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두 악마 : 이라크와 유고슬라비아

– 노동자 세계(Workers World), 게리 윌슨(Gary Wilson) –

신유고의 세르비아 코소보주에서 알바니아계 주민들과 세르비아의 유혈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제2의 보스니아 전쟁’, ‘제2의 유고내전’, ‘제2의 발칸반도 국

제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보이자 미국, 영국을 비롯하여 신유고에 대한 강

한 제재를 주장하며, 중국, 러시아등은 국제사회를 반대하는 등 국제사회의 이

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세계의 언론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코소보분쟁의

본질을 분석하는 글과 이해를 돕고자 기간 코소보 분쟁을 개요하였다. – 편집

자 주 –

두 ‘악마들’이 미언론의 표지에 출몰하다 : 이라크와 유고슬라비아

지난 몇주동안, 빌 클린턴 대통령은 양국에 대해 폭격과 군사적 점령을 하겠

다고 위협해왔다. 미국 의회는 두 나라를 비난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이라

크에 대한 제재가 훨씬 가혹하지만 어쨌든 두 나라 모두 미국의 제재를 받을 것

이다.

미 상원은 이 두 나라의 지도자를 “전범”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 상원이야

말로 세계의 어느 정부보다도 전쟁 광이다. 3월 5일경, 중무장한채 전쟁준비를

마친 4만4천여명의 군인들이 이라크 접경지역에 있었다. 같은 시각, 약 10만여

명의 미군과 나토군이 유고슬라비아를 둘러싸고 워싱턴으로부터의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3월 12일, 클린턴은 유고정부가 워싱턴의 명령을 준수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

우 수도 베오그라드를 공습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해 보

이자 반전운동이 재빠르게 일어났다. 그들은 클린턴 행정부에게 “우리는 당신의

인종주의적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반전운동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났고

워싱턴으로 하여금 전쟁을 철회하도록 만들었다. 반전 운동이 이라크에 강제된

제재들을 폭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제재들은 전쟁의 한 형태였고 이라

크 민중들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와 반전운동

그러나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미군의 협박과 제재는 어떤가?

반전운동이 있어야 함에도 지금까지 그와 같은 반전운동은 없었다. 뉴스언론

은 베오그라드 유고정부와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대통령에 대한 적대감을 조성하

기 위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밀로셰비치는 사실 사담 후세인과 그리 많이 다르지는 않다.

밀로셰비치는 2차대전 이후 유고연방을 세운 사회주의적 국제주의(Socialist

Internationalism)를 포기했다. 하지만 이것이 진보론자들이 미제국주의의 간섭

을 지지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

세르비아 코소보 지역 알바니아인들의 투쟁은 그것만 따로 분리해서 본다면

거의 일보도되었다.

유럽과 미국의 “위대한 제국주의 권력”의 역할은 그 보도들에서 빠져있었다.

그것은 80년대 니카라과 콘트라전쟁 기사에서 레이건 행정부와 올리버 노스

(Oliver North)의 역할이 빠져있었던 것과 흡사하다. 미정부는 코소보지역에서

알바니아인 “민족주권”의 전사였다. 그리고 “코소보 해방군”이 CIA의 무기 및

훈련지원이 없었다면 고무되었을 것이라는 징후가 있다.

제국주의와 자결

진보주의자들은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모든 국가는 통합,

연방, 탈퇴 등 어떤 형태를 취하건 간에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만

약 그 결과가 밖으로부터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무력적 압력의 결과

라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제국주의자들의 권력은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를 분할하기 위해 수십년을 소모했고 단지 텅빈 껍데기만이 남아있다.

두 공화국,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이 유고슬라비아에 존재한다. 이들은 가

장 빈곤한 나라들이다. 코소보는 유소슬라비아에서 발달이 가장 뒤쳐진 지역이

고 알바니아 역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반면, 전체적으로 세르비아 공화국은 “부

유한”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공화국보다 훨씬 가난하고, 또한 보스니아 지역

보다도 빈곤하다.

경제적 평등을 가져오고자 했던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의 직접적 실패의 원인

은 60년대 계획경제의 포기, “시장사회주의”의 도입과 IMF에 의해 강요된 “개

혁”으로의 전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적 연대는 실패했다. 불평등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증가되고 있다.

세르비아로부터 코소보가 분리되면 두 나라는 모두 제국주의자들의 권력에 팽개

쳐질 것이다. 둘중 한나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코소보를 포함하여 세르비아의 3분의 2는 소규모 농장으로 이루어져있다. 농

업의 대부분이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준이다. 즉, 농장은 단지 거기서 일하는

농민들을 먹여살릴 정도만 생산할 뿐이다. 베오그라드가 세르비아의 산업중심지

이지만 현대적 산업시설들은 코소보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 유고슬

라비아에서 있었던 소수민족우대정책(affirmative-action-type)의 결과이다.

