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 = 2'라는 단순함을 넘어섰던 77日 - 77일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현장]

 77日 간에 걸친 투쟁은 실로 영웅적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여운처럼 더 짙게 남았다.  그들과 70여 일을 함께 하면서... 나 자신은 농사꾼이었지만 거대 자본의 이윤을 보전해 주고자 그들은 자신을 수탈당해야 했고, 농민들은 자본의 전략적 요구에 의해서 ‘생산한 결과물 ’을 수탈당해야 하는 위치에 처해 있었기에 쌍용자동차의 총파업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총파업은 고독한 섬으로 내 몰렸지만...
‘노동자 가족대책위’는 남편들과 함께 평택시내로, 서울로, 인근 도시 지역으로 “쌍용자동차의 총파업 투쟁” 정당함을 알리고 노동자의 연대를 위해 움직였다.
산업자원부와 국회 앞에서 경찰 폭력을 헤치고 “1인 피켓 시위” 도 했고, 비를 맞으면서도 평택 시내를 도는 “삼보일배”도 했으며, 서울 시청 광장 앞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쌍용자동차 사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 중에 임신을 하신 분도 있었는데, 힘든 와중에서도 복날의 햇볕에서도 이들은 매일 매일 시내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었고, 방송 차량에 탑승해 “쌍용자동차 총파업”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노려했다. 시내 아파트 단지와 시 외곽 아파트 단지까지 이들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대책위’의 차량이 평택시 일원에서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파업의 현장은 이들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진실’을 알려주는 학교였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대책위’ 대표님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가족들을 위해 하루 하루를 보내던 일상을 버린 채, 아이를 등에 업고 공장의 정문에서 팔뚝을 뻗으며 구호와 노동가요를 부르고, 정치인들에게 항의 활동을 하는 또 다른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왜 노동자는 자본과 싸워야 하는지, 사장이라는 사람들은 얼굴이 몇 개인지...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노동자 가족이 파업에 참가한 아이들 아빠를 보기위해 공장 정문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알게 되었다” 는 말은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명제를 현실에서 증명하고 있다.

 산술적 계산으로 1+1=2 가 맞다.
수학적 계산으로 정확한 답이다.  그러나 인간사에 있어서 산술적 계산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본과 노동자의 관점에서도 이 계산식은 틀리고, 다르게 이해된다.
자본의 개념으로도 1+1=2 는 인정되지 않고 1+1=2(+a) 가 맞는 계산이고, 노동자의 개념에서 보면 1+1=2 는 생각하지 않으며, 파업의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의 결합> 은 또 다른 <힘 = 노동계급의 단결> 이라는 문장으로 표현된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옥쇄를 선택한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한 77日 동안에 최후까지 이들 600명의 인원으로 단결해 공장을 지켜냈다. 자본이 동원한 2,000~3,000명의 용역깡패 구사대와, 그리고 국가 자본을 대변하는 3,000~ 4,000의 공권력을 합친 인해전술에 맞서서, 헬리콥터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는 취루액과 사방의 소방차에서 뿜어지는 물줄기와 싸우며 그들의 공장을 지켜냈다.
영화 "300"이 따로 없고,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 혈전’이 비교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동학 농민전쟁 때의 ‘우금치 전투’를 비교할 수 있을까?
세계의 모든 노동관련 단체들이 놀랐고, 일부는 일부러 배우러 온 이도 있었다.
일본에서 온 노동자 단체가 있었고, 인도에서도 다녀갔고, 유럽에서 온 이들도 보고 갔다.

 이제 평택 공장에서의 파업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공장의 파업이 1라운드 였다면, 이제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전쟁이라 불러도 모두가 수긍했을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파업 진압 과정에서 노동조합 집행부가 대부분 구속이 되었지만 영장 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 등을 통해서 아니면, 당시의 진압을 뚫고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 뛰고 있다.
구속이 된 노동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일과,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는 투쟁계획. 경찰에 의해 폐쇄 된 노동조합 사무실 문을 다시 여는 일, 등 등...

 남은 자에게는 또 다른 임무들이 기다리고 있고, 이들은 취후의 승리를 위해 뛰고 있다.

구속된 한상균 지부장의 편지글 중에서

(중략)
우리 쌍용차지부는 회사가 어려운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함께 살자고 외쳤습니다. 이어 대안을 제시했고 국민과 정부에게도 호소했습니다.
사측은 근거 없고 논리에도 맞지 않는 삼정KPMG와 삼일회계법인의 쌍용차 회생방안을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밀어붙일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정리해고 이상의 다른 대안을 내놓지도 않고 우리 제안을 무시한 것은 처음부터 매각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임금노동자에게 생명과 같은 고용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2,646명에게는 차라리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중략)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는 동지들이여! 구속되어 절망하며 한탄하고 있는 동지들이여!
살았어도 노동자의 언어를 말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시작했을 동지들이여!
관리자의 참석 강요와 체크 때문에 부득이 구사대로 참여했지만 가슴에는 여전히 노동자의 피가 끓고 있는 동지들이여!
희망퇴직으로 현장을 떠났지만 절망적인 선택이었음을 벌써 확인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동지들이여!
모두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전체 노동자들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잘 나갈 때는 탁월한 경영능력 덕분이고, 위기가 닥쳐오면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이 뒤집어써야 하는 세상! 처절했던 쌍용차 77투쟁을 마무리하면서 여전히 우리 전체 노동자에게 주어진 숙제는 바로 단결, 다시 단결하는 길 뿐입니다.

한상균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