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중공업 투쟁 그 배경과 의의
지금 현재(10월7일) 한라중공업 노동조합에서는 고용승계, 노조, 단협승계,
고용안정 확약서 체결, 징계철회 및 해고자 원직복직, 임금 후생복리 단체협약
원상회복, 체불임금지급 등의 요구를 전면 에 걸고 플랜트공장 59일차 전면파
업, 51일차 옥쇄파업, 31일째 1300여명의 조합원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힘차게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사측과 정부에서는 조합비를 가압류,
대다수의 집행간부들에게는 고소, 고발(100여명 가족대책위 2명 추가) 손해배
상 및 사전체포영장(29명)을 발부하고 9월 27일부터는 무기한 휴업 조치를 단
행하였다.
투쟁의 배경
한라중공업은 1960년대 초반 현대양행을 기반으로 하여 1976년 인천에 조선
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90년부터는 플랜트사업 및 중장비 분야에 진출하여
충북 음성에 28만평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였고 전남 영암에는 88만평규모의 세
계5대 조선소 및 산업기계공장을 건설하고 96년부터 공장을 가동하였다. 하지
만 이러한 공장 확장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무능한
한라중공업 경영진의 과도하고 무리한 욕심으로 계획되고 준비되었다. 그것은
충북음성 플랜트 및 중장비공장 건설자금 약 2천5백억, 산호조선소 및 산업기
계공장 확장에 필요한 자금 1조 3천억을 단기 차입금에 의존하여 건설하였다
한라중공업 경영진의 이렇게 무리한 공장 확장은 처음부터 공장이 정상적으
로 운영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1997년 12월 6일 경영 실패와 고정
비(이자)부담 증가를 이기지 못하고 부도가 났다. IMF 상황이 한라중공업의 부
도를 앞당기기는 했지만 과도한 차입(1년 단기자금)도입 문어발식 확장, 무능
한 경영 방식, 정경유착 등 모든 문제점을 가지고 있던 한라중공업의 부도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무능한 경영 방식과 과도한 욕심으로 인하여 부도가 나자 회사에서
는 어떠한 책임도지지 않고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였다. 부
도가 예상되던 97년 10월과 11월에 사무직 생산직 구분 없이 50%의 인원을 정
리하고 임금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구조조정 및 인원정리 계획을 발표했다. 그
리고 일방적으로 1차 희망퇴직자를 모집하는 등 인원정리를 시도하였다. 그리
고 부도가 난 이후 98년 1월부터는 일방적으로 휴업 조치를 단행하고 월에는 2차 희망퇴직을 모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 단협을 앞둔 시점에서는
일방적으로 단협 해지를 선언하고 노동조합에 노조전임자 월급 40%삭감과 500
명이 넘는 인원조정을 요구해 오는 등 부도이전에 발표했던 구조조정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였다.
결국 IMF 상황과 회사부도에 따른 조합원들의 위축으로 노동조합의 힘이 약
화되면서 회사측의 경영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책임 전가하고 생존권을 말살하
려는 구조조정 시도에 대하여 노동조합에서는 힘있는 투쟁한번 제대로 전개하
지 못하고 임금21%삭감, 단협 전면적 개악(작업중지권, 인사권등등), 복리후생
을 대폭 유보하는 대신 99년 말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98년 임, 단협
이 굴욕적이고 일방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도 회사측에서는 99년 말까지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확약을 해놓고도 그 동안 1만 여명이나 되던 노동자를 희
망퇴직, 배치전환 등 일방적 고용조정을 통해 7천여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생존권을 박탈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 현재 남아있는 2천7백 여명
의 노동자들마저도 길거리로 내몰기 위해 갖은 수작을 다 부리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회사측의 일방적인 반노동자적 행위와 노동자 탄압은 결국 노동
자들을 분노하고 폭발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었다.
투쟁의 시작과 과정
사측에서는 99년 7월 26일 한라중공업과 스페코간에 플랜트공장 양수 매매계
약을 체결하고 이어서 법에도 보장되어있는 노조, 단협, 고용승계를 보장하기
보다는 한 수 더떠 노동자들에게 전직 동의서를 쓰라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
다. 이에 노동조합은 노조, 단협, 고용승계 보장 없는 매각결정을 반대하며 8
월 10일부터 플랜트 공장에 파업을 선포하고 제일 먼저 파업에 돌입하였다. 그
러나 사측에서는 노동조합과 플랜트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전개하면서 사측에
대한 분노를 폭발해 가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8월 11일 강영호 관리인이
차장급 이상의 간부를 소집하여 8월말 이후 촉탁직 해직, 전 사업부 대상으로
희망퇴직 실시, 생산직, 관리직 대대적인 인원감원 등의 발언을 하였다.
