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는 가운데,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임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도를 바꾸고 사용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노동자 추정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명 정부가 제도 도입을 국정과제로 약속하고 관련 법안 8건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실제 노동법 적용 범위를 얼마나 확대할 것인지를 두고 입법 방향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1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6간담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주영·김태선·박홍배·이강일·이용우 의원,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함께 ‘국정과제 노동자 추정 제도 도입,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근로기준법 적용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동자 추정제를 단순히 소송 과정의 입증책임을 바꾸는 제도에 그치지 않고 근로기준법의 보호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자 추정제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을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를 부정하려는 사용자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려는 당사자가 직접 업무 지휘·감독과 종속관계 등을 입증해야 한다. 배달 라이더와 타다 운전기사 등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지만, 개별 노동자가 장기간 소송을 벌여야 하는 문제가 여전하다.

양대 노총은 제도 도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무를 제공받는 자가 노동자가 아님을 입증하도록 하는 ‘노동자 추정제’야말로 비정상화된 노동시장을 바로잡을 핵심 열쇠”라며 정기국회 내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도 개별 소송을 통해서만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분쟁 해결을 전제로 한 추정 규정만으로는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며 근로기준법 제2조의 근로자 정의와 판단기준 자체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조 발제를 맡은 조현주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노동자 추정제의 핵심이 입증책임의 전환과 노동자 보호 범위 확대에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노동자 추정제를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정의 조항에 포함하고, 사용자가 노동자성을 부정하려면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입증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제안했다. 조현주 변호사가 제시한 요건은 △노동자가 사용자 사업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거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지 않을 것 △업무 내용과 방식 및 보수 산정 기준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것 △사용자의 지휘·감독이 없을 것 △핵심 작업도구를 소유하고 독자적인 고객 확보와 추가 이윤 창출이 가능할 것 등이다.
조현주 변호사는 특히 기존의 직접적인 지휘·감독 여부보다 노동자가 다른 사람의 사업에 얼마나 결합돼 있는지, 독립적인 사업자로 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랫폼 기업이 배차 알고리즘과 전산시스템 등을 통해 노동을 통제하는 현실을 기존의 노동자성 판단기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8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추정 규정을 어디에 둘 것인지, 사용자가 노동자성을 부정하기 위해 입증해야 할 요건을 명시할 것인지, 민사·행정 분쟁과 형사절차 중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지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 변호사는 분쟁 해결 과정에만 추정제를 적용하는 방안은 기존 근로자 범주를 확대하지 못하며, 노동자 보호 여부를 다시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에서도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완 방안이 제시됐다. 정영훈 국립부경대 교수는 노동자 추정제 도입에 동의하면서도, 사용자의 지휘·감독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알고리즘과 평가·제재 체계를 통한 간접적인 통제를 법률에 명확히 반영하고, 추정 규정이 노동위원회와 근로감독, 사회보험 관련 행정절차에서도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미 근로복지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럽연합의 플랫폼 노동 지침을 검토하며, 사용자가 노동자 추정을 뒤집으려면 명확한 반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소규모 사업장과 자영업자가 많은 국내 현실을 고려해 구체적인 반증 절차와 안내·교육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하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 역시 노동자 추정 규정이 법원의 최종 판결에만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당수 노동자성 분쟁이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진정 단계에서 끝나는 만큼, 노동자가 실제 권리를 구제받는 초기 절차부터 제도가 작동해야 한다는 취지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정부의 입법 접근 방식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남우근 소장은 노동자 추정제를 별도의 분쟁 해결 조항으로 두는 김주영 의원안에 대해 “근로자 추정제의 목적이 충족되지 못하는 안”이라고 평가했다. 단순한 입증책임 전환을 넘어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 자체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우근 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노동자 추정제를 통해 기존 노동법의 적용 대상을 우선 확대하고, 그 이후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위한 별도의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정부는 그 순서를 거꾸로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별도의 노동자 범주를 만들 경우 기업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노동자 추정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와 함께 실제 입법 과정에서 풀어야 할 쟁점도 드러났다. 특히 근로자 정의 조항 개정 여부, 사용자의 입증 요건, 행정절차 적용 범위,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의 관계가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 추정제 도입을 국정과제 93호 ‘차별과 배제 없는 일터’에 포함하고 올해 하반기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대 노총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의 실질적인 심사와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