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63일차 소금과 효소를 끊습니다.
강제 병원 후송도 응급조치도 거부합니다.
어제 4시 기륭전자측과의 교섭은 교섭이 아니었습니다. 일방적인 기륭전자측의 입장통보와 분화가 요구안을 제출했지만 진지한 검토도 없을뿐더러, 대화가 되는 사람들끼리만 논의하자며 분회 교섭위원이 퇴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기막힌 자리였습니다. 기륭전자는 여전히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목숨은 아랑곳없이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불법파견에 맞서 1080일이 넘도록 투쟁하고 있고, 생사를 오가는 단식 62일차였던 어제 전 너무도 참담했습니다.
기륭전자분회는 어떻게든 노사간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기륭전자는 어떠한 법적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일관된 입장과 국내생산시설은 하도급을 포함하여 전혀 없다고 주장해 오면서 제3의 회사 신설 취업알선을 해주겠다는 입장에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륭전자분회에 의해 기륭전자의 주력생산시설인 위성라인도 라인이 설치되어 있는 공장이 확인되었습니다. 기륭전자분회원들은 순간만을 모면하려는 사측의 기만적인 모습과 거짓말에 분노했습니다.
이러한 기륭전자측의 모습은 1080일을 투쟁해 오면서 우리 조합원들이 보아온 일관된 모습입니다.
많은 동지들이 저희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살아서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기륭전자 사측도 교섭 자리에서 당신들이 단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식을 중단하는 것, 그 길은 기륭전자가 그간의 불법행위를 반성하고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수용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무리하지 않습니다. 기륭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단식 62일이 넘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동지들! 현재 단식하고 있는 제가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기륭전자에게 다시 한 번 항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동지들의 많은 염려 때문에 가능한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지 않고 최대한 버텨보자고 잘 넘어가지 않는 물도 열심히 마시고, 혈당저하로 쇼크 오는 것을 가능한 막아 보려고 효소도 조금씩 먹으면서 유지해 왔습니다.
단식 50일차에서 ‘입관식’까지 하면서 관에 사람이 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것들을 모아 담아서 태워버리자고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지들! 지금의 현실은 우리의 결의대로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현재 기륭전자는 우리의 목숨을 완전히 내놓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설마 너희가 정말 죽겠냐고 하면서 외려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기륭전자의 문제가 부각되고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정부여당과 기륭전자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오늘 이 시각부터 저는 효소와 소금을 끊습니다. 물만으로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지만, 기륭전자가 결단할 때까지 가겠습니다.
제가 쓰러져도 강제 병원 후송도 응급조치도 거부합니다.
건강을 염려하는 동지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재 제가 더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치던 어젯밤 밤새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단했습니다.
기륭전자는 그들이 저지른 불법파견에 대하여는 벌금 500만 원 내고 죗값을 다 치렀다고 큰소리치면서, 법에서 너희들을 복직시키라고 하지 않았다, 부당해고 소송에서 지지 않았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시혜를 베풀어서 그나마도 취업알선을 해주는 것이라고 배짱을 부리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비정규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법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비정규직은 이렇게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너무도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동지들! 절박한 기륭전자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동지들의 가슴을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
2008년 8월 12일
단식 63일차 김소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