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천 원이던 같은 거리가 오늘은 2천5백 원입니다. 왜 깎였는지, 어떻게 계산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배달 노동자들이 일손을 멈추고 청와대 앞으로 모였다. 배달료는 떨어지고, 플랫폼은 노동을 통제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대기·이동 시간을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을, 학습지 노동자들은 회사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개인사업자로 취급받는 현실을 고발했다.

민주노총은 4일 청와대 앞에서 ‘적정 보수 쟁취!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출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소속 배달 노동자들은 앞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청와대 앞으로 이동했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지부장은 코로나19 이전 3천 원이던 기본배달료가 2천 원대 초반으로 떨어졌고, 일부 하청 라이더는 1천 원에도 못 미치는 배달료를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내비게이션으로 6킬로미터를 달렸는데 배달료 기준 거리는 1.6킬로미터, 실제 거리의 27%만 쳐준다”며 “우리가 달린 나머지 길은 공짜 노동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깎인 단가를 메우려면 더 빨리, 더 오래 달릴 수밖에 없다”며 배달료 삭감이 생계뿐 아니라 안전까지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이창배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도 플랫폼이 노동조건을 좌우하면서 사용자 책임은 회피한다고 비판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호출을 기다리거나 이동하는 시간에 보상받지 못하고, 업무 비용과 우선 배차권 구독료까지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창배 위원장은 “플랫폼은 요금을 정하고, 수수료를 떼고, 누구에게 일을 줄지 결정한다”며 “알고리즘은 평점과 수락률로 노동자를 줄 세우고, 순위에서 밀린 노동자의 콜을 막는다”고 말했다. 이어 “밤새 일해도 생활비가 모자라 휴일도 쉬지 못하고, 등급이 떨어지면 불이익을 당하기에 몸이 아파도 운전대를 놓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정난숙 서비스연맹 전국학습지노조 위원장은 “저는 개인사업자입니다. 저는 위탁계약노동자입니다. 저는 특수고용노동자입니다”라며 자신에게 붙은 여러 이름을 열거한 뒤 “저는 그냥 노동자이고 싶습니다. 저는 학습지 노동자입니다”라고 말했다. 정난숙 위원장은 3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부모를 상담하며 회사의 업무 지시와 실적 압박을 받아왔지만, 계약서에는 여전히 개인사업자로 적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있는데 노동자에게 책임을 갖는 사람이 없다”며 회사가 노동자를 통제하면서도 생활과 건강을 보장할 책임은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출처: 민주노총

이날 노동자들의 비판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향했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위한 기본법과 노동자 추정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별도의 보호·지원 제도만으로는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하거나 노동조건을 바꾸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홍지욱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현장 노동자들은 실효성 없는, 추상적인 기본 원칙과 방향만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아닌 근로기준법 적용,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추정제 역시 현장 의견을 반영해 실효성 있게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대 발언에 나선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도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법안이 사용자에게 노력을 요구할 뿐,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제재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부당해고나 불공정 계약이 발생해도 사용자가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권리 구제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지영 대표는 “새로운 노동이 아니라, 새로운 사용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사용자에게 노동자를 더욱 정교하게 통제할 수단을 제공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부당해고와 괴롭힘, 무급 노동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정 보수 보장도 핵심 요구로 제기됐다. 민주노총은 지난여름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농성을 벌인 이후 정부의 최저보수제 논의가 본격화됐다며, 제도 마련 과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지난 6월 ILO가 채택한 플랫폼 노동 협약의 비준도 요구했다. ILO는 6월 12일 제114차 국제노동총회에서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제193호 협약을 채택했다. 협약은 적정 보수와 산업안전, 알고리즘 관리의 투명성 등을 위한 국제 기준을 제시했다.

민주노총은 결의문에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 870만 명이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우리는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 아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적정 보수를 보장받고,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한다”며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최저보수제 도입, ILO 플랫폼 노동 협약 비준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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