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정연 학습지교사 3주기 추도식 열려

3년 만에 고인 죽음에 대한 사과 받아내

故 이정연 구몬학습지교사 3주기 추도식이 13일 오전 10시에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 진행됐다. 故 이정연교사의 죽음에 대해 공문교육연구원(주)가 3년 만에 사과를 하고 얼마 안돼 진행된 추도식이었다.

  고인의 영정에 국화를 바침으로 참여자들은 고인의 죽음을 기억했다.

3년 만에 받아낸 사과

故 이정연교사는 지난 2004년 4월 19일 호흡곤란으로 돌연사했다. 그리고 고인은 204과목을 인수인계했지만 134과목이 가짜회원이었고, 1,500만원의 빚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故 이정연교사의 동료들은 사업국장과의 면담을 통해 '故 이정연교사의 죽음에 회사가 사과할 것'과 '부당영업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울산최초로 학습지노동조합을 건설했다.

노조건설 이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투쟁을 지난하게 벌였지만, 사측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쉽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나긴 투쟁 끝에 작년 12월 1일 교섭이 시작됐고, 올해 2월 13일 공문교육연구원(주)과 학습지노조는 합의서를 도출했다.

합의서의 주된 내용은 △유가족을 방문해 슬픔을 위로하고, 울산사업국 전 지국을 방문하여 이정연교사 사망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이은옥교사와 2007년 3월부로 재계약한다는 것이다.

이은옥교사는 인천에서 학습지교사로 근무하다 임신과 출산으로 2003년에 휴직했었다. 회사측의 요청으로 업무복귀를 했으나, '지나친 업무를 줄여달라'는 요구를 하자 사측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했었다.

"고인의 어머니가 있어 투쟁이 가능했다"

故 이정연교사의 3주기 추도식은 13일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 진행됐다. 학습지노조 조합원들과 울산본부의 상근자 중심으로 참여했다.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떡을 보내온 고인의 어머니는 사측과 합의 이후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학습지노조는 "고인의 어머니께서 노조를 전적으로 믿어주셔서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추도식 참여자들은 고인을 기리는 추모사에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기억했다.(정문교 기자)

故 이정연교사 추도사

정연아-
정연아-
정연아-
그날로부터 무수한 밤과 무수한 낮이 지나갔지만
도솔암의 너는 예전모습 그대로
하나도 늙지도 않고
하나도 변하지도 않은 예전 모습 그대로더라.
남아있던 우린
눈가에 느는 주름과 가슴 속의 떨리는 분노를 안고
하루하루가 전쟁하듯 보내왔는데
도대체 넌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웃고 있는 널 두고 원망도 많이 하고, 위로도 많이 받은 세월이었는데
바람에 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너인양 만져도 보고, 불러도 보고.

정작 3주기를 맞고 보니 결국 남아있는 어머니가 제일 걸린다.
혼자서 셋 키우면서 자식이라는 게 발목 붙잡는 멍에이기도 하고,
인생 살아가는 위안이기도 했다는데
늙어가면서 따뜻한 친구였던 네가 그립단다.
어머니는 정연이 니가 사무치도록 그립단다.
말동무도 해주고, 시장도 같이 보러갔는데
식당일하면서도 애들 도시락 싸주는 재미로 하나도 힘든 줄 몰랐는데
어쩌나 어쩌나 우리 정연이를 어쩌나
힘든 몸 부여잡고 살아가실 어머니를 어쩌나.

자식새끼 먼저 보내놓고 그저 죽을 날이나 빨리 와라고 하시지만
손사래 치며 이리막고 저리막고
큰딸이야 지 앞가림한다는데 막둥이라고 보고 사셔야지
그만한 연세에 앞으로 수십년은 더 사셔야지
그래서 학습지선생들 잘되는 것도 보시고
그 잘난 인간들 굽신거릴 뒤바뀐 세상도 보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지.

정연아--
한 장의 합의서와 몇차례의 사과가
모든 진실과 허위를 묻을 수는 없지.
정연이 니가 알고 우리의 수많은 눈과 귀
가슴이 결코 그 사실을 묻을 수 없지.
살아있는 동안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것으로
널 대신하려고 해.
우리 청춘의 봄날이 가더라도
평생 잊지 못할 너와 학습지노조와
그리고 우리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