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와 투기 거품: 더그 헨우드와의 인터뷰

[월간평론(www.monthlyreview.org)] 2001/4월호 편집부

더그 헨우드는 {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버소, 1997; 국역: 사계

절출판사, 1999)의 저자이자 [레프트 비즈니스 옵저버]의 편집인 겸 주요 필자이며

[월간평론]에도 자주 기고하고 있다. 헨우드는 올해 초 우리의 절친한 친구인 크리

스천 패런티({미국의 감금(Lockdown America; 버소, 1999. [월간평론] 2001년 3월

호에 서평이 실려 있다)}의 저자)와 [샌프란시스코 베이 가디언]의 지면을 통해 인

터뷰를 한 바 있다. 지난 2월말 우리는 헨우드에게 몇 가지 추가적인 질문을 했다.

아래는 이 두 인터뷰를 합한 것이다.

질문(이하 Q): 널리 쓰이는 ‘세계화’라는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그 헨우드(이하 DH): 그건 매우 부정확하고 많은 것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좌

파 진영에서는 ‘자본주의’나 ‘제국주의’, 또는 두 가지의 일정한 결합 대신 ‘세계

화’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건 지배계급에서 나온 어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세계은행이나 주류 전문가들을 보세요. 그들 모

두는 ‘세계화의 불가피성’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좌파는 -그 정확한 의

미가 무엇이든간에- 그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 앞에 부정적인 표시를 답니다.

이들은 이 용어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는 반대운동의 비판적 접근이 어떠해

야 하는지 등을 세밀하게 추려내지 않아요.

또한 제 생각에 ‘세계화’는 과거의 때묻지 않은 ‘지방화된’ 시대-모든 일이 더 좋

았던-를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화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적, 착취적 양

상보다도 국제화 과정 자체를 적으로 간주합니다.

국제주의는 진보진영이 껴안아야 할 무언가입니다. 전 우리가 세계주의

(cosmopolitanism)와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교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어요.

Q: 그렇다면 왜 ‘세계화’란 용어를 사용하는 거죠?

DH: ‘자본주의’나 ‘제국주의’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를 머뭇거리는 거죠. 왜 이런

말들은 유행에 뒤떨어진 거라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저로서는 뉘앙스도 부드럽고

의미도 잘못된 대체용어를 받아들이고 싶진 않군요. 사람이란 사물들을 이름으로

지칭하고 그 이름을 통해 사물을 사고하기 시작합니다. 운좋게도 제가 보기에는 불

순분자들 쪽이 이런 의지가 더 많군요.

일단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자본주의란 언제나 국제적인, 국제화하는 체제

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 속도가 빨라져왔다고 말할 순 있겠지만 오늘날의 정치경제

에 특별히 새로운 국제적인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가령 어떤 기준에서 보면 19세기 후반의 자본 이동과 국제무역 수준이 오늘날보다

더 높습니다. 백년 전 우리는 노골적인 제국주의의 시대를 살았으며 이는 분명 일

종의 세계화였습니다. 자본주의는 항상 전지구적 체제, 세계체제였어요. 모든 것이

정말 천편일률적이고 ‘지방적’이었던 유토피아를 가정하는 건 역사적으로나 정치적

으로나 그릇된 거예요.

Q: 혹자는 당신의 논지는 인정하지만 국제 거래 및 통신의 순량(純量)이 질적 전환

을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DH: 분명 모든 게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보와 자본이 몇 주의 속도-가령, 대

서양 횡단 항해 같은 거지요-로만 이동할 수 있었던 세계로부터 전신의 시대로의

전환이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어떤 것보다도 훨씬 큰 전환이었지요. 초 단위에서

10억분의 1초 단위로의 변화는 더 빨라지는 것이지만, 과연 정말 과거의 변화들보

다 더 근본적이거나 중요한 걸까요?

전신 덕분에 우리는 전지구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당시에는 무(無)로부터 창조된 전지구적인 사고방식 전체를 물려받았지요. 전화나

사진, 제트기 여행 등도 마찬가지예요. 이 모든 게 그 유명한 ‘지구촌’의 탄생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과거로부터 분리된 어떤 새로운 종류의 사차원 공간

으로 진입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또 자본과 상품의 국제적 이동이 오늘날 다른 기술적 형태를 띨지도 모르지만, 세

계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적 관계는 여전히 변한 게 없습니다. 여전히 노동자를

고용하고 통제하며 이윤을 뽑아내는 기업주들이 존재합니다. 여전히 식민화된 주변

부에 정책을 명령하고 복종을 요구하는 제국주의 중심부가 존재합니다. 또 여전히

지배와 복종의 채권자-채무자 관계가 존재합니다.