이미 부도이후 2년 동안 실질임금삭감 40%, 수개월간의 임금체불, 7천 여명
의 동료들이 인원 정리된 아픔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참고 있던 한라중공업 노
동자들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것도 없고 물러 설 곳도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
로 사측에 대한 분노를 폭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노동조합의 지침에 따라
1999년 8월 18일 전면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였다. 투쟁이 시작되자 이제는 더
이상 그 동안 당하고 참고 눈치만 보던 나약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하루가 다르
게 빠른 속도로 투쟁하는 당당한 철의 노동자의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
다.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100여명의 고용안정 실천단이 서울로 상경하여 플랜
트를 매입한 스페코, 한라중공업의 주 채권단인 외환은행, 위탁경영 주체인 현
대그룹을 차례로 방문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절박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데도 파렴치한 스페코 자본가 놈들은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였고 이미 이 당시 위탁경영이 기정사실로 확
인(참고로 현대중공업은 99년 4월부터 한라중공업을 위탁경영을 할 때를 대비
하여 필요한 조사사업을 하고 있었다)된 현대에서는 위탁경영을 할 의사도 없
고 계획도 없지만 아직 위탁경영이 결정도 되지 안았는데 왜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느냐, 어떠한 협상도 대화도 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파렴치함을 보
였다. 하지만 이러한 월 30일 광주 법원에서 한라중공업 채권단 집회가 있었고 이때까지 위탁경영을
부인하고 노동조합과 어떠한 대화도 못하겠다고 하던 현대는 결국 채권단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위탁경영을 승인받게 된다
이때부터 노동조합에서는 투쟁의 새로운 국면을 맏이 하게된다. 이때까지의
투쟁에서는 협상의 대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위탁경영이 승인된 이후
에는 협상의 대상이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아무런 권한과 책임이 없었던 한라중공업 구 경영진과의 대화는 무
의미한 것이었다. 단지 한라중공업 구 경영진이 할 수 있었던 일은 현대로의
위탁경영을 넘기기 위하여 현대가 위탁경영을 할 때 보다 좋은 조건에서 위탁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현대에서 요구하는 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뿐이었
다.
위탁경영이 법원에서 승인된 이후 현대에서는 9월 2일 실사단을 파견하고 위
탁경영 결정을 위한 조사작업을 시작하지만 노동조합에서는 위탁 경영 시 노조
의 요구안을 수용할 것과 직접 협상에 현대측이 나설 것을 주장하지만 여전히
현대에서는 위탁경영이 아직 결정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없고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이에 노동조합에
서는 현대가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하지 안으면 실사단이 공장 안에 한 발 자
국도 들어올 수 없음 분명히 경고하고 9월 7일부터 전 조합원 철야농성을 돌입
하였으며 마침내 9월 8일 아침 6시에 5개 문(정문, 남문, 북문, 중문, 서문)을
바리케이트로 봉쇄하고 옥쇄 파업에 돌입하고 전 공장을 노동자의 해방구로 만
들었다. 전 공장을 해방구로 만든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지침에 따라 5개 각
문에 분과별로 인원을 편성하여 거점을 잡고 이때부터 거점농성에 필요한 천
막, 텐트 등을 설치하고 그 동안 자신들이 생산을 하며 사용하던 각종의 장비
와 자재들을 활용하여 의식주를 해결 할 수 있는 공간들을 확보하고 만일의 사
태에 대비하여 각 문별로 바리케이트를 1중2중으로 설치하였다. 이렇게 더 이
상 과거에 당하고 당하기 만하던 개별화된 한 명의 노동자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 이 공장의 주인은 투쟁하는 노동자임을 알리는 당당하고 거대한
노동자군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천막 철야농성에 돌입하자 각 문별로 각 분과의 로 자체규율과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스스로를 단련시키면서 자신들의 결의사항
을 하나하나 글로 작성하여 농성장 주변에 부착하고 저녁 7:30분에 열리는 전
체 중앙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각 문(동서남북)에서 분과깃발을 앞장세워 일
사 분란하게 이동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구호를 외치는 팔 동작은 매일같이 변
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동지들에게 힘을 주겠다며 분과별로 다양한 구호
와 노래를 연습하여 중앙집회 시작하기 바로 전에 발표하는 모습 등은 이번 투
쟁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확신을 던져주고 있다. 이렇게 노동조합의 단
호한 의지와 한라중공업노동자들의 하루하루 단련되고 훈련되면서 한치의 흔들
림 없는 단결투쟁이 진행되자 한라중공업 구 경영진과 현대 측에서는 다급해졌
는지 노동조합에 협상을 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 측에서는
