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발표된 혼인여부, 자녀, 나이, 병역의무 이행여부 등을 성전환자의 호적 성별정정 허가 기준으로 정한 대법원의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대해 성소수자단체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51개 성소수자·인권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성전환자성별변경관련법제정을위한공동연대’(공동연대)는 대법원의 이번 지침에 대해 “현재 성전환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 등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매우 불충분한 인식수준을 드러내고 있다”며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시민권 및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최전선에서 보호해야 할 대법원이 한국 사회 성전환자들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지침을 새로이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외부성기 포함 신체외관 바꾸라’는 조항, 최악의 독소 조항”
공동연대는 우선 대법원이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을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을 성별정정 허가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데 대해 “최악의 독소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이 교육과 직업 현장에서 밀려나 이미 사회 빈곤층으로 밀려나 있어 반대의 성으로의 성기성형수술의 막대한 비용을 마련할 수 없으며 수술 자체도 생명을 담보로 할 만큼 위험하고 특히 남성성기의 형성수술은 세계적으로 의료적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하며 성기성형을 포함한 외과적 수술을 성별정정의 기준으로 정한 대법원의 이번 지침을 비판했다.
공동연대는 또 대법원이 ‘미혼’과 ‘무자녀’를 성별정정 허가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녀를 끊임없이 비정상화 하며 결혼을 강제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극심한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외면하는 한편, 결혼의 경력과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는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완전히 포기할 것은 강요하는 반인권적 조항”이라고 성토했다.
또 지침에서 허가 기준에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만 20세의 행위능력자일 것’이라는 규정을 포함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 성적자기결정권을 후퇴시키고 재판 상 편의주의에 입각한 근거 없고 자의적인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4일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기획단이 발표한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이 유아 및 아동기부터 자신의 성별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중등교육 과정에서 이미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며 성별정정 허가 기준을 20세 이상으로 제한한 이번 지침의 부당성을 꼬집었다.
“대법원 지침,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 되돌리는 일”
한편, 공동연대는 이번 대법원의 지침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전환자성별변경특례법(안)’ 입법 과정과 각급 법원에 신청되는 성전환자 성별정정 사건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6월 대법원의 첫 성전환자 성별정정 허가 결정이 내려진 이래 각급 법원의 성별정정 신청 건수는 지난 해 같은 기간 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성별정정에 대한 성전환자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성전환자 성별정정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도 전향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인천지방법원이 건강상의 이유로 수술이 불가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정정 신청을 낸 A씨에 대해 정신과 진단서와 수술불과 진단서를 토대로 성별정정을 허가하기도 했다.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은 “성별정정에 대한 시민사회와 사법부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지난 6월 22일의 대법원 허가 판결의 취지를 곡해하고, 후퇴시키는 대법원의 지침이 마련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