Q: 자본주의에서 부(富)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DH: 전 아주 구식입니다. 제 생각에 부는 -그게 어떤 종류로 형태가 변화되든간에-

기본적으로 생산과정 상의 노동 착취 및 자연 착취에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노동자

들이 부를 생산하고 그 후 자본 소유자들에 의해 수용(expropriation)-탈취-됩니

다. 19세기의 방식처럼 자본가들에 의해 직접 수용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종종

우리는 이제 한 명의 공장 소유자를 지적해서 “나는 그를 위해 일하고 내 노동이

그를 부자로 만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동일한 사회적 관계입니다.

지금은 제도적으로 훨씬 더 복잡합니다. 부는 이 모든 금융시장들을, 상품에서 화

폐와 주식으로, 그리고 다시 화폐와 상품으로 바뀌는 이 모든 변형을 통과합니다.

가령 갭(Gap)사의 의류를 만드는 노동착취공장(sweatshop)에서 부를 생산하는 사람

들은 주식이나 채권, 신용기금 등을 통해 부를 통제, 축적하는 사람들과 지리적으

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본적으로는 노동자들이 부를 생산합니다. 자

본가와 금융가들은 그 부를 수용하는 거지요.

Q: {신경제?}라는 책을 마무리하고 계시죠? 그 책에 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DH: 지난 3, 4년간의 신경제 담론 전체-닷컴 주식이 붕괴하고 경제가 불황의 조짐

을 보이면서 이제는 수그러들고 있지요-는 컴퓨터 및 통신 기술이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놓아 과거의 모든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추측컨대,

정부가 이제 힘을 잃고 금융이 ‘민주화’되었으며 놀라운 ‘자발성’이 중앙 무대로

옮겨가고 경기 순환이 종식되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번영’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는 겁니다. 또한 과거에 유래가 없는 엄청난 생산성 성장의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얘기들을 합니다.

사실 과거에 이와 유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수사(修辭)는 오랜

강세시장(bull markets; 주식시장 등의 상향 시세 시장-옮긴이)을 겪고난 후 나타

났던 과거의 수사와 아주 유사합니다. ‘신시대’에 관한 이러한 자아도취로 귀결되

는 열광적인 주식시장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 적어도 세 차례 이러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1900년과 1901년 즈음

세기 전환기의 열병과 결합된 광기에 가까운 거품이 있었습니다. 열광적인 기술 광

신주의와 뒤섞인 일종의 역법(曆法) 미신이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폭발 직전인

1920년대 후반과 60년대 후반에도 ‘신시대’에 관한 과잉 열풍이 불었습니다. 적어

도 지금의 광증은 시장이 가라앉고 닷컴의 로드킬(roadkills; 원래 고속도로를 건

너다 차에 치어 죽은 짐승들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정보고속도로에서 비명횡사하

는 기업 및 개인들을 지칭한다-옮긴이)이 늘어나면서 수그러들기 시작하고 있습니

다.

이 모든 시기의 대중적 저술은 항상 놀라울만치 비슷합니다. ‘기술이 야기한 삶의

변화로 다른 모든 것이 낡은 게 되어버린다’는 게 그것이죠. 언제나 신기술 덕분에

등장한 전세계 민족들 사이의 이해의 신시대(new era of understanding)라는 주장

이 횡행합니다. 평화, 사랑, 이해, 통상 등의 말 말입니다.

60년대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의장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은 신시대라는

수사를 무언가 우려스러운 것으로, 사람들이 너무 들떠있다는 위험한 신호로 보았

습니다. 1929년과 너무나도 흡사했지요. 이게 투기에 반대하는 고풍스러운 중앙은

행장류의 기질입니다. 오늘날에는 앨런 그린스펀이 신경제 테제의 주된 주창자입니

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경제를 선전해요. 결국 과거보다 지배계급의 훨씬 높

은 층위에 열광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Q: 금융과 투기에 대한 이러한 문화의 환각에 가까운 집착을 감안한다면, 아주 기

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가치가 있을까요? 최근의 주식시장 붐이 어디로부터 연료

를 공급받았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DH: 이 강세시장이 몇 가지 단계를 거쳤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982년 8월에 시작

된 이 활황은 그 후 거의 중단된 적이 없지요. 1987년에 대폭락이 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았고 공식 기준으로 보면 그에 뒤이은 불황 또한 심각하지 않았습니

