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양민을 학살했다는 보도가 전해진 뒤 북한은 생각보다는 잠잠하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군의 만행을 부각시켜 비난해 왔던 평소 모습에 비춰보면 예상밖이다.
AP가 예고기사를 내보낸 당일인 지난 28일 민민전 방송과 본기사가 보도된 뒤인 30일 아침 평양방송이 이 사건을 언급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북한은 말을 아끼고 있다.
평양방송은 “미국의 AP통신이 1950년의 조선 침략전쟁 당시 미제 침략군이 남조선지역에서 대규모 학살만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한다”면서 “AP통신이 지난 수개월 동안 미군과 남조선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체로 조사활동을 벌이고 전쟁 당시 미군 서류들을 검토했으며 그 결과 미군이 전쟁 초기에 피난민을 비롯한 양민을 적군으로 취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사실을 밝혀냈다고 전했다”고 순전히 제3자적인 시각으로 남한 방송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전달했다.
이어 “그러나 남조선 방송은 파쇼적 보도관제로 하여 만행의 진상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에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덧붙인 것이 보도 내용의 전부였다.
이에 앞서 AP 예고기사가 나온 당일 민민전 방송은 `미국의 AP통신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대규모 양민학살사건을 폭로한 것과 관련한 시사해설’ 프로그램을 발빠르게 내보냈다.
본기사가 전해지기도 전에 나온 이 시사해설 프로는 노근리 사건이 “6.25전쟁시기 미군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이 다 미 군부 계층의 명령에 의해 계획적으로 감행된 살인만행이라는 것을 실증해 주는 또 하나의 뚜렷한 증거”라고 기정사실화 하면서 “6.25전쟁 시기 이 땅에는 수많은 양민 대학살사건이 있었지만 그것이 다 인민군의 만행으로 오도되어 취급돼 왔다”고 주장했다.
민민전 방송은 황해도 신천군 은율군 안악군, 평안북도 정주군, 평양 등 “미군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학살사건이 저질러졌다며 수만명에 이르는 사망자 수를 열거했다.
방송은 “지금까지 미군의 살인만행이 극비에 부쳐지고 오히려 이북 인민군의 이른바 만행으로 왜곡돼 온 것은 민족적 격분을 자아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한 뒤 지금도 주한미군의 범죄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은 현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우리 정부에 돌렸다.
미군의 양민학살 사건을 미국의 언론매체가 확인 보도한 사례는 북한에게는 `미제의 귀축같은 만행’을 선전하는 데 더없는 호재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예상과는 달리 아직까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북한의 태도가 최근 북·미관계 개선 움직임과 연관성이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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