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됨의 인품과 세속의 지위는 영원히 양립하는 것일까.

내 젊은 날에 있었던 이야기다. 본디 집이라는 것이 셋집이었지만 그나마 전쟁으로 하여 없어지자 지금의 금호동 근처 산비탈에 거적을 치고 살던 친구 하나는 전쟁이 한축(일단) 끝난 뒤에도 중단한 중학에 다시 복학 할 수가 없었다.

우선 병든 어머니를 모실 방 한칸을 얻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막노동으로 한푼을 모으고 두 푼을 모아 약 7천원쯤 손에 쥐고서는 이제 3천원만 더 벌면 그래도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있는 방 한칸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며 날마다 약수동 그 허기진 마루턱을 억세게 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고개를 푹 숙이고 다가오는 낯익은 젊은이가 하나 있었다. 찬찬히 본즉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것도 공부를 잘해 반에서 서로 일 이등을 다투던 처지의 친구였기에 몇 년만에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반가움도 곧 갈등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래도 전쟁통에 어찌어찌 고등학교를 마친 그 친구가 대학(법학과) 시험에 합격해 등록마감이 바로 오늘까지인데 입학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진학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입학금이란 얼마였을까? 그때 돈으로 약 7천원이라는 말을 듣고 이 친구는 고민했다. 7천원이라면 지금 내 주머니 속에 있다. 그것을 내주어 이 친구의 장래를 열어 줄 것인가, 아니면 차가운 맨바닥에서 병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머니에게 방을 한칸 얻어 드릴 것인가. 그것도 대학등록 마감시간이 단 한시간 밖에 안 남았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돈 7천원을 몽창 내 주었다. 어서 가서 등록을 하라고.

그러나 이 조그마한 일이 바로 그 친구의 일생의 갈림길이 되고 말았다.

그 금호동 거적대기 집이나마 강제로 헐려 한데에서 신음하던 어머니는 돌아 가셨으나 그 친구는 대학을 나오게 되었다.

또 이 친구는 그 뒤 동생들을 키우느라 그렇게도 하고 싶던 공부대신 노동을 하다가 허리까지 못쓰게 되었으나 대학을 나온 그 친구는 높은 자리에 올라 떵떵 거리며 살게 되었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이렇게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 노동자의 외동딸이 시집을 가게 되자 참으로 몇 십년 만에 이른바 출세한 친구한테 청첩장을 보냈다. 한 번 얼굴이나 보자고.

그러나 봉투 하나만 날아왔을 뿐 그 친구는 보이질 않는 것을 보고 주변에선 입방아가 일었다. 간악한 배은망덕이라고. 그러나 그저 아무 말이없이 덤덤히 섰는 그 색시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한 살매(한평생) 넉넉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를 개인주의적으로 누리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의 끈끈한 정리로 사는 것일까. 아마도 이 말뜸(話頭)은 한 인생뿐이 아니라 한 문명의 갈림길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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