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고통받는 실직자들…임시직 637만
## 여섯식구 생활비 한달에 50만원… 완전실업 100만 ##
## 부유층 불만만 이슈되고 소외계층엔 언론도 등돌려 ##
임의수(43·가명)씨는 지난 97년 12월 모 은행 과장으로 근무하다 명예퇴
직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18년 동안 근무했던 그의 당시 월급은 300만원,
생활비는 한 달에 250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임씨 부부는 퇴직하고 나서는
한 달에 50만원으로 네 자녀와 먹고 살았다.
임씨는 퇴직할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이 별로 없었다. 1남3녀의 대로 공부시키고, 고향의 부모에게 매달 30만원을 생활비로 보내드렸다. 퇴
직금 1억원으로 빚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돈은 아이들 이름으로 들어놓은
예금과 교육보험 등을 합쳐 2000만원이 전부였다. 집은 3500만원짜리 다세
대주택 전세였다.
『처음에는 「좀 쉬어가자」는 여유를 가지려고 했어요. 』
임씨는 실직 3개월 후 큰 아이가 전문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못내
진학을 포기했을 때 자신이 직면한 위기의 실체를 절감했다.
『딸 아이가 등록 마감날 「아빠, 적성이 안맞아서 안갈래요」라고 해요.
딸을 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
실직 후 2년, 임씨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사회의
중간 관리층에서 「극빈계층」으로 추락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
다.
아이들만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학에 보내겠다고 수없이 마음 먹은 그
였지만, 현실은 허용하지 않았다. 『여섯 식구가 월 50만원으로 생활하려고
하니 끊어야 할 게 많더군요. 우선 아이들 학원부터 끊었어요.』
실업계를 다니는 둘째는 컴퓨터학원을, 초등학생인 셋째는 미술학원을 끊
었다.
한 달에 2∼3번꼴로 하던 가족 외식, 하루에 한갑 반을 피우던 담배, 신
문구독은 실직가장에게 사치였다. 아이들 용돈도 없앴다. 임씨의 딸들은 서
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해결한다.
의료보험은 직장의보에서 지역의보로 바뀌었다. 보험료로 월 3만원을 꼬
박꼬박 내지만 막상 병원에 간 적은 없다. 『1년 전 아내의 다리에 종양이
생겼지만 병원에 못갔어요. 동네 사람들 말로는 50만원만 들이면 완치할 수
있다는데….』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온가족이 한방에서 잤다. 전화세, 전기세, 수도세
등은 교회를 다니는 아내가 동네 친구에게서 빌려서 냈다. 2년간 「자린고
비」처럼 살았지만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작년 9월부터는 처가에서 쌀,
고추를 얻어다 먹는다.
밥 하나에 무국, 김치가 전부인 저녁 밥상 앞에서 여섯 식구는 아무 말
없이 서로 눈치만 본다고 했다. 임씨는 『식구들 보기가 미안해 집에서는
잠만 잔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오전 9시쯤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서 하
루종일 남산이나 고용안정센터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 밤 11시쯤 조용히 귀
가한다.
일간지 취업란을 이 잡듯 뒤져 이곳저곳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아무도 거
들떠 보지 않았다. 작년 봄에는 건설현장에서 일용인부로 일하고 6개월치
노임만 떼였다. 작년 11월에는 한국산업훈련협회에서 연 마케팅 컨설턴트
합숙 과정에 참여했다. 한달 교육을 마치고 30만원을 받은 임씨는 이것으로
둘째 아이 등록금을 냈다.
몇달 전부터 인터넷 웹마스터 교육을 받은 임씨는 지난 7월부터 금융 재
테크 홈페이지 「은행보안관 비트(BITT)뱅크」(WWW.BITTBANK.CO.KR)를 만들
었다. 금융정보와 은행 금융상품의 장단점을 알려준다. 다행히 홈 페이지를
만드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았다.
『지난 2년이 20년 이상 길게 느껴집니다. 남들은 경기가 회복된다고 말
하는데 우리 가족은 아직도 IMF 터널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터널 끝이 보
이기만 해도 좋을 텐데…』
열심히 직장에 다니면서 소박한 꿈을 키워오다가 어느날 느닷없이 내팽개
쳐진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한두 명이 아니다.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른 그
들은 『「생명줄」인 직장에서 쫓겨나자, 자녀의 교육도, 가족들의 의료도,
미래도 사라졌다』고 절규하고 있다.
전기기술자였던 김인수(40·가명·대구시 동구)씨의 아들(10)은 97년 3월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그 뒤로 꾸준히 정기검사를 받아야 했지만 김씨가
직장을 잃으면서 치료를 포기했다. 한 번에 수십만원이 드는 정기검사를 감
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걷거나 말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그의 아들은 언
제 뇌종양이 재발할지 모르는 상태다.
아들의 뇌종양 수술에 모아 두었던 저금과 전세금을 다 털어 넣었지만,
꾸준한 수입이 있었기에 언제든 돈을 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IMF는
그 희망을 앗아갔다.
김씨 자신도 지난 9월 어렵게 취업한 막노동판에서 눈을 다쳤다. 치료비
를 한푼도 받지 못해 친척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술을 했다. 시각 장애
6급 판정을 받은 그는 시력이 하루하루 나빠져 한 번 더 수술을 해야 하는
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이웃들은 어떨까. 증권회사가 몰린 서울 여의도의 고급 술집들은
요즘 밀레니엄 망년회를 즐기려는 증권사 직원들로 자리잡기가 어렵다. 「
서른한살의 증권사 직원이 연봉 10여억원에 스카웃됐다」 「코스닥에서 수
백억원을 벌었다」는 증권붐을 타고 여의도와 서울 강남의 술집들은 흥청대
고 있다.
그러나 우리 곁의 실업자수는 100만명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외
환위기를 벗어났다는 발표가 잇따랐지만 실업률은 외환위기 직전보다 2.3배
나 높다. 고용구조도 변했다. 상용직은 94년 753만명에서 99년 603만명으로
150만명이 줄었다. 대신 임시직과 일용직은 94년 519만명에서 637만명으로
118만명이 늘었다. (통계청 통계)
100만명이 완전 실업자 대열에 합류했고, 600여만명이 완전 실업의 언저
리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호경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막상 혜택을
받는 계층은 상류층뿐이며 소외된 계층은 아직도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
고 있다.
올해 3분기 상위 20%로 분류된 계층의 월평균 소득 437만9900원은 하위
20% 계층의 82만8400원에 비해 5.3배였다. 위환위기 직전인 4.49배보다 소
득 격차가 크게 벌어진 수치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산층
의 점유율이 70%에서 최근 43.6%로 떨어졌다. 고소득과 저소득 계층의 양극
화된 사회로 가고 있는 징조다. 한국사회는 두 동강 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저 자] 안석배 이길성 기자
[출 처] 조선
[발 행 일] 1999.12.17
[발 행 처] 조선일보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