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부터는 500원?!

[IPTV가온다](3) IPTV와 유료화

[출처: 일러스트 : 달군]

이름: 강선생(30세,여)
직업: 아이티 업계 종사(?)
가족관계: 남편, 1녀
참고사항: 최근 태왕 용준과 이별, 지성과 열애중


귀가한 강선생 리모콘부터 찾는다. '몸풀기 차원으로다 <이산>을 시청해볼까 하고 버튼을 눌렀는데, 아니 왠걸 기대했던 장면은 나오지 않고 엉뚱한 공지가 뜬다. 내용인즉슨 '11편부터는 시험방송 차원으로 유료로 운영된다'는 것. '아니 마른 하늘에 이런 날벼락도 유분수지..'

잠시 당황했던 강선생은 1편부터 10편까지 봐왔던 탓에 다음 편을 포기할 수 없어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계속 보기로 결심했다. 또 편당 500원이라는 금액에 큰 거부감도 느끼지 못했으며 다음 달 통신료에 포함되어 나오기 때문에 당장의 저항도 없었다.

그러나 직장동료인 조선생의 일화는 강선생의 가슴을 무겁게 눌러오고 있었다. 얼마 전 조선생의 아파트 단지 전 가구로 독점적 망을 깔아왔던 위성방송사업자가 3년 만에 단체가입에서 개인가입으로 전환하면서 두 배나 가까운 통신비를 청구했던 것이다. 결국 조선생네는 위성방송을 신청하지 않고 지상파3사와 교육방송, 홈쇼핑채널 3개만을 시청하고 있다. '사업자의 횡포'라며 길길이 날뛰며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었다는 조선생의 일화는 강선생에게 남 일 같지 않다.

만약 통신사에서 통신비를 2배로 올린다면? 이제 모든 드라마를 5백원씩 지불하고 시청해야 한다면? 헉! 강선생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편집자주]

2007년 다보스 포럼에서 빌게이츠는 “(지금의) TV를 보는 방식이 5년 후에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IPTV가 TV 혁명에 가져올 무수한 변화 중 하나는 아마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던 방송 프로그램들을 앞으로는 돈을 내고 봐야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아닐까?

최근 IPTV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불거지고 있는 지상파 방송프로그램들의 유료화 논쟁은 그동안 방송, 영화, 음악 등 제한된 시장에서 진행되어왔던 미디어와 대중문화 산업의 독점화 현상이 이제는 거대 통신 자본들의 통신 및 미디어 시장 통합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시장주의 체제로 개편되는 과정에서의 잡음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IPTV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문화적 콘텐츠에 대한 상품화, 독점화 현상은 항상 있어왔다. 영화는 항상 극장에서 돈을 내고 봐야하는 대상이었고, 음악과 신문, 방송, 책 등도 해당 산업의 생산과 유통 체계에 따라 몇몇 소수 자본들에 의한 시장 독과점 체제를 강화시켜왔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융합미디어들의 등장은 그렇지 않아도 점점 가속화되고 있던 미디어분야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고 있다. 유선 통신, 인터넷 서비스, 이동 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거대 통신사업자들의 미디어시장 진출로 이해될 수 있는 이러한 흐름은 사실 기존 통신 시장에서의 독점 구조를 연장하는 동시에 전체 미디어 시장을 통신 자본의 손아귀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새로운 질서의 등장을 의미한다.

통신 산업에 의한 미디어/문화 산업의 종속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뉴미디어에 종속된 음악시장을 들 수 있다. 음반시장과 라이브 공연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음악 산업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불법시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mp3시장(소리바다)이나 스트리밍 시장(벅스뮤직)의 등장으로 인해 이들 기존 시장의 몰락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반면 확실하게 저작권료를 챙길 수 있는 음원시장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고자 했다.

하지만 정작 음원 저작권의 열매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이동통신사들이 모두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네이트’가 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의 배경음악(BGM) 음원 사용료로 벌어들인 누계 수익은 1조 원을 돌파했으며, 이동통신사가 모바일 컬러링 서비스나 통화 연결음 서비스로 2005년에 벌어들인 수익도 대략 2,800억 원을 넘었는데, 이는 오프라인 음반시장의 3배에 육박하는 수치라고 한다.1)

이 과정에서 이동통신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안정적인 제작 투자와 수익 배분을 확보하고자 했던 음악 산업계는 오히려 이동통신사의 각종 음악서비스 사업에 끌려 다니고 있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에게 음악 사업은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다른 부가서비스 개발로 대체될 수 있는 수많은 콘텐츠 중 하나일 뿐이고 이런 힘의 불균형 관계는 결국 모바일 벨소리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익 배분에 있어 이동통신사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책정 되어있는 음원 분배구조로 이어졌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분배구조를 찾지 않는 한 이동통신 산업에 대한 음악 산업의 종속화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예정이다.

