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끝장토론, 들러리 거부 ‘퇴장’ 파행

"민주당 믿고 참가했는데"...토론자 상호토론도 없는 끝장토론

17일 오전부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에서 열린 한미FTA 끝장토론 도중 한미FTA 반대 쪽 토론자(진술인)들이 토론 도중 퇴장했다.

  외통위 한미FTA 끝장토론에서 퇴장하는 토론자들

이날 외통위 법안심사소위는 오전에 KBS와 국회방송 생중계를 통해 끝장토론으로 진행했지만,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쪽 토론자로 참석한 송기호 변호사와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이 ‘제대로 된 토론을 보장하지 않는 토론은 요식행위며 들러리에 불과하다’며 회의 진행 방식을 문제 삼았다. 또 외통위 법안소위 위원장이 한나라당 소속이고 위원도 한나라당이 2배나 많은 상황에서 일방적인 토론 종결은 강행처리 수순이기 때문에 토론 종결은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며 퇴장했다.

지난 13일 외통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여야 간사가 각각 추천한 2명의 전문가가 나와 공중파 생중계를 통한 끝장토론을 법안심사소위에서 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야당은 토론회 참가를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정책자문위원들에게 부탁했다. 범국본은 △여야합의로 토론 종결 선언 △시간제한, 의제제한 없는 토론 △찬성 쪽 전문가와 상호토론 보장 등의 전제가 되면 참석하기로 했다. 토론회가 한미FTA 통과를 위한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오전 끝장토론은 의원 1인당 질의 시간이 3분으로 제한 됐고, 그나마 의원질의 시간이 1분 30초에서 2분이 걸리면 토론자 토론은 1분 30초도 안됐다. 또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한미FTA 이행법안을 놓고 창반 양쪽이 전혀 상반된 주장을 내놨지만 토론자들 간 토론은 전혀 진행되지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끝장토론

한나라당, 토론회 다른 의미부여...“민중집회나 군중토론회 아니다”

이런 상황이 오전에 반복되자 정태인 원장은 오후 회의가 속개되자 “끝장토론에 참석하면서 여야 합의 없이 종결선언을 해선 안 되고, 의제나 시간제한도 없고, 상호토론 보장을 전제로 했다”며 “이런 여야 합의를 확인 안 해주면 이 공청회가 요식행위가 될 수밖에 없어 퇴장할 수밖에 없다”고 여야 합의 내용 확인을 요구했다.

유기준 법안소위 위원장(한나라당)은 “여야가 회의 진행 관련해 상세한 합의는 없었다. 오전 3분이 짧다고 해서 오후엔 일단 5분으로 늘렸다”며 “이 회의는 어디까지나 외통위 법안소위 회의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공청회”라며 정태인 원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원장이 제시한 기본전제가 전혀 여야 사이에 합의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송기호 변호사와 정태인 원장은 오후 2시 15분께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퇴장했다.

이들이 퇴장하자 최병국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위원(한나라당)은 “오늘 끝장토론은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회의다. 여기가 민중 집회나 군중 토론회는 아니”라며 끝장토론 방식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유기준 위원장은 “오전엔 생방송 중이라 시간제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엔 시간을 5분 드리기로 했다. 진술인들이 일방적으로 퇴장한 것은 심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외통위에서 퇴장한 후 범국본 관계자들과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토론회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외통위 법안소위는 위원장이 한나라당이고 위원도 한나라당이 4:2로 많다. 따라서 일방적인 토론 종결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아야 한다”며 “오늘 가장 놀란 것은 찬성반대 양측 2명의 전문가가 참가했는데 우리 헌법을 개정하는 ISD(투자자 국가제소제도) 같은 중요한 쟁점에 발언 기회는 3분밖에 안됐다”고 비판했다. 또 “심지어 미국은 한미FTA 이행법을 통해 한미FTA는 미국 법률 위반시 무효라고 규정한다”며 “이런 중대한 쟁점을 더 논의도 않고 오후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런 요식행위 토론에 아무 생각 없이 응하면 결과적으로 끝장 토론도 다 했으니 이제 통과시켜도 된다고 할 것”이라며 “역사에 제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는 언제든지 대등한 조건에서 일방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합의만 되면 밤을 새서라도 토론에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강실 범국본 공동대표는 “그동안 미국 의회는 의회에서 계속 문제 제기를 해 재협상까지 끌어내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꼼꼼히 챙겼다”며 “이제는 우리 국회 차원에서 꼼꼼히 챙겨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오늘 한나라당은 비준안 통과의 수순으로 범국본 토론자들을 들러리로 하려 한 것을 확인했다. 제대로 된 끝장 토론 보장이 없으면 토론에 참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태인 원장도 “한나라당이 계속 200회 이상 토론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큰 역사적 사건인 금융위기 이후 토론은 없었고, 미국 이행법안 통과 이후에도 한 번도 없었다”며 “두 가지 사건은 FTA 내용 자체를 다시 검토할 내용으로 200회 이상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장토론 퇴장후 기자회견을 하는 범국본 관계자들과 김선동 의원

끝장 토론 파행 민주당도 책임 커

이날 범국본과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의 애매한 태도를 놓고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민주당 외통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동철 의원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김동철 간사가 끝장토론회를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법안 심의 절차로 합의해줘, 끝장 토론회가 비준 속도전에 이용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김동철 간사가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야4당 정책협의회에서 합의한 끝장 토론을 김동철 간사가 임의로 법안심사소위에서 하는 것으로 정하고 끝장토론을 넣었다”며 “범국본은 정식으로 민주당에 공문을 보내 여당이 토론회를 일방적으로 종결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간 것이다. 저희가 민주당에 보장받은 방식이 아닌 걸 확인하고 퇴장했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이름만 끝장토론이고 실질적인 토론의 기회도 보장하지 않고 끝장토론을 속도전 처리 수단으로 만들려한 한나라당에 큰 책임이 있지만 민주당도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속도 있게 처리하는 데 협력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정태인 원장은 “범국본은 독소조항 재협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민주당에 성실히 협상을 진행하라고 항의한다. 민주당은 FTA 저지에 더 노력을 기울여 달라”며 “실질적인 끝장 토론회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도 “이번 토론회 파행은 민주당 지도부의 책임이다. 지난 12일에 야당공동정책 합의 내용은 실제 쟁점을 제대로 주장하고 반박과 재반박으로 각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자고 했다. 여기에 대한 여야 합의 없이 끝장 토론을 시작한 것은 민주당 지도부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오전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한미FTA 처리 방안을 놓고 일단 끝장토론 이후에 논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일단 끝장 토론이 끝나면 여당이 어떤 식으로든 비준안 강행처리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김동철 의원은 이날 소위가 끝나자 기자들에게 “한나라당이 토론 시간을 3분만 주고, 이러니 대충 토론해서 강행처리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여야 원내대표가 다시 만나 제대로 된 끝장 토론이 되도록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