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제2, 제3의 이상관 동지가 나오지 않기를….
박 영 아
고(故) 이상관 동지 !
이름 석자 앞에 ‘고(故)’ 자가 붙어 있기엔 너무나 젊고 건강하고 밝았던 27
세의 청년.
축구를 잘했고, 성실하여 주변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한 젊은이가 산재
의 고통에 절망하여 제초제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이상관 동지는 경남 창원에 있는 대우국민차 공장의 노동자이다. 이상관
동지는 올해 2월 공장에서 26㎏의 밀링 바이스를 옮기다가 허리를 다쳤다. 당시
창원 한서병원에서 주치의가 요추염좌와 추간판팽윤의 진단을 내려 산재 신청을
하였고 그 중 요추염좌만 인정되어 산재로 입원치료를 받았다. 입원치료중인 3
월 24일 근로복지공단 창원지사는 ‘이후 통원검토’라는 자문의 소견을 한서병원
으로 보냈다. 창원지사의 종용으로 이상관 동지는 4월 14일 부모가 사는 사천의
성모병원으로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근로복지공단 진주지사
의 ‘통원요망’이라는 자문의 소견으로 인해 5월 16일부터 통원치료를 받게 되었
다.
근로복지공단은 허리와 다리통증이 심해 걷지도 못하고 살이 몰라보게 빠져
그냥 서 있어도 다리가 떨릴 정도의 환자를 입원이 아니라 통원가능 환자로 분
류하여 병원에서 나가게 한 것이다.
아들의 상태가 너무 심해 근로복지공단 진주지사로 찾아가 입원을 요청한 아
버지에게도 공단직원은 행정구제 절차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이 “퇴행성이라
안 된다”는 말만 하였다. 이렇게 병원에서 쫓겨난 이상관 씨는 아버지와 형의
도움으로 택시나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통원치료를 받았으나 병세는 갈수록 나빠
졌다.
마침내 그는 6월 22일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
낌이 듭니다… 몸이 아프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인 줄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이제 그 고통과 괴로움을 잊어버리고 저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막내아들을 잃은 가족은 슬픔을 넘어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정책에 분노하고 있
다. 그의 죽음을 접한 노동자·학생·양심세력들은 가족과 힘을 합쳐 ‘산재노동
자 이상관 자살 책임자 처벌과 근로복지공단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이상관 공대위)를 꾸려 투쟁에 나서 7월 29일부터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 앞에
서 계속 농성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경찰의 강제해산과 폭력탄압에도 굴하지 않
고 잘못된 산재정책을 바로잡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 높은 노
동강도 속에서 한발 잘못 디디면 불귀의 객이 되거나, 손가락이 잘리는 산재사
고는 거의 모든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또 몸을 갉아먹는 직업
병에 수많은 노동자가 고통을 받고 절망 속에서 치를 떨고 있다. 아황산가스에
중독된 원진레이온 산재에 고통 당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98년 2월에 산하 지사에 ‘IMF체제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대책
– 산재보험 급여의 거품제거 계획’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마디로 산재보험 급
여를 줄이기 위해서는 입원환자는 통원치료로 바꾸고, 통원환자는 치료종결 조
치를 하라는 것이다. 그 결과 위의 이상관 동지의 경우에서 보듯이 걷지도 못하
는 환자를 통원치료로 분류하고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에 의해 작
년 치료종결을 유도한 특진명령을 받고 자살하였다.
그러면 산재보험급여 절약을 위해 산재보험의 의학적 조언을 담당하는 자문의
제도와 치료종결심의협의회는 어떠한가? 그들은 직접 환자를 검진해 보지도 않
고 서류상으로만 확인하고 처리한다. 그렇게 해서 입원 조치를 통원 조치로 처
리하고 치료 종결을 위한 특별진찰 명령, 재요양 억제, 치료 종결 등을 남발하
고 있다. 주치의나 여러 의사들의 객관적이고 명백한 소견은 무시당하기 일쑤이
다. 그러나 공단측에서 통원치료, 치료종결이라는 의견서가 병원으로 날아오면
병원 의사측에서는 이것을 거부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무형의 압력으로 작용하
기 때문이다. 공단측은 작년 5월에 ‘IMF체제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대책’을 철회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각 지사에서 산재보험 급여 지급액이 경영 실적 평
가에 주요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철회했다고 해도 현실성이 없다.
소위 ‘IMF체제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대책’에 따르면 작년 산재 요양 중이거나
요양이 필요한 재해 노동자의 치료를 제한하여 532억 원의 보험료 지급을 줄이
겠다고 밝히고 있다. 98년 1/4분기부터 99년 1/4분기까지의 증감률을 보면 보험
료 수납액은 9.6% 늘었으나, 전체 급여 지급 건수는 전년 대비 13.23%로 줄었
다. 당연히 지급 급여 총액도 3873억 2500만에서 3148억 8500만 원으로 18.7%나
줄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환자들의 고통을 담보로 장사를 한 것이다. ‘IMF
체제 극복’이라는 미명 하에 산재 환자들은 이 사회에서 산업쓰레기 취급을 당
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의 관료적 작태에 의해 고통을 당해 온 것이다.
‘이상관 공대위’는 다음과 같이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98년 고통분담대책을 ‘실질적’으로 철회해야 하며, 자문의에
노동계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1/2이 되어야 한다. 또한 산재 보험의 1차적 목적
인 산재 노동자들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위해서는 ‘치료종결심의협의회’
는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공단은 주치의의 의학적 소견을 우선 존중하고, 특진
결정 등 산재 노동자의 치료와 직접 관련된 사항은 주치의 및 산재 노동자와 사
전 면담을 통해 충분한 협의를 의무로 이행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이와 같은 개혁의 내용은 산재 노동자가 인간 대우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
치이다. 이처럼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이 짓밟히는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 아래 가장 소외된 곳이 바로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이다. 또 열악한 노
동환경과 가혹한 노동강도, 정리해고의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땅
의 노동자들 모두가 예비 산재 환자들이다.
산재·직업병 추방은 노동자가 인간답고 건강하게 노동하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다. 그리고 이번 고 이상관 동지의 죽
음을 계기로 전개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개혁투쟁은, 신자유주의적인 정책 하
에서 제2, 제3의 이상관 동지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 위한 투쟁의 시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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