방송과 통신의 본격적인 결합을 의미하게 될 IPTV 또한 같은 흐름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일단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이란 이름으로 작년 말 법안 통과를 통해 이르면 올해 상반기부터 IPTV 사업자도 실시간 방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방송콘텐츠 제작자들은 자신의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플랫폼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방송콘텐츠는 앞으로 IPTV 사업자가 제공하게 될 무수한 부가서비스 중에 하나일 뿐이다. 만약 IPTV 사업자를 단지 케이블, 위성방송, DMB에 이어 방송시장에 뛰어든 또 하나의 유료방송 사업자로 본다면, 이는 통신자본에 의한 미디어구조의 재편을 대단히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지금의 미디어융합 현상을 추동하고 있는 핵심을 놓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의 규정에 따르면, IPTV에서 방송 서비스는 ‘실시간 방송’ 개념으로 포괄되면서 IPTV가 제공하게 될 다양한 콘텐츠(VOD, 데이터.영상.음성.음향 및 전자상거래 등) 중 하나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미디어/문화적 콘텐츠의 제공은 기존의 통신사업자들이 확보하고 있는 초고속 인터넷과 인터넷 전화 등 다양한 통신 서비스와 결합된 패키지 상품과 가격 정책을 통해 제공될 예정이다. 이럴 경우 IPTV라는 하나의 서비스 가입을 통해 미디어와 정보/통신 영역을 아우르는 온갖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통신사업자들의 경쟁력을 누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제 플랫폼 사업자는 단순히 하나의 기능만을 제공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존에는 분리되어있던 매체 및 문화 산업이 하나로 통합될 뿐 아니라 이것이 통신시장과의 통합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IPTV가 던지는 유료화의 문제는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일단 그것은 기존 콘텐츠 제공사업자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방식을 통해 빠르게 콘텐츠의 요금 부과 체계를 구축해나갈 것이다. 방송, 음악, 영화, 동영상, 게임, 각종 생활정보 서비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산업들은 이 새로운 (융합) 미디어의 등장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판매할 좋은 시장을 발견할 것이다. 하다못해 공영방송조차 자신의 콘텐츠를 유료화하겠다고 발버둥치지 않는가!

이것은 통신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도 경쟁력 있고 안정적인 콘텐츠 확보를 통해 플랫폼 시장을 장악하려는 전략과 맞아떨어짐으로써 매끄럽게 진행될 것이다. 음원 시장과의 만남에서도 드러났듯이 콘텐츠 유료화에 따른 수익분배 구조는 콘텐츠의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해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약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에는 해당 분야의 콘텐츠를 빼고 다른 부가 서비스로 대체하거나 새로운 부가서비스를 개발하면 된다. (저작권 강화에 대한 최대 수혜자는 앞으로 디지털 융합 환경에서 IPTV와 같은 융합 미디어 사업자들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편, 통신자본의 시장 전략에서 볼 때 앞으로의 정보화 사회에서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정보 전송망을 차지하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사의 망 가입자 수를 유지하거나 확대해야 한다. 이것에 걸려있는 미래의 수익구조를 계산해보면 당장의 유료 콘텐츠를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봐줄 수 있다. 일단 소비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각종 콘텐츠와 신규 서비스를 통해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볼 때 IPTV는 통신자본에 의한 미디어시장의 통합 및 흡수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앞으로 우리가 향유하게 될 미디어 및 문화 콘텐츠들의 제공방식은 물론 통신서비스의 제공방식에까지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IPTV에 대한 공동의 대응은 그러므로 매우 중요하다. 사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이해되고 있는 현재 IPTV의 사업 추진방식은 기존 방송에서의 공공성과 인터넷에서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축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힘겹게 얻어낸 방송에서의 퍼블릭 액세스 권리와 공익 채널 의무전송, 지역성 구현 등의 공적 의무는 이 새로운 융합 미디어의 고려대상에서 완전히 빠져있으며, 망은 개방적이되 콘텐츠는 폐쇄적으로 짜이고 있는 경향은 인터넷에서의 느슨한 규제망을 통해 그동안 (비교적) 자유롭게 발언하고 자본의 수익 창출 구조 외부에서 문화적 콘텐츠를 창조/재창조/이용/소비/공유하려는 누리꾼들의 능동적인 정체성을, 자본이 짜놓은 틀 안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수동적인 소비자로 철저히 탈바꿈하고 있다. 정책적 수준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면 IPTV와 같은 융합미디어 뿐 아니라 IPTV가 기존 매체들에 가지고 올 공공성의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IPTV에 대한 공공성 요구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 이 융합미디어는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공익적, 공공적 서비스 제공을 최우선으로 배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미디어 및 통신 자본의 시장 독점과 이로 인한 폐해를 규제하면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그리고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지원, 육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이 미디어의 미래를 자신의 뜻대로 그려나가듯이 우리도 적극적으로 우리의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상을 펼쳐나가자.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미디어융합이 폐쇄적인 소통구조와 또 하나의 돈벌이 수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장받아야 마땅하나 보장받을 수 없었던 우리 사회 다양한 구성원들의 미디어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시대가 되도록 하자.

1) 이동연(2007), "대중문화 산업의 독점화 논리와 대안 문화행동", 신자유주의 체제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 ‘문화권’: 문화권, 문화적 삶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연속토론회5. 사회권3(시장): “소비를 넘어 공유의 시장을” 자료집, 문화연대, 2007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