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인권보호를 위해 유엔 다국적군에 전투부대를 보내기로 한 정부의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 교민이나 그곳에서 영리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끼칠 영향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서부터, 이번 정책 결정이 남북 분단상황과 급속한 우경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본 정치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의료·공병과 이들을 보호할 보병 등 420여명 규모를 유엔의 공식 요청이 있으면 신속히 파병한다는 계획 아래 28일 국회동의를 앞두고 대국민 설득작업에 나서고 있다.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에 관여해온 경상대 박재영 교수(국제행정)와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로부터 동티모르 파병에 대한 첨예한 견해 차이를 들어봤다. 편집자
박재영 교수는 우리나라 군인의 희생을 염려해 보병은 빼고 의료·공병만 동티모르에 보내야 한다는 이른바 `제한적 파병론’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지적한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런 발상은 다른 나라 군인들에 궂은 일은 모두 맡기겠다는 것이고, 결국 `다른 나라 군인은 죽어도 되고 우리나라 군인은 안 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엔이 파병에 대한 동의를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얻어내고 일정한 책무까지 분담시켰기 때문에 과거의 일방적인 평화유지활동이나 다국적군 활동과 비교해 우리나라 군인의 안전 문제는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다는 게 박 교수의 판단이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단 한명의 보병은 물론 공병도 안 되고 의료병 파병을 통한 순수한 의료지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지 않고 총을 든 무장병력을 파병한 뒤 자위권 발동 차원이건 민병대를 무장해제시키는 과정에서건 무력을 행사하게 되면, 그 직접적인 피해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 교민들과 그곳에서 영업하는 기업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지씨가 사태를 이렇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겉으로느 다국적군 수용의 뜻을 비치는 것과 무관하게 인도네시아 국민 2억여명 중 대다수가 다국적군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지씨는 “자칫 교민과 기업 주재원에 대한 `왕따’, 나아가 테러까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그런데도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지씨는 우리나라가 꼭 파병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야 동티모르 해역에 대규모 유전을 개발중이고, 포르투갈이야 식민종주국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동티모르에서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인도네시아에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이 코소보 사태와는 달리 수송·정보·통신 병력 200여명만을 보내기로 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한다.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미국의 이미지는 구기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국적군을 이끌게 될 오스트레일리아는 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 이후 동티모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주권을 인정한 유일한 나라이자, 미국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군사원조를 한 나라다.
박 교수의 상황 인식은 약간 다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프로투갈 등 서방 국가들이 다국적군을 일방적인 이끌어가기보다,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 등이 균형과 견제세력으로 다국적군에 참여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타이·말레이시아 등의 참여 움직임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교민들의 안전을 100%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데는 박 교수도 동의한다.
“인도네시아와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다국적군의 구성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의 측면이 강하다.” 박 교수가 보는, 미국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유다. 그는 “동티모르 파병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려는 행위로 몰고가는 것은 치졸한 정치 공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우리나라가 유엔총회 의장국이 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박 교수는 “냉정하게 보면 분단 상황에 있는 한반도도 다국적군이나 평화유지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에 대비해서라도 국제사회에 `덕’을 쌓아놓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지씨는 정부가 파병의 이유로 인권을 내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탈북자, 고엽제에 신음하는 5만명의 베트남전 참전 군인 등 국내 인권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국익에 손해만 가는 국외 인권에 너무 신경쓴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인권이라는 가치는 큰 규모로 의료 지원을 하는 것으로도 이룰 수 있다고 지씨는 말한다. 지씨는 “많은 국민들에게 동티모르 파병이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기 위한 정치적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조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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