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들의 전산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용하는 회사인 코스콤(KOSCOM)에서 근무하는 파견 노동자들은 29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에 '근로자지위존재확인' 소송을 접수했다. 이들 노동자들은 코스콤에 간접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정규직으로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설립, 사무금융연맹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에 '코스콤비정규지부'로 가입했다.
▲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안에 위치한 '코스콤(KOSKOM)'은 증권 전산시스템을 개발, 관리하고 네트워크 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하는 회사다. |
불법파견, 위장도급 의혹
코스콤이 계약을 맺고 있는 회사는 자회사인 '증전이엔지', 파견업체 'FDL' 등 무려 50여 개에 달하며 5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가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코스콤은 하청 회사들의 사업계획이나 방향, 하청사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채용, 작업지시, 근태관리를 직접 수행하고 급여 지급체계에도 관여하는 등 경영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왔다고 한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코스콤이 하청 노동자들의 업무에 필요한 각종 공구와 자재, 차량, 컴퓨터, 사무비품 등을 전적으로 지급하고 회사 자산으로 등록해 놓은 점, 하청 노동자들의 근태관리를 사내 전산망을 통해 직접 통제 관리한 점, 원청회사가 직접 보직임명, 전직, 작업장 배치 등을 진행한 점 등을 들어 "실제로는 코스콤에 직접 고용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증권노조에 따르면 코스콤의 자회사인 '증전이엔지'의 임원들이 사실상 코스콤의 관리직원들이며 전적으로 코스콤의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진 회사인 만큼, 이 자회사와 노동자들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해도 실질적으로 코스콤이 노동자들을 직접 채용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정규직 임금의 3분의 1 받으며 고용불안 시달려
이러한 계약관계 하에서 근무해 온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4대보험 외에는 아무런 복지혜택이 없는 곳에서 많게는 20여 년을 일해 왔다. 코스콤비정규지부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으며, 무려 5년간의 임금 동결에도 "다음에는 임금을 올려주겠다", "다음에는 정직원이 될 것이다"라는 회사측의 말만 믿고 묵묵히 일해 왔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신분이라 한밤중이나 휴일에도 불려가 일하는 한편 산재로 입원해도 "계속 쉴 거면 나가라"는 말에 아파도 쉬지 못하기 일쑤였다는 호소다.
▲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 등은 29일 오전 10시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사정이 이런데도 코스콤은 7월 1일부터 시행될 비정규법과 개정 파견법을 앞두고 불법파견 문제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기존 50여 개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 5개의 업체와 계약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라, 또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행 파견법상 '2년을 초과해 근무한 파견노동자의 경우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고용의제 조항을 회피하기 위한 대량해고의 조짐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의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이에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를 설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이상 계속되는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 없고, 일한만큼 대우받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라고 노동조합 결성 배경을 밝혔다. 코스콤비정규지부는 상급단체인 사무금융연맹과 증권노조 등과 함께 29일 오전 10시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한편, 이종규 코스콤 사장과 면담을 갖기도 했다.
김창석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 강종면 증권노조 위원장, 황영수 코스콤비정규지부 지부장 등 노동조합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간략하게 이뤄진 이종규 사장과의 면담에서 노조는 30일로 예정된 첫 교섭 공문을 제시하고 "전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고 민주노총도 총력투쟁을 앞두고 있는 만큼,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지 않는다면 집중 투쟁을 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종규 사장은 이에 대해 "(비정규지부와의 교섭에 대해) 전혀 준비나 검토가 되어 있지 않다"며 별다른 답변은 하지 않았다. 김창석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은 "만에 하나 노조 설립을 이유로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부당노동행위를 할 경우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면담을 마쳤다. 이튿날 교섭에서는 지부 전임자 인정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이 코스콤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증권선물거래소 1층 로비 보안검색대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무금융연맹,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 등 29일 모인 노동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그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세계 금융IT솔루션 리더'로 나가기 위해 일해 온 비정규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지 않는다면, 코스콤은 증권노조는 물론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 노동계의 항의와 투쟁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 천명했다.
오는 7월 비정규법의 시행을 앞두고 사무금융연맹 최초로 비정규직 투쟁을 벌이게 된 코스콤비정규지부의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