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샤라프 퇴진, 美 대테러전략에 변화 있을까

집권연정, 파키스탄 내 美 비밀작전 확산에도 침묵해

한 때 '플랜B(대안)'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국내외 압력에 굴복해 18일 사임을 전격 발표했다. 이번 사임발표는 19일로 예상된 탄핵안 상정에 앞서 나온 것이다.

지난 2월 총선에서 무샤라프 대통령이 부토 전 총리 출신의 파키스탄인민당(PPP)과 샤리프가 이끄는 파키스탄 무슬림 리그-N이 이끄는 집권연정에 대패하면서, 이번 사임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작년 10월 의회 선거로 재선되었으나, 대법원이 '당선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무샤라프 대통령은 11월 대법원장을 해임한 뒤 계엄령을 선포했다. 12월 망명을 마치고 미국의 중재로 베나지르 총리가 귀국하면서 무샤라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더욱 고조되었고, 부토 전 총리가 피살되면서 사태는 돌이킬 수 없어졌다.

결국 2월 부토 총리가 이끌었던 파키스탄인민당 등 집권연정이 압승한 후, 무샤라프 대통령은 사퇴 및 탄핵 압박을 받아왔다.

집권연정은 지난 7일 탄핵안을 상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군부와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군 정보부(ISI)도 중립을 선언해 등을 돌렸다.

2월 총선 패배 이후 무샤라프 정권은 미국과도 삐걱거렸다. 미국은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파키스탄 국경지대를 근거지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며 무샤라프 대통령을 압박했다. 7월에는 아프간 주둔 미군이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파키스탄 영토에 대한 공습을 강행해 외교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한 때 미국에 "우리 사람"으로...올해 초 부터 삐걱

1999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한 무샤라프 대통령은 서방세계와 거래가 가능했던 '대테러전의 동맹'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를 "자유의 강력한 수호자", "우리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9.11 테러가 없었다면 지금의 무샤라프는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미국이 아프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미국은 무샤라프에 대한 지원을 통해 파키스탄 내 탈레반과 알카에다 근거지를 제거하는 한편, 아프간 공격에 이용해왔다.

파키스탄은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당시 영공을 허가한 대가로 지난 7년간 120억 달러의 원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계기로 1998년 핵무기 개발로 인한 제재 조치도 피할 수 있었다.

무샤라프의 퇴진으로 미국의 대테러 전략이 타격을 입거나, 수정이 불가할 것이라는 전망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은 작년 계엄 사태 당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던 7월까지도 무샤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방해왔다. 7월에도 바우처 미 차관보가 무샤라프 대통령의 탄핵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샤리프 전 총리를 면담하면서 대통령직 사임과 관련해 무샤라프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집권연정도 파키스탄 영토 내 미군작전 묵인해

그러나 다른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 국무부 관리출신의 마빈 웨인바움은 오히려 집권연정이 무샤라프와는 달리 미국을 추종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벗게되면, 대 테러전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은 최근 이라크에서 아프간으로 대테러전의 초점을 옮기고 있다. 올해 초부터 증가하고 있는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지역 내에서의 비밀작전들은 이런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3월에 파키스탄 와지리스탄 남쪽 지역의 파쉬툰 부족 거주지역의 한 건물이 공습을 받아 20여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선거기간 동안 무샤라프의 친미정책을 제한적으로나마 비판하면서 지지를 얻었던 집권 연정은 이런 비밀 작전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현재 집권연정도 파키스탄 영토 내의 미군 작전을 묵인하고 있다.

파키스탄군은 탄핵안을 상정한다는 발표 하루 전에도 아프간 접경지역에 군사공격을 감행했으며, 연일 계속되는 공습과 폭격으로 거주지를 떠난 사람도 약 30만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편, 파키스탄 정국은 무샤라프의 퇴진이후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무샤라프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권력을 둘러싼 집권연정 내의 각축은 더욱 격렬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에일리 타임스 편집장인 나잠 쎄띠는 "안정된 협상안은 없다. 두 사람(샤리프와 자르다리)은 이제 맹렬히 싸우기 시작할 것"이라며, 무샤라프 퇴진을 제외한 이 둘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완전히 상반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