필요하다면 현대는 협상에는 관여하지 않고 참관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
동안 발뺌 만하던 현대 측이 협상에 참관이라도 하겠다는 것은 이제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으므로 노동조합에서는 9월 13일 교섭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현
대에서는 협상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그들의 명분을 쌓기 위해
협상을 제의했다고 하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사측 교섭단은 협상장소로 들어갈 때 정문의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자신들의
차량을 타고 협상장소까지 갈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협상을 하지 못하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바리케이트를 치우는 것은 항복
을 선언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협상을 못하면 못했지 이번 투쟁이 끝날 때까지
는 어떠한 경우에도 바리케이트를 풀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정말 당신들이 협
상을 하여 문제해결을 할 자세가 되어있다면 협상장소까지 걸어서 올 것을 제
안하였지만 끝내 사측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1차 교섭을 무산시켜버렸다.
이후 계속해서 몇 차례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사측에서는 협상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협상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폭력을 유발하여 이 책임을 노
동조합과 극렬한(?) 조합원들의 소행으로 뒤집어 씌워 언론에 발표하는가 하면
협상장소에서는 한라중공업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주요한 쟁점사
항에 대해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큰소리치면서 뒤에서는 마치 노조의
요구를 100%수용했는데 일부 과격한 노동자들에 의해서 협상이 마무리되지 못
하고 있다고 마구잡이로 언론, 헬기 등을 동원하여 유언비어를 유포하면서 겉
에서는 협상을 하는 척 여론을 형성하고 뒤에서는 한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와
해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작태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 이러
한 사측의 기만적인 태도 때문에 추석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던 노동조합의 의지는 끝내 수포로 돌아가고(6차 교섭 결렬) 추석명절을 앞
둔 21일 대의원을 포함한 쟁대위 동지들이 삭발식을 거행하고 사측에 작태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던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삭발을 단행하여 짤린 머리카
락을 봉투에 담아 노동조합으로 가지고 와 눈물을 흘리며 위원장에게 전달하면
서 이후에 우리가 더욱더 강력한 투쟁을 통하여 잘린 머리카락 수만큼 천배 만
배 보복을 하지고 결의하면서 추석 연휴 4일 동안을 전 조합원이 노동조합이
마련한 합동 차례, 조합원과 가족이 함께 하는 추석 한마당 등 다양한 행사를
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추석연휴가 끝나자 사측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27일자로 무기한 휴업을 선
포하고 우리는 더 이상 내줄 것이 없으니 노동조합에서 협상할 의사가 있으면
전향(?)적인 자세를 가지고 협상을 제안해오면 언제든 협상을 하겠다는 등 노
동조합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도발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노동조합에서는 일고
의 가치도 없음을 분명히 하고 사측이 우리의 요구를 100%로 수용하겠다고 하
면 언제든지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였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보면 현대 측과 구 한라 경영진의 의도는 애초부터 협
상을 통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려하기보다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투
쟁대열을 와해시켜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하여 이후 현대 측이 위탁경영을 시행
할 때에 원활하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확인 할 수 있다.
사측의 대응을 보면 겉으로는 협상을 적극적으로 하는 시늉을 하면서 반드시
자신들이 수용해야할 요구안 몇 가지를 수용하고 마치 노동조합의 모든 요구안
을 100%로 수용했는데 일부 과격한 사수대(때로는 폭도로 표현)와 해고자들이
협상을 방해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다고 지역 언론을 통해 대대
적으로 보도를 하고 이를 근거로 지역 관변 단체, 헷갈리는 시민단체, 있지도
않은 목포, 영암교회 및 주민연합회 일동이라는 단체들을 동원하여 지역여론을
형성하면서 노동조합을 고립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문제해결을 하기 위
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노동조합의 요구가 무리하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해결 할 수 없으니 공권력 투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역여론을 형성하
고 있다.
