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저작권법 시행 3개월도 안됐지만 문화관광부는 다시 저작권법 개정에 나섰다. 이유는 '완패한 협상'이라고 평가를 받았던 한미FTA 협정문의 내용을 국내법에 반영하기 위해서라는 것. 이에 한미FTA저지지적재산권대책위원회(대책위)는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FTA 합의 사항 이행을 위한 법률 개정"을 규탄했다.
▲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저작권법 개정 공청회. 자리는 만석이었다. |
문화관광부(문광부)는 12일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한미FTA에 따른 저작권법 일부개정(안) 공청회'를 진행했다.
문광부는 "한미FTA 협정 타결에 따라 '일시적복제권의 인정', '저작권보호기간의 연장','법정손해배상제도 도입', '비친고죄 적용 대상의 변경' 등 협정 이행에 필요한 관련 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히며 이날 공청회의 취지를 밝혔다.
취지에서도 밝혔 듯,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한미FTA 협상 결과들을 국내법에 반영하는 것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는 토론에 앞서 △FTA 협정을 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석해, 입법화 할 필요는 없다(제한적 개정이 바람직하다) △국내법의 해석을 통해 입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적극적으로 찾을 필요가 있어, 국내법의 해석이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나라 사법체계 체계와 어긋나는 제도를 무리하게 입법화하기 보다는 이러한 조항들을 추려서 추후 추가 협상 시 의제로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것 등을 제안했다.
개정안을 보면, 일시적 복제를 인정하고, 공정이용 조항을 신설했고, '보호기간 연장'과 관련해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방송제외) 보호기간을 저작자의 사후 또는 공표 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고, 외국인 보호기간에 대해 상호주의 명시했고, 한미FTA 협정문에 따라 2년의 별도 유예기간을 두는 내용으로 개정했다.
'배타적 이용권'을 신설해 출판 분야에서만 인정되던 배타적 이용권 제도를 저작물 전 분야에 걸쳐 인정했고,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유형을 세분화 하고, 유형별 면책 요건 규정 및 불법 침해자 정보 제공 청구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개정, 신설했다.
'일시적 복제'와 관련해 복제의 개념에서 일시적 고정을 추가하여 인정하고, 기술적으로 필수적인 경우에만 예외로 규정했다.
'접근통제 기술적 보호조치'를 기술적 보호조치에 포함시키되, 공정하게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 예외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문화관광부장관이 기술적 보호조치 보호에 의해 특정 종류의 저작물 등의 정당한 이용이 부당하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무력화 금지에 대한 예외를 지정, 고시할 수 있도록 했고 3년간 유효하게 명시했다.
'법정손해배상제도 도입'과 관련해 실손해 입증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저작물당 1천만 원 이내의(최대 5천만 원) 법정손해배상 청구를 가능하도록 신설했고, 법정손해배상 청구시 저작권 등록을 요건으로 하지 않았다.
법원이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타당사자에 대해 해당 정보 제공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소송준비 또는 소송 진행 중에 제시된 증거나 소송 자료 중에 포함된 영업 비밀에 접근한 소송 당사자 등에게 소송의 목적은 넘어 영업 비밀을 이용하거나 누출하지 말 것을 명하는 비밀유지명령제도를 도입했다.
음반 DVD 등에 부착하는 라벨의 위조 및 거래 행위를 금지했고, 영화 상영관 등에서 녹화기기를 이용해 영상저작물을 녹화하거나 촬영자가 직접 녹화하지 않고 곧바로 제 3자에게 송신하는 등의 경우에 대한 처벌 조항을 신설했다.
영리 상습적인 저작권 침해 뿐 아니라 비영리라도 중대한 저작권 침해를 비친고죄화 하고 저작물의 성격과 복제물의 수량 등 중대한 침해에 대한 판단 기준안을 마련했다. 중대한 침해 시 권리자의 고소 없이도 검사가 직권으로 침해자를 기소할 수 있게 했다.
사실상 한미FTA 협상 결과를 한국 법률에 그대로 반영시킨 셈이다.
▲ 한미FTA저지 지적재산권대책위는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FTA 합의 사항 이행을 위한 지재권 관련 법률 개정을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협정문 국회 검토도 안됐는데 협정문을 반영한 법률 개정이라니
지재권대책위는 12일 공청회 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FTA 협상 결과에 대해 국회의 철저한 검증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제반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는 것은 한미FTA 비준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선용진 문화연대 활동가는 "현재 한미FTA 비준 안이 국회에 상정됐을 뿐인데 정부가 법률재개정을 공식화해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지적재산권 법률 개정을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미란 활동가는 "한미FTA 협상 내용이 국민의 의료, 생존권과 문화권 등 다양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고, 제대로 된 검토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화관광부에서 나서서 협정문을 반영한 입법안을 제출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공청회는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기자회견을 개최한 이유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일시적 저장의 복제권, 접근 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 그리고 권리자에게만 유리하게 돼 있는 집행조치 등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많아 법제화가 되지 못했던 독소조항들이 한미FTA 통해 일괄적으로 법제화 돼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또한 한미FTA 협정문에 대한 국회 및 대 국민적 검토가 제대로 되지 못한 상황과 아울러 일괄타결 과정에서 미국 측의 요구가 대거 관철됐다고 평가받는 지재권 분야에서 제일 먼저 나서서 '국내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주최한다는 것 자체가 '형식적인 절차'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미FTA지적재산권분야대책위원회는 공공의약센터, 문화연대, 정보공유연대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