다. 따라서 강세시장은 위대한 볼커의 압박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었습니다. 폴

볼커는 1979년에 연준을 인계받았고 거의 그 직후에 금리를 7%에서 18%를 넘어서

20%로 몰고 갔습니다. 그 결과 아주 심각한 불황을 낳았지요. 그 공식적 이유는 인

플레이션과 임금 상승을 종식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불황은 다른 문제들도 치료했습니다. 상품생산 국가들은 카르텔을 형성해서 물가를

인상시키고 있었어요. 세계 남반부에서 전반적인 반란이 계속되고 있었지요. 미국

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제국의 힘을 잃어버렸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국

내적으로는 살쾡이 파업(wildcat strikes; 노동조합 일부가 조합 지도부의 승인 없

이 하는 파업-옮긴이)의 물결이 휘몰아쳤고요. 노동계급이 노동에게, 사장에게 ‘엿

먹어라’라고 외치는 듯이 보인, 말하자면 ‘블루칼라 블루스’의 시기였어요. 이런

정서는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여러 번의 파업이 벌어졌지요.

유럽에서는 수많은 노동자 시위와 전투적 행동이 벌어졌습니다.

60년대 후반인가 70년대 초반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한 유명한

보고서는 경제 인플레이션이 그토록 많은 사람이 거리로 몰려나온 사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Q: 다시 말해 통화만이 아니라 기대감의 인플레이션이 있었다는 거군요.

DH: 바로 그 말이예요! 그게 바로 영국에서 새처가 집권하고 똑같은 일을 한 것과

동시에 볼커가 한 일이예요. 볼커는 미국의 금리를 세 배로 올리고 아주 깊은 불황

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나서 레이건이 집권해서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제국의

군사기구를 재건하겠다고 약속했지요. 레이건은 복지국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착수했어요. 규율이 다시 강조되었습니다. 노동조합들이 깨지고 미국 국내뿐 아니

라 세계적 차원에서도 노동에 대한 자본가의 힘이 다시 강조됐지요. 지배계급의 힘

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큰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80년대 초반의 불황은 미국과 전세계 노동계급을 엄청나게 겁주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측의 강경해진 태도-그레나다 침공이 한 예이지요-는 ‘신경제질서’에 관한

제3세계의 진보적인 발언의 기를 꺾어놓았습니다. 미국이 거대한 군사 증강책에 착

수하고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훨씬 더 단호해지는 게 명확했어요.

이 모두는 80년대 초반에 확립됐습니다. 이는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미국 이윤율

의 장기 하락을 끝내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이윤율이 상승하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이윤율 상승과 전부문에 걸친 조세 및 규제 상의 변화로 대규모적인 상향 소득 재

분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주식소유 계급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놀라운 시대로 접

어들고 있었지요.

따라서 강세시장은 처음에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아주 합리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이

윤이 올라가면 시장도 상승하니까요. 자본 소유자가 되기에는 아주 좋은 시기가 되

고 있었습니다. 80년대 내내 이런 일련의 환경이 팽배했습니다.

Q: 주류의 언어를 사용하자면 주식 소득이 올라가서 주식가치가 오르고 그래서 80

년대의 주식시장이 합리적이었다는 건가요?

DH: 맞아요. 그리고나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시절인 89년에서 93년 사이에 경제

가 꽤 활기를 잃고 금융시장이 다소 곤란에 빠진 시기가 도래하죠. 그 때 걸프전도

있었죠. 그러나 그게 끝난 후 모든 게 다시 시작됐습니다. 그리곤 클린턴이 집권했

고, 최상위 1%에 대한 세금을 올린 걸 빼고는-그가 한 몇 안되는 훌륭한 일 중 하

나였죠- 자본의 지배에 대한 정치적 도전이 전무하다는 게 분명했습니다. 민주당

내에 남아있던 골칫거리나 사민주의 경향은 전부 패배당하고 일소됐습니다. 민주당

지도부 협의회(DLC)의 창립자 중 한 명인 클린턴이 한 몫 단단히 했어요.

클린턴의 대실패 이후에는 국가 의료보험 프로그램에 대한 위협은 끝났습니다. 그

리고는 금융 근본주의(financial orthodoxy)가 민주당을 장악했고 따라서 강세시장

과 자유무역주의자들의 의제에 저항하는 제도적인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월스트리

트와 주식소유 계급은 아주 만족해하며 계속해서 주식을 사들였죠.

