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과 희망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인가요?”
권력에 의해 준비되고 거대자본과 각종 이권이 결탁된 재개발에 서민들을 위한 설계도는 없었다. 건물 벽에 휘갈겨 뿌린 커다란 ‘철거’ 글씨는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의 가슴에 새긴 주홍글씨였고 협박이었다. 무시로 자행되는 용역깡패들의 폭력은 철거현장의 당연한 살풍경이 된지 오래다. 경찰이 늘 대비한다는 “만일의 사태”란 용역들의 폭력이 아니라, 억울해 떠날 수 없고 진정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의 저항이었다.
그날 용산에서 “만일의 사태”가 일어났다. 철거민들은 도망치듯 건물에 올랐고 서로 부둥켜안듯 망루를 쌓았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지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했고 참사가 벌어졌다. 재벌을 위한 재개발이 아니었다면, 용역깡패를 앞세우지 않고 대화에 나섰다면, 무모한 강제진압이 아닌 신속한 협상 노력만 있었더라도... 최소한 죽음만은 피하지 않았겠는가?
철거민들은 묻는다. “내 꿈과 희망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인가요?” 나 또한 묻고 싶다. 정녕 그러한가?
이명박 대통령,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지난해 1월 국민들은 동해에서 솟는 불덩이가 아닌 서민들의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치솟는 화염과 비명을 목격해야 했다. 화마가 철거민을 비롯한 6명의 생명을 집어삼키는 사이, 불길 위에 유유히 머문 강제진압용 컨테이너에 실린 시커먼 특공대의 모습은 흡사 지옥불의 악마와 같았다. 그것은 찰나의 느낌만은 아니었다. 참사 이후 이제까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보여준 모습은 새삼 소름 돋는 잔혹성이었다.
권력에 의한 살인이 늘 그렇듯 죽은 자는 있으나 책임자는 없는 상황에서 장례를 치룰 수 없었다. 유가족들은 생지옥 속에 가족을 잃은 슬픔도 가눌 길이 없었지만 공권력에 맞서 무려 345일을 싸우고 오열해야 했다. 공권력은 사과와 책임시인은커녕,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가 절단 난 채로 간신히 살아남은 철거민들에게 테러범이라며 5~6년 형을 선고했다. 불길 속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을 제 아비를 죽인 범인으로 몰아 잡아가두기도 했다. 저들의 ‘법과 원칙’엔 상식도 인륜도 없었다.
경찰은 사과 한 마디 없이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버텼고, 법원의 요구에도 끝내 수사기록 3천 쪽도 내놓지 않았다. 사퇴하는 김석기 청장을 배웅하는 경찰의 풍경은 반성하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그것이었다. 용산참사에는 당당했지만, 수장의 사퇴에는 복수에 이를 갈고 오열하는 공권력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이토록 경찰이 무자비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 권력 대통령의 덕이었을 터, 이명박 대통령은 철도파업 현장에는 득달같이 달려가 탄압을 지휘할 수는 있었어도 참사현장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노동운동은 만인을 위한 투쟁
그렇기에 용산은 더 참혹했지만, 한편 아름다웠다. 예술가들은 노래와 그림으로, 작가들은 글로, 의사들에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비범하거나 평범한 시민들은 모두 제 나름의 국화를 헌화했다. 그리고 연대했다. 차벽에 갇히고 경찰에 맞는 건 다반사, 기자회견조차 가로막혀 잡혀간 변호사도 있었다. 박종태 열사도 함께 보내고 집회를 같이 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접은 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힘들지 않습니다”는 눈물겨운 다짐은 얼마나 처연했던가. 그 즈음 진정 십자가를 질 자격이 있는 흰 수염의 예수가 용산과 함께 했고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이어갔다. 권력에게 용산은 오직 경찰의 대상이었지만 우리에게 용산은 연대였고 반성이었다.
그 연대의 힘으로 마침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얼마나 용산에 연대했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주노총은 얼마나 용산과 더불어 저항하려 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연대란 생명과도 같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틀림없는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지만, 보다 약한 이들에게 먼저 연대의 손길을 건네야 할 역사적 책무 또한 지녔다. 그러나 우리는 오롯이 제 역할을 다했다 자부할 자신이 없다. 파상적인 노동탄압도 버거웠다 할 수 있겠지만, 노동운동이 만인을 위한 투쟁에서 시작됐음을 잊지 않았다면 더 연대하고 더 노력해야 했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더 깊이 연루돼야 한다
다행히 장례만은 치를 수 있게 됐다. 혹자는 어려운 문제가 해결됐다고 안도하지만, 과연 용산은 해결됐는가?
장례를 치르기로 합의한 날 유족은 또 다시 오열하는데 위정자들은 미소가 만연한 얼굴로 기자회견을 한다. 기어이 가해 권력은 책임을 회피한 채 대리인에 불과한 총리의 유감표명 한 마디만 내놓았을 뿐,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 용산 관련 수배자들의 신원은 보장되지 않았고, 정부는 구속된 철거민들에 대한 석방은 물론 구속된 아들의 장례참석조차 배려하지 않았다. 마치 장례합의가 제 덕인 양 “유가족의 비통함을 이제 조금이라도 풀어드릴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건한 장례식임에도 단 하루도 시청광장을 내어 줄 생각이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참사의 근본원인이었던 건설자본 위주의 재개발정책은 전혀 재검토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장례를 치르게 된데 안도하기에 앞서 반성하는 이유이다. 결코 이대로 용산의 희생자들을 떠나보내고 잊어서는 안 된다. 용산참사 1주기, 2주기, 10주기... 끊임없이 기억하고 전해야 할 것이며 더 깊이 연루돼야 한다. 손에 학살의 피를 묻히고도 아니라 발뺌하고 희생자들을 모욕한 공권력을 반드시 영전 앞에 무릎 꿇려야 한다.
누구보다 지난 1년이 힘겨웠고 비통했을 유족들에게 씁쓸한 위로와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지난 1년 권력의 억압과 기만을 누구보다 더 절감하고 분노를 삭였을 모든 양심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희망을 전하고 싶다. 훗날 다시 쓰는 현대사는 용산참사를 이명박 권력의 타살로 기록할 것이며, 이로 인해 그의 권력은 균열되고 쇠락했다고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