이러한 회사측의 뻔한 수법에 대하여 노동조합에서는 공권력 투입을 대비하
여 만반의 준비를 하는 한편 9월 30일부터 목포역을 비롯한 주변지역에 노동조
합투쟁의 정당성을 집중적으로 선전전을 전개하고 있고 그 동안 개별적으로 투
쟁에 참여하던 가족들을 중심으로 가족대책위를 구성하여 10월1일부터 사원아
파트를 중심으로 집중집회를 매일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족대
책위를 중심으로 그 동안 일방적으로 사측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던 주민 자
치회를 해체시키고 직접 선거를 통해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동별 대표를 선
출하는가 하면 집회소식을 알리는 방송을 외면한 관리소장을 잡아다가 공개사
과를 받아 내기도 하였다) 10월4일에는 조합원50여명이 울산 현대중공업 앞에
서 2박3일간 집중 선전전을 전개하였고 목포역에서는 민주노총 광주전남 지역
본부를 중심으로 한라중공업 투쟁을 지지하는 민주노동당, 청년진보당, 광주전
남 노동자운동연대, 그리고 지역 농민회와 시민단체들이 결합하여 목포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천막농성에 돌입하였다.
뿐만 아니라 10월 5일 부터 가족대책위 아줌마들이 가족대책위 깃발과 동별
깃발을 앞세우고 노동조합 중앙 집회에 조직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하였고 10월
6일에는 200여명의 가족들이 그 동안 편파방송을 했던 MBC, KBS등에 항의 방문
투쟁을 전개하면서(그러나 항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검문검색을 하여
방송차량이 업무방해로 신고된 차량이니 운전사 – 일반 조합원 – 를 조사해야
한다고 연행하는 과정에서 폭력경찰과 대치 중에 임산부와 3살 먹은 아이와 많
은 가족들이 폭력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 이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은 즉각적으
로 5분 안에 대열을 형성하여 비상라이트를 치고 수십 대의 차량으로 대치중인
장소에 출동하자 경찰이 도망감) 한라중공업 투쟁을 확산시켜 내고 있다.
한라투쟁의 의의
한라중공업의 투쟁은 한라중공업만의 투쟁을 넘어 전체 노동자계급 99년 하
반기 구조조정싸움의 최선봉에 서 있다. 비록 현재 한라중공업의 투쟁이 전국
적 투쟁전선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에 진행되면서 그리고 목포 영암이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전국투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고립된 채 진행되고 있
지만 이번 한라중공업 투쟁의 승패가 미치는 영향은 이후 있을 대우 그룹등 하
반기 구조조정투쟁이나 이미 예상되고있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많은 사업장에
서의 투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누가 보아도 분명한 사실
이다.
이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번 한라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난
경제위기와 IMF 상황에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투쟁을 전개하면서 빼앗길 대로
빼앗겼던 지난 2년여 노동자 투쟁의 한계를 일시에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생
존권사수와 지난 과정에서 빼앗겼던 노동자의 권리를 원상 회복할 것을 요구하
면서 공격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는 한라중공업 투쟁이 전국적 노동자 투쟁으로
확산되고 발전하지 못하고 한라만의 투쟁으로 고립되어 있다. 한라중공업의 투
쟁의 승패는 결코 한라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이번 한라중공업 투쟁이 승
리해야만 하반기 구조조정 투쟁에서 그리고 그동안 수세적이고 방어적이던 노
동자 투쟁을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전면에 걸고 공세적인 투쟁을 전개
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한라중공업은 지역적으로 고립
되어 있고 정권과, 자본, 언론에게 집중적인 포화를 맞고 있다. 정치조직과 노
동사회 단체의 지원연대방문, 지지광고, 교육, 의료지원 등이 큰 힘이 되었고
투쟁이 장기화하면서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등이 이고 있는 상태이다. 한라중공업투쟁은 한라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만으로 승
리하기가 어렵다. 전국적 차원에서 여러 수준에 걸친 지원과 연대의 ‘의식적
조직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99. 10. 7).
** 이 글은 한라중공업 투쟁에 결합하고 있는 한 동지가 작성한 것입니다.
한라중공업의 결사항전 투쟁에 연대하기 위한 동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
어 자료로 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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