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 정반대 입장…투쟁방향 놓고 부심하는 노조, 분노하는 노조원들

한국중공업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9일 발전설비 및 선박용엔진 빅딜합의 발표가 있자 노조(위원장 손석형)는 즉각 파업으로 대답했다. 10일 오후부터 3일째 전면파업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IMF 환란 이후 빅딜과 구조조정의 파도가 지나가는 자리라면 늘상 있었던 노사의 극한대립은 이곳 한국중공업(사장 윤영석)도 예외가 아니다. 과연 이번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빅딜 – 노조, “민영화로 가는 수순”, 회사 “성공적, 한중 미래는 밝다”

빅딜합의를 바라보는 노사의 입장부터 살펴보자. 먼저 노조의 관점. “이번 빅딜은 3사가 정부의 강압에 의해 내린 결정이다. 자율적인 합의가 아닌 정부의 실적주의 정책속에서 이루어진 기형적인 산물이다” 노조는 빅딜반대 입장이 확고하다. 재벌들의 무분별한 중복투자가 낳은 부실사업을 건실한 한국중공업이 떠안게 되고, 이는 곧 ‘동반부실’로 가게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또 빅딜은 민영화로 가기 위한 수순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고용불안을 야기하게 된다는 소위 ‘빅딜 도미노’를 우려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이번 빅딜합의를 “기존의 안보다 훨씬 한중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빅딜 이후 한중이 국내외 시장에서 한층 나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으로 분석한다. 민영화에 대해서도 확신이 선 듯 하다. 한중 관계자의 말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독점체제를 누리는 대부분의 공 기업과 달리 우리는 외국의 거대기업이나 국내 대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는 생각입니다. 민영화는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독립법인화되는 선박용엔진사업의 고용 문제에 대해서도 노사의 시각은 딴판이다. 사측은 한중이 경영권을 갖게돼 고용불안도 완전히 해소됐다는 입장. 그러나 엔진공장 조합원들은 펄쩍 뛰고 있다. 엔진공장 조합원의 파업참가율은 거의 100%로 노조가 다른 공장과의 수위조절을 고민할 정도로 반대열기가 높다. 경기부침이 심한 조선업의 특성상 선박용 엔진의 별도법 인화 이후에는 만성적인 고용불안이 우려된다는 것이 노조의 분석. 주재석 교선부장의 말이다. “신규재입사라뇨? 그들은 십수년간을 엔진일만 해왔고 독립법인이 되도 그 일을 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근속기간을 인정하지 않는 신규재입사는 그동안의 노동과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지요”

*노조, “고민이 많다”

노조의 파업 직후 두 차례에 걸쳐 고소입장을 밝혔던 회사는 12일 협상을 제의해 왔다. 노조는 협상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조로서는 고민이 만만치 않다. 회사와의 협상에서 얻어낼 것이 사실상 없다는 현실 때문. 노조의 한 관계자는 “사실 답이 쉽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빅딜을 주도한 것은 사실상 정부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투쟁은 대정부 투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당장은 무기한 전면파업외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라고 덧붙인다.

노조는 현재 투쟁의 방향타를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를 협상에 끌어들이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연맹 이홍우 부위원 장이 급파돼 노조와 함께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고 있으나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현장의 분위기 역시 급박하다. 파업 이후에도 제한적이나마 하청업체의 조업이 계속되고 있고 비생산직 조합원 일부의 이탈도 눈에 띈다는 전언이다. 이에 정문봉쇄 등 투쟁수위를 높여 조합원들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한중의 상황은 극히 유동적이다.

*흑자기업 이뤄놓고 고용불안 ‘설움’

회사와 정부가 발전설비 빅딜이 가져올 기대효과에 대해 들떠있지만, 한중 노동자들의 심경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평균연령 38세, 평균근속기간 13년. 한중 조합원들은 대부분 공기업화 이후 한중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해온 사람들이다. 80년대 계속되던 적자시대를 최근 8년 연속 흑자경영으로 끌어올리기까지 한국중공업과 희노애락을 같이 해온 이들이다. 그러나 이 한중의 ‘터줏대감’들은 서서히 고용불안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의 심경이 특히 착잡한 이유는 단순히 해고되느냐, 살아남느냐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적자기업을 흑자기업으로 만들어낸 지금에 와서 느닷없이 목에 칼날이 들이대는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난한 빅딜협상 과정에서 이들 8천여명의 종업원들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들은 다시 한번 ‘소외’의 뼈아픔을 감하고 있는 것이다.

창원시 귀곡동 130여만평의 부지에 들어선 이 거대한 기업을 두고 사람들은 한때 “공장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불렀었다. 빅딜합의, 전면파업, 노사 대치… 정녕 “공장을 만드는 공장”이 “분노를 만드는 공장”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인가? (창원=정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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