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은 오만하고 민주적 책임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종종 잘못된 처방으로 경제상황을 악화시키곤 한다고 워싱턴에 모인 시위대는 말한다. 그들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아시아 통화위기에 대한 국제통화기금의 대응태도를 보고 나도 질겁을 했으니까.”
조지프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 수석부총재(사진·현 스탠퍼드대학 경제학 교수)는 미국 잡지 <뉴리퍼블릭> 최근호에 기고한 글에서,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체제의 `내부자’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국제통화기금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97년 여름 동아시아 통화위기가 타이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 국제통화기금이 그 전에 중남미에 적용했던 것과 똑같은 긴축처방을 내렸던 것은 두 지역의 차별성을 고려하지 않은 실책으로 경기침체를 오히려 깊게 할 것이 뻔했다”면서 “당시 나는 그 처방을 바꿔보려고 여러 경로를 통해 로비를 벌였으나 국제통화기금이 자기 고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동아시아 통화위기가 인도네시아로 전염되는 과정을 회고하면서 “다민족 사회인 인도네시아에도 똑같은 긴축처방을 내리는 것은 사회불안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쪽에 얘기했으나 미셸 캉드쉬 당시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멕시코에서처럼 아시아도 긴축처방이 필요하다고 고집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멕시코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처방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대미 수출이 늘어난 덕분”이라며 “이와 달리 인도네시아의 수출을 받아줘야 할 일본 경제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90년대 초 이래 러시아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이 한 역할에 대해서도 지극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동유럽 경제의 체제전환 전략에 대해서는 시장경제의 기초토대(인프라)를 먼저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과, 제도와 역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시장 지상주의적 주장이 대립됐었다”면서 “국제통화기금과 미국 재무부는 이 가운데 시장 지상주의 노선에서 충격요법을 적용했으나, 결국 러시아 경제는 순조로운 체제전환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과정에서 러시아의 올리가르키(과두 산업재벌)들만이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 따른 국영자산 민영화 및 금융시장 개방조처를 최대한 활용해 부를 긁어모으고 늘렸을 뿐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국제통화기금이 미국 재무부와 함께 90년대 초부터 동아시아 지역에 너무 성급하게 금융시장 개방을 강요한 것이 97년 이후 이 지역에 경제위기를 발생시킨 문제의 씨앗이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미국 재무부가 백악관쪽의 반대를 물리치고 93년부터 자유화(경제개방 또는 세계화) 정책을 밀어붙였으며, 이 때문에 그 뒤 한국은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는 심지어 “국제통화기금은 1류 대학의 3류 학생들이나 가는 곳”이라며 국제통화기금 인력의 자질까지 문제삼은 뒤 “국제통화기금과 미국 재무부는 워싱턴 시위대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주명 기자c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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