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가 본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2월에 갔을 때 봤던 자카르타가 아니었다. 인구 1700만명의 이 도시는 전에 볼 수 없던 흥분과 활기에 가득차 있었다. `구스두르’로 애칭되는 압두라만 와히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가 부통령 직을 수용한 데 따른 변화다. 35명의 새 내각 진용도 군부와 옛 여당인 골카르당 출신이 각각 3명씩 포함된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괜찮아 보인다.
와히드 대통령은 시력장애 상태지만 3500만명 이상이 속한 세계 최대의 이슬람 조직 `나드라툴 울라마’를 이끌어왔다. 이슬람 지도자인 동시에 자유주의적 지식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보기드문 인물이다. 인도네시아 벽촌의 이슬람 마을 사람들과 서구의 지식인들이 똑같이 그를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신념을 두고 있고, 이슬람과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대화를 강조해왔다. 그는 정치적 감각도 있다.
메가와티 부통령은 정치권의 반수하르토 진영에서 단련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국가적 쟁점들에 대해 나서서 발언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고 너무 뒤로 빼는 태도를 취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그는 올해 초 하비비 당시 대통령이 동티모르에 독립투표를 허용하겠다고 하자 이를 비판하고 나선 일로 비난받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내각에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가장 관심을 두는 인물은 알위 쉬하브 외무장관이다. 와히드와 같이 그도 인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이슬람이다. 쉬하브는 수린 핏수완 타이 외무장관과 더불어 동남아 외교무대에 개혁적인 기운을 불러일으켜, 동남아국가연합으로 하여금 역내 각국의 인권 및 민주주의 문제에 좀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만들 것이다.
신설된 국가경제위원회의 집행위원장에는 와히드 대통령과 가까운 유수프 파이잘이 임명됐다. 파이잘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비정부기구들과 같은 견해다. 그는 국제통화기금도 스스로 빈곤 퇴치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인도네시아의 경제정책도 이제 재검토해야 하며, 이런 재검토 과정에 시민단체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해외부채 상환과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경제구조조정에 나서라”는 국제기구 및 외국자본의 요구와 대립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외압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인도네시아의 새 정부도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정부의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아키노 정권은 외국 빚을 갚기에 급급해 10년간 경제성장률을 거의 0%로 전락시켰다.
외압 극복에 가장 유효한 세력은 거리의 학생운동권이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학생운동은 영향력이 있다. 그들은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렸고, 새로운 정권 탄생 과정에서 군부를 견제하는 구실을 해냈다. 구스두르도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게 학생들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구스두르가 추진해 나갈 개혁과정의 감시자가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새 정부는 왼쪽에서 이처럼 학생들의 압력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오른쪽에서는 군부의 위협을 받고 있다. 군부가 앞으로도 계속 문민정권의 지휘를 받는 자세를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인도네시아는 지금 정치·사회적 혁명 과정에 있을 뿐 아니라 국가구조의 재조정기에 들어서 있다. 독립 또는 자율을 위한 운동은 동티모르에서 아체, 말루쿠, 서이리얀, 동칼리만탄, 술라웨시로 확산되고 있다. 새 정부가 이런 움직임을 수용해 연방주의 쪽으로 너무 많이 양보를 하는 것으로 비치게 되면, 통합 인도네시아의 수호세력으로 자처하는 군부가 각 지역을 대하는 정부의 협상 여지를 좁히기 위해 개입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군부의 `송곳니’를 뽑는 것은 와히드 대통령이 재임기간 10년 동안 맞서야 할 최대의 도전이자 과제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과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구스두르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고 나설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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