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민 활동가는 "인터넷을 하면서 다소 편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현재의 미디어구조에서도 장애인은 불평등한 조건에 놓여있다"고 전했다. 무료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개방형 미디어인 인터넷으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접근하고 있지만, 여전히 박규민 활동가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인터넷공간 역시 장벽이 아닐 수 없다. 참세상은 박규민 활동가를 지난 24일 미디액트에서 열린 'IPTV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운동 대응 전략 포럼'에서 만났다.
웹 상에서의 기술지원도 안되는데 IPTV라고 별 수 있을까?
박규민 활동가의 컴퓨터에는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이 하나 더 포함되어 있다. 박규민 활동가는 이 프로그램이 출시된 2003년 4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정부지원을 받으면 80%를 지원 받아 8만원에 이 프로그램을 구입할 수도 있다. 무료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서비스 질이 떨어져 사실상 이용할 수 없었다고 박규민 활동가는 말했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음성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성프로그램은 유료와 무료로 나뉘는데, 무료는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고 인터넷 페이지 정보를 볼 때 빠르고 정확하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이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결국 유료프로그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의 가격은 40만 원이다. 반 년꼴에 한 번씩 정보문화진흥원에 신청해 선정되면 이용요금의 20%만 내고 사용할 수 있다. 국민기초수급자와 중증 1,2급 수급자를 우선으로 한다"
박규민 활동가는 "정부지원을 받더라도 기본적 접근을 위해 약 10만 원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장애인들에게 큰 부담"이라고 전했다. 현재 박규민 활동가는 인터넷을 통해 뉴스나 메일 확인 이외의 다른 정보도 접근할 수 없다. 이미지나 동영상의 경우는 음성전환 프로그램 이외의 화면해설 프로그램이 따로 필요하나 이를 위한 기술적 지원은 전무한 상황이다.
[출처: 미디액트이미지 http://www.mediact.org)] |
"현재 정보통신에서 장애인접근은 웹 중심이다. 도구(키보드 네비게이션, 플래시 , 자바, 사용자 요구 없이 나타나는 팝업창 허용, ucc 접근)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이에 장애인들은 홈페이지 안에 있는 정보들을 알 수 없으며, 온라인을 통하여 자유로운 의사를 표출할 기회가 가로막혀 있다. 예산 부족과 기술 부족 등의 이유만을 제시하고 있으며 장애인들을 위한 사이트 구축만 고려 중에 있어 웹표준화와 동떨어지며 보편적 서비스로의 접근에는 매우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박규민 활동가를 포함해 장애인미디어운동 활동가들은 최근 미디액트, 진보네트워크 등 미디어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융합미디어에서의 공공성 실현'을 위한 미디어융합논의에 참여했다. 현재 내부 사정에 의해 박규민 활동가 등 장애인미디어운동 활동가들이 참여한 미디어융합보고서 장애인 등 소수자권리 부분은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이 논의과정에서 'IPTV'등 미디어융합국면에서 장애인접근성 확보를 주요하게 주장해왔다.
박규민 활동가는 또 "웹 접근은 시각, 청각장애인 중심의 법으로 이루어졌으며 소프트웨어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박규민 활동가는 "시각, 청각, 지체 및 지적장애에 대한 언급은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나오고 있지만 그 외의 장애인들은 전혀 접근권조차 이루어 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외에도 더 많은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에 더 많은 조사와 특성을 고려한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디어접근권을 위한 지원이나 연구도 시청각 장애인에 집중돼 있다는 말이다. 장애인미디어운동 활동가들은 한목소리로 연구와 조사를 위한 지원이 필요성을 강조한다.
"메뉴화면에서 멈춰버린 장애인의 접근권"
[출처: myLGTV - 메뉴화면(http://www.mylgtv.com)] |
현재의 웹 상에서의 상황이 이러할진대 당장 상용화를 목전에 앞둔 IPTV에서의 장애인들의 접근권은 암담하기만 하다. 박규민 활동가는 IPTV가 구현될 시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보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며 "스위치를 켜면 나오는 첫 메뉴화면 이상 접근하지 못하지 않을까"하고 되물었다. IPTV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박규민 활동가의 예측인 셈이다. 리모콘으로 조정해야 하는 도구상의 문제도 있지만, 이미지 중심 TV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해설프로그램이 일반화되지 않는다면 IPTV는 장애인들에게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장애인미디어활동가들은 투쟁과정에서 시급하게 개정되어야 할 부분으로 방송법을 꼽아왔다. 2006년 개정을 거친 현재의 방송법에는 1장의 3조, 6조, 3장의 27조, 38조 등에서 '장애인 등 방송소외계층의 방송접근을 위한 지원'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방송법 제5장 제69조에는 "방송사업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장애인의 시청을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필요할 경우 방송위원회는 기금에서 그 경비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시행령에서 구체적인 규제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IPTV 관련 법안인 '인터넷 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에는 모법인 방송법에 명시된 선언적 수준의 규제내용도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2월 28일 진통 끝에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IPTV관계법인 이 법이 3년간 표류했던 이유는 방송사업자와 통신사업자, 단말기 사업자 등 이해사업자간의 대립과 해당부처 간의 이견 때문이었다.
IPTV관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자 본격적인 IPTV 사업이 실시될 것으로 보이며 기구관련법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기본적인 시청자권리 정립이나 소수자권리 보장과 관련한 논의는 외면받고 있다.
미디액트,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미디어운동진영은 "IPTV는 단순히 기존의 방송과 통신서비스의 일부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사람들이 미디어를 활용하게 될 방식을 질적으로 바꿔놓을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의미한다"며 "향후 디지털 전환과 기구 및 법제 개편을 통해 가속화될 미디어융합 환경에서 시민들의 정보공유와 문화생활, 민주적 여론형성의 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할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규민 활동가는 "IPTV 관계 법안에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 부분을 명시해야 하며 관련 제조업자들의 통신제품 설계, 가공 과정에서 장애인의 이용을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료컨텐츠서비스를 위한 IPTV, 소수자권리 보장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출처: 메가TV - 뱅킹 시스템 (http://www.mymegatv.com)] |
유료서비스를 기반으로한 'IPTV'는 장애인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대책도 시급한 문제다.
당신은 IPTV를 통해 포털에 접속했고 포털에서 mp3를 검색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의 니즈를 확인한 IPTV는 그 다음날로 당신에게 최신 mp3 상품을 홍보할 수도 있다. 휴대폰에 신용카드를 장착하듯이 심지어 그 자리에서 결제가 가능하다면?
IPTV는 상업적으로 가장 유용한 장치일뿐만 아니라 유료컨텐츠서비스를 기반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상위 소수자들을 위한 차별화된 컨텐츠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보독점과 양극화는 더욱 정교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권력구조의 격변적 재편을 가져올 'IPTV' 도입에 앞서 배제된 소수자권리에 대한 논의가 서둘러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