크로아티아 노동자들의 저항

유고슬라비아공화국에서 처음으로 분리된 크로아티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

왔는가?

크라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독일과 미국의 지지를 얻어 유고에서 탈퇴하기 위

해 대대적인 내전을 선포했다. 그들은 크로아티아 공화국이 빈곤한 세르비아와

세르비아의 알바니아인들에 의해 몰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크로아티

아에서 생산된 부를 유고의 저개발지역에 투자해온 정책을 비난했다. 오늘날

“독립한” 크로아티아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은행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현재 이 지역에서 독일 기업의 이익은 압도적이다.

지난달, 약 5만여명의 노동자들이 크로아티아의 수도 쟈그레브에서 낮은 생활

수준과 실업증가에 대한 시위를 벌였다. 실업률은 거의 20%에 달하고 있다. 3월

7일 프랑스연합통신(French Press Agency)의 머릿기사는 “크로아티아의 경제는

세계은행의 칭찬을 받았지만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기사는 세계은행 크로아티아지부의 운영자의 말을 인용하여 “일반적으

로 우리는 크로아티아 경제상황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크로아티아 노조연합 대표 보리스 쿤스트(Boris Kunst)의 말을 인

용하여 “크로아티아의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고, 전망은 점점 보

이지 않는다. 우리는 점점 커지는 사회적 계층화- 즉 빈곤한 다수와 부유한 소

수-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독립” 이후 7년이 지나고, 크로아티아의 생활수준은 유고로부터 분리되기 전

보다 심각하게 낮아졌다. 이것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다. 크로아티아는 지금까지

유럽의 거대 자본주의 나라들에게 압박받아온 나라이다. 만일 삶의 질에 의해

성공이 가늠되는 것이라면, 크로아티아의 노동자와 농민을 보았을때 자본주의는

총체적 실패임이 판명되고 있다.

날조된 독립

실제로 착취받고 있는 “독립”국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래된 수법

이다. 1920년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민족문제와 식민지문제에 관한 문제”

를 발표했다. 그것은 레닌에 의해 선언문의 형태로 작성되었고, 그 일부를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억압받는 국가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다수의 노동계급에게

특권계급들과 제국주의 권력이 함께 자행하는 기만을 지속적으로 폭로하고 설명

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정치적 독립국가지만 실제적로

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제국주의 권력들에 완벽히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발칸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들은 독립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약하고, 의존적인 소국들로 분해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완

전히 제국주의자들의 금융자본과 IMF와 세계은행의 대표자들의 지배하에 있다.

오늘날 발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구소련의 붕괴이후 제국주의자들간의

경쟁은 더이상 뒷전에 물러나 있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일차적으로 미

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과 같은 거대자본간의 경쟁은 점점더 그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제국주의자들 간의 첫 대결인 1차대전 시작무렵, 발칸제국은 최초로 점화된

화약고였다. 발칸공산주의자 동맹은 앞으로 일어날 투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었다. 약간의 변화를 제외하고 이 묘사는 현재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가를 설명하고 있다 “지리적, 경제적 위치때문에 발칸과 다뉴브강에 인접한 나

라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이익 영역속으로 추락했다. 발칸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엄청난 대결은 수십년간 지속되었다. 결국 누가 발칸반도를 지배하고 아시

아와 중동으로 가는 주요통로를 장악할 것인가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제국주

의자들의 전쟁은 발칸에서 일어났다.” 발칸반도의 나라들을 서로 싸우도록 하기

위해 제국주의의 후원자들은 발칸 각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했고, 광산과 항구를

담보로 군대를 지원했으며, 이는 사실상 이 나라들을 그들의 식민지화시키는 것

이다.

짧은 휴전이후, 전쟁은 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무엇이 이 제국주의자들의

죽음의 함정을 종식시켰는가? 그것은 파시즘을 물리친 공산주의 게릴라들의 역

사적 승리였고 성공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었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세르비아,이슬람교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헝가리, 로마인들

은 평화롭게 지냈다. 이것은 강력한 사회주의의 산물이며 오직 혁명적 사회주의

자들의 부흥만이 발칸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코소보에 대한 사실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유고공화국에 여전히 남아있는 두 나라이다. 터키의

오트만제국을 물리친 이후, 위대한 유럽의 권력은 1912년 발칸의 지도선을 다시

그렸다. 역사적으로 세르비아 영역에 있는 코소보는 그당시 세르비아의 일부분

으로 포함되었다.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이 절반씩을 차지한채, 알바니아의

권리는 그당시부터 지금까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때부터 코소보는 세르비

아의 일부가 되었다.

2차대전동안, 코소보에 있는 많은 세르비아인들은 파시스트 점령자들에 의해

몰살당했다. 2차대전 이후 코소보에 있는 알바니아인들의 수는 85%까지 증가했

다. 세르비아는 전 국민의 10%만을 차지하며 그외의 민족은 5%가 남아있었다.