하지만 95년 즈음에는 그런 합리적 상황이 멈추면서 사태가 비합리적으로 흘러넘치

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어요. 이윤의 상승이 저하

됐습니다. 이윤율 수치는 96년에 정점에 달하고나서 그 후로는 조금씩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지난 4, 5년은 대체로 고전적인 거품 형태로 강세시장이 스스로를 먹어치우는

흐름이었습니다. 시장이 상승한다는 이유로 시장이 상승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열

광하고 점점 더 거품에 빠져들었습니다.

Q: 미국 주식시장에 연료를 공급하는 데 있어 이른바 해외로부터의 도피자본

(flight capital)이 한 역할은 어떤가요?

DH: 분명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시아 경제위기는 아시아로 향하던 많은 자본이 방

향을 돌려 미국으로 향하게 만듬으로써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했습니다. 94년의 메

히코 위기 또한 비슷한 영향을 미쳤죠. 많은 돈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빠져나와 미국

으로 흘러들었어요. 일본과 서유럽의 불경기 또한 이 곳의 돈의 흐름에 공헌했고

결국 시장에서 평가절상을 낳았습니다.

이와 같은 해외자본의 엄청난 유입-지난 몇 년 동안 한 해에 2, 3천억 달러-은 확

장일로의 우리나라 경제에 추진력을 달아줬어요. 시장을 계속 성장시켰고요. 소비

자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수입 이상으로 지출할 수 있었습니다.

금융 말고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동구 블록의 붕괴가 낳은 효과들이 확실히 자본가

계급의 확신에 이바지했다고 봐요. 지금으로선 그들의 지배에 대한 눈에 띄는 도전

이 전무합니다. 소련의 오류가 무엇이든간에 적어도 소련은 우리가 뭔가 다르게 일

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고를 구현한 거였습니다. 그런 대안 모델이 없어진 건 경제

에 대한 국가 규제나 재분배 정책의 모든 형태를 불신하게 만드는 데 소련의 붕괴

를 이용한 전세계 자본가들에게는 아주 신나는 일이었죠. 그리고 확실히 러시아의

도피자본은 많은 현금을 주입시켰어요.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구소련 등

에서 빠져나온 많은 현금이 미국의 주식시장으로 들어왔죠. 다른 나라들의 이 모든

참화가 미국의 지배계급에게는 굉장한 결과를 주었습니다.

Q: 현재의 국제수지 계정 상의 지속적인 대규모 적자가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을까

요? 약세시장(bear market)이 등장, 미국으로의 자본 흐름을 역전시키거나 적어도

그 유입을 상당량 줄이지 않을까요? 이렇게 될 경우 잠재적인 문제는 뭔가요?

DH: 그게 큰 문제 중 하나이자 오랫 동안 있어온 문제입니다. 80년대에 처음으로

문제가 됐고 당시 대중적 우려가 집중된 주제였지요. 적자는 90년대 초반 줄어들다

가 다시 큰 수준으로 확대됐습니다. 그 이래로 자금을 동원해서 적자를 메워야 했

고 미국의 순(純)외채는 매년 늘어났어요. 이제는 더 이상 이에 대해 대중적인 우

려의 목소리가 크지는 않지요. 제 생각에 그 이유 중 하나는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에는 ‘쌍둥이 적자’-연방예산 적자와 무역적자나 경상수지적자-에 관해 말하는 게

손쉬운 일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경상수지적자는 계속되고 심지어 연방정부가 적

자에서 흑자로 돌아섰음에도 확대됐습니다. 이 문제가 이제 더 이상 방탕한 공공부

문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없어지고 오히려 숭배받는 민간부문에 그 화살이 돌

려져야 하면서, 이런 말은 불편해졌고 이제는 들을 수 없어졌습니다.

물론 적자가 끊임없이 지속될 순 없겠지만 얼마 동안 계속될지는 말하기 어렵습니

다. 적자나 채무가 어디서부터 예측가능한 위험 수준에 도달하는지를 콕 찍어주는

마술펜은 없어요. 채권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오래된 대부금을 차환(借換)해

주지 않고 신규 대부를 확대해주지 않는 순간이 바로 상황이 어려워지는 때지요.

