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청소년 상담 지침이 동성애를 ‘비행’으로 분류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성소수자 청소년을 지원해야 할 공적 상담이 성적 지향 자체를 문제로 낙인찍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성평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2025년 12월 발간한 ‘청소년동반자 활동매뉴얼’ 개정4판은 ‘문제영역’ 항목에서 “비행 관련 문제”로 “성(성폭력, 동성애 등), 도벽, 약물 등”을 열거하며 특정 성적 지향을 ‘비행’으로 명시했다.

성폭력과 동성애가 같은 ‘비행’?
대용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동성애를 성폭력과 같은 위치에 놓고 설명하는 식의 매뉴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며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케이 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도 “도벽·약물·성폭력과 동성애를 같은 비행으로 놓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성평등가족부는 동성애를 비행으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히 아니”라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어떤 유형의 위기도 차별 없이 상담을 다 받아주는 것을 전제로 기술”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도 “(동성애를) 비행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최대한 빠르게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성적 지향을 비행으로 묶은 분류가 7년 가까이 유지됐다는 점에서 단순 실수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문구는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9년 12월 개정3판에 처음 등장해 2026년까지 수정되지 않았다. 대용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미 한 차례 개정을 거쳤음에도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왔던 결과”라고 평가했다.

학교·1388 거쳐 동반자 상담…정부의 공식 매뉴얼
‘청소년동반자 활동매뉴얼’은 정부가 제시한 공적 상담 지침이다. 개발원이 주관하는 청소년동반자 필수교육에도 매뉴얼 활용이 포함됐고, 성평등부는 청소년동반자 선발공고 때 “청소년동반자 프로그램 활동매뉴얼”을 “사전에 열람할 수 있도록 안내”하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청소년동반자는 학교와 가정을 직접 찾아가 상담하고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는 전문인력으로, 학교나 청소년상담1388 등을 통해 의뢰된 청소년 가운데 중·고위험군으로 선정된 내담자들에게 배정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서 1398명이 활동했다.
청소년인권활동가인 윤수영 녹색당 부대표는 최근 보도된 공적 상담기관과 민간단체의 성소수자 상담 실적을 차이를 예로 들며 “이러한 것들이 누적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기관과 상담사, 청소년동반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준의 부재, 차별금지법으로 판단 기준 세워야
이 같은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별금지법은 고용·교육·행정서비스 등에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을 예방·시정할 공통의 기준을 마련하려는 법이다.
대용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어떻게 평등에 도달하고 이를 실현할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없는 상태”라며 “기준 없음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차별금지법 제정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이 기준이 잘못됐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제도로서 차별금지법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차별금지법은 2007년 정부안이 국회에 처음 제출된 뒤 폐기와 철회를 거듭하며 19년 가까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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