1974년 사회주의 헌법에서, 대다수 알바니아인들의 동의속에서 코소보는 자치주

로 인정받았다. 자치권은 1989년에 정지되었고, 사회주의 유고의 분리가 미국과

독일을 위시한 제국주의자들의 압력하에서 진행되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에게 이것은 종교나 반이술람에 대한 투쟁이 아니다.

알바니아인 모두가 이슬람교도는 아니며 구유고의 알바니아계 모두가 이슬람교

도도 아니다.

코소보 분쟁 개요

최근 유혈사태의 발단

98년 2월 28일, 세르비아의 코소보주에서 세르비아 경찰에 의해 알바니아 분

리주의 반군 5명이 사살되고 반군의 거점인 세르비카시 7개 마을에 무차별 사격

을 가해 주민 11명이 살해되고 이와 같은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3월 5일

에는 드리네차 지역 프레카즈 마을에서 50명 이상이 학살됐다. 이후에도 계속

진행되는 일련의 사태는 일주일 전 알바니아인 분리주의 반군이 세르비아 경찰

을 공격하여 4명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살해였다. 알바니아계 주민 3 만명은

3월 3일 대거 투입된 경찰의 봉쇄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을 범민족적 추모제로 치

르고 곳곳에서 학살에 항의하는 시위를 가졌다. 정당 코소보민주동맹(LDK)은 국

제기구 및 미국에 전문가를 파견하여 진상조사 및 사태악화를 진화시켜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역사와 배경

코소보지역에서 알바니아계주민들의 세르비아에 대한 항의와 폭력이 지속되는

이유는 현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지난 89년 코소보 자치주

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어 사용금지등의 탄압정책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

이다. 알바니아계 사람들은 주요 정부조직에서 해고당했고 수천명의 교사와 공

장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인구 90%가 알바니아계로 구성된 코소보주는 구 유고 티토정권하에서 자치주

로 인정받았지만, 89년 밀로셰비치는 코소보주에서 세르비아인의 권리를 지키겠

다고 선언하며 세르비아민족주의를 부추켜 이를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기위해

코소보주의 자치권을 박탈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의 진압과정이 이어졌고, 계엄상태에서 극도의 빈곤과 인권탄

압에 시달렸다. 따라서 알바니아계 코소보 분리독립 움직임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고, 코소보 지도부의 대화를 통한 해결방식에 대한 무력감으로 이들의 독립

운동은 점차 급진화되고 폭력에 의해 독립성취를 공언하는 해방군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특히 96년 무장단체, ‘코소보 해방군(KLA)가 등장하면서 더욱 격화

되었다.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의 한반도처럼 발칸반도역시 유럽에서 해양세력과 대륙

세력이 만나는 전략요충지이다. 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코소보는 북쪽으로 세르

비아, 북서쪽으로 몬테네그로, 남쪽으로 마케도니아, 남서쪽으로 알바니아에 접

해있기 때문에 반도를 둘러산 이해다툼이 치열한 지역이다. 현재의 코소보사태

역시 반도의 수난을 대변하는 것으로 그 역사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389년 오스만투르크군은 세르비아, 불가리아, 와라키아, 알바니아, 보스니아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과 ‘코소보 전투’를 벌이고 이 싸움이 반도의 운명을 좌우

하게 된다. 오스만투르크의승리로 싸움은 끝나고 이를 계기로 코소보를 포함한

발칸반도를 차지하여 대륙세력의 남하를 저지하게 되고, 이때 터키제국이 이슬

람계인 알바니아 지역 자국민들을 이지역에 이주시켜 현재 코소보 인구의 90%가

알바니아계로 구성되어 있다.

코소보가 본격적으로 전란에 휘말리게 된 것은 제국주의 세력의 이해관계 때

문이다. 1차 대전 이후 여러차례 분할되는 수난을 당했고, 이는 중동진출을 노

리는 독일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영국과의 전쟁의 부산물이다.

국제사회의 개입

코소보분쟁에 대해 미국은 코소보 자치주에서 무력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군사개입은 한다는 기존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서 무력개입의 가능성뿐 아니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구성된 신유고연방에 대한 새로운 경제제재를 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구 유고분쟁 중재기구인 강대국 ‘접촉그룹’도 9일 런던에서 긴급히 회의를 갖

고 세르비아에 대해 ▶ 무기수출 금지 ▶ 금융지원 중단 ▶ 해외자산 동결 ▶

장비인도 중단 ▶유혈사태 관련자 비자발급 중지 등 5대 행동계획 이행할 것임

을 경고했다. 해결책을 논의하기로 했으며 유럽연합역시 진상파악을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 영국을 비롯하여 신유고에 대한 강경제재를 주장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는 신유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문제임을 주장하며 국제사회의 개입을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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