 있는 국민들에게 함께 협력하여 중국 정부에 압력을 가할 것을 요청한다.

1) 89년 민주화운동을 즉각 복권하고 6·4 유혈탄압의 책임자를 처벌하라!

2) 모든 구금된 반체제 인사와 정치범을 즉각 석방하고,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구금과 감시를 중단하며, 그들의 명예와 지위를 복권하라!

3) 유엔인권협약과 중국헌법을 준수하고 민주적 자유와 민중의 권리, 특히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정당 결성),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

4) 전국민적으로 민주적 정치개혁을 논의, 결정하고 일당 독재를 종식시키자!

우리는 89년 민주화운동의 공식적 복권이 머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1976년 톈안먼 사태, 1947년 2월 28일의 타이완 사태, 남한의 광주항쟁 등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 생활 향상과 관료제 반대를 위한 노동자, 농민의 투쟁과 연결될 때 승리가 쟁취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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