그런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면, 미국에서 심각한 불황을 야기할테고, 세계 다른

지역들, 특히 지난 20년 동안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에 상당 부분 의존해서 성장해

온 라틴아메리카에 예기치못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Q: 주식시장들이 대규모 박차를 가하는 지금 사람들의 눈은 경제적 위험에 고정되

어 있습니다. 아마도 훨씬 더한 위험은 파생상품이나 외환 등에 대한 믿기지 않는

규모의 투기에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의 신용위기들에

서 신속하고 정력적으로 구멍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금융투기의 고무줄이 극

도로 팽창하는 지금, 이 고무줄이 구출용으로는 너무 가늘어질 가능성은 없습니까?

DH: 제 생각에 2차대전 이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진정한 혁신 가운데 하나는 금융

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한 것입니다. 제1세계 각국 정부는 계속해서 파산하는 은행

들을 구제했습니다. 물론 많은 미국인들은 80년대 후반의 저축대부조합 위기

(savings and loan crisis)를 잘 알고 있지만, 거의 같은 시기의 서유럽이나 오늘

날의 일본에서 비교적 훨씬 더 큰 규모의 많은 유사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80년대

제3세계의 외채위기와 그에 뒤이은 금융공황은 그 조정 비용 대부분을 채무국들 자

신에게 이전함으로써 관리되었습니다. 제1세계 채권자들을 심각한 손실로부터 보호

하고 제1세계 각국 경제를 심각한 불황이나 그보다 더한 위기에서 막아낸 거지요.

이런 마술이 언제 그 힘을 다하게 될까요? 지금까지의 기록을 보건대 반대쪽에 내

깃돈을 거는 건 무모해 보이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지난 89년 거품이 터진

후 경제를 재출발시킬 수 없었던 일본조차도 오랜 불경기를 견뎌왔지만 붕괴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이 현재 일본과 유사한 상황

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보아도 전혀 무리는 아닙니다.

Q: 소비 지출이 소득을 훨씬 상회해 왔습니다. 소비가 증가하는 건 제쳐두더라도

지금 수준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도 부채가 늘어나야 합니다.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

지 않는다면 기존 부채를 상환하는 데만도 또 다른 신규 부채가 늘어나야 합니다.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이지요. 은행들은 기존 채무의 상환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악성 채무가 부풀어나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DH: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예요. 2000년 말과 2001년 초에 채권자들이 훨씬 더 신

중해지기 시작했다는 몇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위험한 차용

자들에 대한 대부 확대가 거부될 경우, 세계를 유지시키는 연준도 경제를 끌어주지

(jump start) 못할 겁니다. 국제적 상황과 마찬가지로, 신규 자금의 물꼬가 잠기고

부채가 있는 가계와 기업들이 새로운 신용의 주입에 의존하는 대신 현재의 소득으

로 부채를 상환하기 시작해야 하게 되면, 채무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30년대의

공황이나 90년대 일본의 불경기는 신용기관이 마비되면서 생긴 겁니다.

지금 여기 미국에서 우리가 처해 있는 경제 상황과 유사한 전례가 현대에는 없습니

다. (한번도 충분하지 않았던) 안전망이 갈가리 찢어지고 있어요. 이게 뜻하는 건

인류에 미친 야만적인 결과는 제쳐두고라도 과거의 ‘자동 안정장치(automatic

stabilizers)’가 이제 더 이상 자동적인 안정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복지

및 실업 보험은 개인 소득에 안전판을 더해서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을 굶주

림에서 구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이 가라앉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유

지시켰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복지수당 자격부여도 없고 초기 사이클에 비해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실업자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또한 이제 어느 누구

도 정부 지출이 경기하락을 막을 수 있다고 믿지 않아요. 부시는 엄청난 감세(減

稅)를 제안하고 있지만 부자들에게만 너무 치우쳐 있어 전반적인 효과는 없을 겁니

다. 이건 21세기 초가 19세기 말을 닮아가는 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해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DH: 지난 20여년의 정치생활에서 우울한 양상들 가운데 하나는 좌파의 그토록 많은

수가 절대적 무력감에 빠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지난 몇 년간 패배주

의가 역전되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확신이 커가고 있는 듯해요. 이러한 WTO 반대,

세계은행 반대 운동의 발전은 -이 운동의 이른바 ‘지도자’들 대다수가 갖고 있는

표준적인 분석에 대해서는 일단 유보하더라도- 정말 놀라운 광경입니다. 시위에 참

여하는 사람들과 말을 나눠보면 모든 종류의 급진적 사고에 대해 굉장히 개방적인

걸 발견하곤 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견뎌온 이 아주 오랜 반동의 시기가 이제

드디어 종언을 고하는 느낌이 들어요. 전 타고난 비관주의자이지만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정치에 관해 너무나도 낙관적인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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