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합법화시대’ 무엇이 달라지나

새로운 ‘무기’가 생겼을 뿐

기구위상·운영에 한계…이대로는 안돼

“대정부 투쟁노선은 확실히 하되 각급 대화와 교섭은 활발히 벌인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더라도 유지하게 될 정부·자본에 대한 기본 노선이다. 그 동안 지녀온 운동원칙과 활동방향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에 따라 노사정위원회나 ‘신노사문화’에 대한 방침을 비롯한 노정관계에 임하는 태도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정부 관련기관은 중앙노동위 등 기존의 8곳에서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구, 각종 위원회 등 70여곳으로 크게 확대됐다. 이달부터 새 위원을 선정하게 되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최근 “민주노총 대표도 결정해 통보해 줄 것”을 요구해와 이미 정책참가 확대는 현실로 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합법화를 계기로 정책참가를 적극 강화해 정부정책에 대한 개입을 강화한다는 게 기본방침이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면서 노동부는 ‘화해무드’를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노동부 노동조합과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합법화돼 정부정책에도 참여하게 된 만큼 이전보다 정부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추세로 나갈 것”이라며 “정부예산도 받을텐데 투쟁일변도였던 민주노총의 태도에 변화가 일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정부에 대한 투쟁노선을 바꾸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정부의 태도에 원인이 있다. 지난 12월7일 벌어진 민주노총 농성장 강제철거는 정부 안에 노조를 백안시하는 공안적 시각이 지배적임을 확연하게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이 국회앞에 컨테이너 농성장을 설치하자 노동부 안에서는 “합법화된지 얼마나 됐다고 또 거리로 나가느냐”는 기류가 흘렀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기획실장은 “노동관료들이 민주노총은 대중투쟁을 통해 성장해온 조직이라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민주노총의 활동방식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노총 합법화와 궤를 같이해 지난 7월1일 눈물겨운 투쟁 끝에 합법성을 쟁취한 전교조의 경우도 합법화 뒤 교육부와 벌인 교섭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없었다. 열 차례나 교섭을 요청했지만 교육부는 불응으로 대답했고, 전교조는 결국 지난 8일 김덕중 교육부장관을 부당노동행위로 노동부에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전교조 김현준 사무처장은 “교육부가 교원노조를 교섭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교육관료들은 교원노조의 참여가 교육정책에 발전을 가져오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며 “어떻게든 노조활동을 봉쇄하려고만 해 앞으로도 엄청난 대중투쟁이 있어야 노정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와 별개로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조직노동자 뿐만아니라 농민과 도시빈민, 그리고 비정규직·여성·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명실상부한 대변자로 나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합법화와 동시에 각종위원회 참여를 요구할 계획이나 위원들의 임기문제와 맞물려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통 정부산하 위원회 위원들은 임기가 2∼3년인데 임기가 끝나야 민주노총에서 보낸 위원의 참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는 정부와 별도협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기존 한국노총 대표가 자리를 내놔야 하는 문제도 있어 한국노총과 미묘한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대표가 개인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임기가 우선할 수 없다는 의견이 강하게 일고 있다. 소속 조직에서 특정직책을 그만두게 되면 위원회 위원자격도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위원회 의석 몇 개가 아니라 이들 기구의 위상과 운영방식이라는 지적이 높다. 각종 위원회가 노사정위원회처럼 자문기구 수준이어서 정부정책에 반영되는 부분을 찾기 어려울 뿐만아니라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1년에 2∼3차례 열리거나 그나마도 서면심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극히 형식적인 정책참여에 그쳐왔다는 진단이다. 이 점을 개선하지 않으면 정책참가의 의의를 찾기가 힘들 건 뻔한 이치다. 반면 자본쪽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행정주체가 있는데 조언하고 감시하는 것을 벗어나 ‘내가 합의하지 않은 것은 안된다’는 식의 민주노총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정책참가 자체로 당장 크게 바뀔 것은 없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김태현 실장은 이와 관련해 “정부 위원회 참여 자체로 큰 변화가 오리라는 기대는 착각에 불과하다”며 “새로운 투쟁의 장이 열린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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