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학자로서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한 수학자가 사법부의 판결에 저항하며 담당 판사에게 석궁을 쏘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10여 년 간 대학당국의 입시 부정과 부당한 해고, 그리고 사법부의 일방적 편들기에 맞서 온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그는 지난 15일 오후 항소심 기각에 항의하며 박홍우 서울고등법원 민사부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상처를 입혔다. 화살은 박홍우 부장판사의 배꼽 왼쪽 아래에 2cm 가량 깊이로 박혔으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하자 대법원은 즉각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테러’로 규정하고, 법관들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원 경찰대 조직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각 언론도 이번 사건을 주요뉴스로 전하며,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등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이번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사법부의 판단에 불만을 품은 한 개인이 담당 판사에게 항의하다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 김명호 교수의 사연이 어떠했던지 간에 결과적으로 한 개인을 상대로 중대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법관들의 ‘경호’를 강화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다시 치켜세우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학자로서의 신념을 건 문제제기, 해고 그리고 패소
김명호 교수는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지난 95년, 본고사 수학과목 채점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김명호 교수는 출제문제의 오류를 발견하고, “출제 상 오류로 불가능한 문제를 학생들에게 증명하게 하였다”며 “문제 자체에 오류가 있었던 만큼 수험생 전체에게 모두 영점이나 만점을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명호 교수의 학자로서의 신념을 건 문제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학교 측은 그를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김명호 교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후 최근까지 김명호 교수는 외로운 법적 투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도 만만치 않았다. 재판이 지연되기 일쑤였고, 재판과정에서 사건이 애매하게도 성균관대 출신 판사가 있는 재판부에 연이어 배정되기도 했다.
김명호 교수는 지난 해 5월 민중언론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들을 조사해 보았더니 29명 중 1명이 성균관대 출신 부장이 있어, 그 재판부로 재배당될까 하는 우려를 담은 진정서를 냈다”며 “그런데 (2006년)2월 27일 유일하게 성대출신 김영호 부장판사가 있는 민사 26부로 재배당되었다. 내 사건은 노동으로 분류되고, 26부는 건설 전문 재판부인데도 그렇게 배정되었다”고 강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또 이 보다 앞서 2005년 3월 김명호 교수가 제기한 교수지위확인 청구소송에 대해 “(성균관대 측의) 재임용 거부 결정은 피고에게 주어진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적법한 것”이라며 기각결정을 내린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 23부 재판장 역시 성균관대 출신의 이혁우 부장판사였다. 사건의 피고였던 성균관대 측 변호인 역시 성균관대 동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명호 씨는 이에 2005년 8월부터 10여 개월 간 대법원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며, 공정한 재판을 촉구했다.
그러나 결국 법원은 지난 12일에 있었던 재판에서도 성균관대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건을 맡았던 박홍우 부장판사는 “(김명호 교수가) 성균관대의 정관에서 정한 학교 교수로서의 재임용기준 중 ‘학생의 교수·연구 및 생활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육관계법령의 준수 및 기타 교원으로서의 품위유지’라는 기준에 현저히 미달한다”는 성균관대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렸다.
진정 ‘법치주의’의 근간 흔든 자들은 누구인가
이번 김명호 교수 사건을 단순히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테러’로만 바라보는 것은 자칫 이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부당한 권력과 구조에 맞서 저항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법 앞에 평등’하기를 기대하며 사법부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사법 권력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굳이 론스타, 김&장 법률사무소, X파일 사건 등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진정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왔던’ 자들이 누구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사회나 갈등과 분쟁은 있기 마련이고, 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찌 보면 승자와 패자가 나뉠 수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자처한 사법 권력이 그동안 보여 왔던 행보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불신을 사기에 충분하고, 때로는 이번과 같은 분노의 직접적 표출로 드러난다.
대법원이 말하는 사법부의 권위는 법관들을 ‘테러’로부터 철통같이 경호한다고 해서 세워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권력과 권위가 누구로부터 부여받은 것인지를 다시금 되새겨 볼 때, 비로소 그들이 말하는 권위는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사회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푸념을 내뱉는다. 자신의 일자리에서 해고당하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저항하는 이들에게 ‘삼권분립’을 외치는 이 나라의 권력은 언제나 한 목소리로 ‘범법자’라는 딱지를 붙일 뿐이다. 정의를 사법부가 온전히 판단할 수 없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또 다시 이번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얘기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정의는 사라진 게 아니다. 다만 정의는 항상 주관적이며, 권력이 호명해주는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무소불위의 사법 권력이 사회적 약자의 시각으로 정의를 바라보려는 혜안을 버리고,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의 눈으로 정의를 바라볼 때 우리사회 또 다른 김명호‘들’은 권력의 심장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