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노아르 전 이주노조 위원장이 출국심사에 들어가기 전 지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
2005년 4월 24일 한국 최초의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초대 위원장인 아노아르 후세인씨(37)씨가 26일 오전 9시 비행기로 고향인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한국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기 위해 대규모 강제추방정책을 실시하던 지난 2003년 말, 이주노동자 200여 명과 함께 강제추방저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에 함께 했었다. 농성이 시작된 다음 해 2월 샤말타파 당시 농성단장이 출입국 직원들에게 길에서 납치되어 강제출국 당하자, 이후 농성 단장을 맡아 농성단을 이끌었다.
이날 인천공항에는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과 사무차장 등 지인들이 나와 아노아르 전 위원장의 귀국 길을 배웅했다.
아노아르 후세인씨는 노조가 설립된 지 삼 주도 안 된 지난 2005년 5월, 지하철역에서 출입국 직원들에 의해 폭행당한 후 연행되어 이후 청주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동안 강제퇴거를 거부하고 보호소 투쟁을 전개했었다.
![]() |
▲ 출국 전 아노아르 이주노조 전 위원장이 까지만 이주노조 위원장에게 작별포옹을 하고 있다. |
“1년간의 보호소 생활 중 여러 번 자살 생각해”
출국을 하루 앞두고 방송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노아르 위원장은 “1년 동안의 보호소 생활 중 자살을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증언해 아직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출입국 외국인 보호시설의 인권침해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오랜 보호소 생활로 영양결핍으로 인한 이와 잇몸 등이 심하게 아프고 피가 났으며, 특히, 보호소측이 아노아르 위원장을 강제출국 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일부러 한국말을 모르는 중국인들과 한 방을 쓰도록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말 욕설 등 인격 모독적인 행동들도 보호소 생활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가 보호소에서 얻은 정신적 고통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힘든 투쟁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투쟁이 한국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낫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으며, ‘투쟁’만이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고 말했다.
“소송의 당사자로서 소송이 종료될 때까지 한국에 있어야”
일 년간의 보호소 생활을 마치고 보호일시해제로 나온 아노아르 전 위원장은 다시 쉬지 못하고 위원장직을 맡았다.
아노아르 전 위원장은 자신이 지난 12월 부산에서 열린 ILO 총회에서 참석해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증언을 하려고 할 때, 법무부가 강제출국 협박을 했으며, 비자연장을 거부했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강하게 항의하고 투쟁해 비자를 연장했지만, 이번에도 법무부는 비자연장을 거부하며 강제출국 협박을 했다고 한다.
아노아르 전 위원장은 그동안 비자연장의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고등법원과 대법원 판결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소송의 당사자로서 한국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밝혔다.
한 지인은 아노아르 전 위원장이 (법무부가 비자연장을 거부할 경우) “더 이상은 미등록 상태로 버티기가 힘들다”고 토로했었다고 전해, 강제 연행과 보호소 생활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이 더 이상은 한국생활을 버티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을 예상하게 했다.
청주보호소에서 일시보호해제로 풀려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노아르 위원장은 출국 직전까지도 여전히 불면증과 두통 등 후유장애로 고통받고 있었고, 여전히 정기적인 의사 면담과 약물치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낸 11년, 결코 헛되지 않아”
인터뷰 중 아노아르 전 위원장은 “자신은 처음에는 한국에 돈을 벌러 왔지만, 한국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차별과 멸시를 받았고, 그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돈보다 더 값진 것을 얻고 고향에 돌아간다'며 한국에서 보낸 11년 동안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그 경험을 온전히 갖고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을 이주노동운동으로 이끈 것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다”는 각성이었으며, ‘이주노동운동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그 굴레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때만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나서야 합니다.”
40만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 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신을 불살랐던 한 이주노동자 운동가의 조언은 정부의 단속추방 정책에 맞서 싸워나가야 할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큰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전민성 기자)
![]() |
▲ 법무부 직원 두 명과 함께 출국심사 장으로 들어가는 아노아르 전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