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금민 한국사회당 대표와 이수호 새진보연대(준) 대표가 민주노동당에 전달한 제안서는 △2007년 대통령후보 단일화와 2008년 총선 지역구 국회의원후보 단일화를 포함한 선거연합을 주요 의제로 삼고 △한국사회당, 새진보연대(준), 민주노동당 및 여타 진보정치 세력이 공동으로 기구를 구성해 독립적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 지난 7월 민주노동당과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 임종인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진보대연합 토론회 모습[참세상 자료사진]. |
이같은 제안에는 “진보대연합은 단순한 세력 연합만이 아닌 다양한 진보적 가치에 대한 논의와 진보 세력 사이의 기탄없는 토론을 담아내는 혁신의 틀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진보대연합을 위해서는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며, 하나의 합의와 공동 행동이 다음의 합의와 공동 행동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선거연합 추진기구가 성사될 경우 대선을 불과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진보정치 지형을 흔드는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들의 제안이 내년 총선을 내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연합 성패 여부는 대선을 넘어 총선 구도까지 영향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아울러 민주노동당 중심으로 추진되던 진보대연합이 줄곧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래구상 좌파를 뿌리로 하는 새진보연대(준)와 사회적 공화주의와 금민 독자후보를 내세운 한국사회당이 정치적 차이를 뛰어넘어 유례없이 손을 맞잡은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좌파 강세’ 따른 자민통 거부로 진보대연합 난항
한국사회당과 새진보연대(준)가 ‘합동 공세’를 펼치게 된 데는 구심점인 민주노동당의 무능에 따른 불만이 고조된 탓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진영 연석회의’를 제안하며 선봉에서 진보대연합을 추진해왔으나, 논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진보대연합 실현을 위한 연속토론회는 1차에서 그쳤고, 7월 말~8월 초 연석회의 구성 계획은 휴지조각이 된 상태다.
당 바깥에서는 진보대연합의 목표와 범위를 두고 당내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에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고, 민주노동당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우파 적극적 좌파 소극적’일 것이라는 초기 예상과 달리 ‘우파 부재와 좌파 적극성’으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자민통 진영이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새진보연대(준)가 내부 분열과 임종인 의원의 탈퇴로 세력이 축소되면서 당초 기대만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회당이 주요 연합 세력으로 부상하는 데 당내 일부 자주파가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당내 진보대연합특위에 결합해 있는 민주노총도 내부 갈등을 우려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 발등에 불 떨어진’ 쪽은 권영길 대선후보를 선출한 민주노동당이 아닌, 당 외부 진영이다. 이수호 새진보연대(준) 대표는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진보대연합이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이수호 대표는 정파 입김에 따라 선거연합이 고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노동당에서 독립해 선거연합 추진 정당 · 조직 간 공동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당은 왜 새진보연대와 손잡았나
새진보연대(준)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신당 창당을 목표로 출범한 만큼, 명분 실현을 넘어 조직의 사활이 걸린 진보대연합에 투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한국사회당의 ‘역공세’ 전환은 “2017년 집권 플랜”을 거론하며 “대선 총선을 넘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진보대연합”을 주장해왔던 그간 행보에 비춰볼 때 돌연한 상황이다.
정종권 민주노동당 진보대연합특위 위원은 “한국사회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명분과 자존심 때문에 그간 명시적인 입장과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진보대연합의 주창자인 민주노동당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을 계기로 압박 공세로 나오고 있다”면서 “한국사회당은 명분 있게 대선후보를 민주노동당에 양보하고 양당 통합을 부각시키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위상을 강화해 실리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지난 7월 진보대연합 실현 방안에 대해 논의한 민주노동당-한국사회당 대표회담 모습[참세상 자료사진]. |
이러한 분석은 한국사회당이 지난 2002년 대선 패배로 인한 좌절과 정당 설립요건을 갖추지 못해 지난해 희망사회당에서 한국사회당으로 재창당하는 아픔을 겪는 등 당원들의 극심한 피로감으로 올해 대선 참여 확정에 난항을 치렀던 점을 보았을 때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단독 후보로 당내 경선에 출마한 금민 한국사회당 대표는 40%를 밑도는 낮은 투표율로 대선후보에 선출됐다.
그러나 최광은 한국사회당 대변인은 “제안서에 진보대연합을 진보정치 혁신의 틀로 만들어내기 위한 논의와 토론을 하자는 내용이 1번으로 나와 있다”며 “진보정치 혁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를 제쳐두고 후보단일화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이러한 해석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이수호 새진보연대(준) 대표는 “단기적인 선거연합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2017년 진보정치 집권을 위한 새로운 기틀을 다져야 한다는 한국사회당의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고 내년 총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때 한국사회당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집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단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진보대연합의 목표가 사실상 대선보다 ‘총선’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만의 진보’대연합 무대는 총선까지 이어질까
‘진보정치 혁신’과 ‘대선-총선 선거연합’은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인가? 적어도 민주노동당의 논리 안에서는 그랬다. 진보대연합 무대에서 민주노동당이 잠시 장막 뒤편으로 물러난 지금, 한국사회당과 새진보연대(준)의 연기는 어딘가 합이 맞지 않는다. 이들의 대사만을 놓고 보면 제안서의 전제 부분은 한국사회당이, 요청 부분은 새진보연대(준)가 절반씩 나누어 맡아 작성한 것처럼 보인다. 진보대연합의 상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민주노동당뿐만이 아니라 이들도 마찬가지다.
무대의 관객은 누구인가? 아무도 없다. 이들의 제안에는 처음부터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이나 사회단체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정치의, 정치에 의한, 정치를 위한 협상이다. ‘진보대연합’이란 이름이 무색하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그간 시민사회단체들과 접촉하며 진보대연합에 대해 논의해왔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현실적인 제안을 했다고 말하지만, 대선 시기 진보정치가 기층 민중을 아우르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문호를 열어놓은 진보정치세력의 반응도 냉담하다. 노동자의힘의 한 관계자는 “진보대연합은 안 될게 불보듯 뻔하다”며 “이후 진보대연합 무산 결과를 두고 진보정치세력 내에서 책임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고 비관했다.
무대의 클라이막스는 오는 10월 6일로 예정된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다. 선거연합 추진기구 구성이 안건으로 상정돼 통과될지 여부에 따라 대선을 2개월여 앞둔 진보대연합의 생사가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