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시론>’사회안전망’복지가 없다
지난 23일 보건복지부와 노동부는 ‘중산층 및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사회
안전망 확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 대책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 제도를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한 1차 안전망, 공공부조를 중심으로 한 2차 안전망, 그리고 노숙자 보호와
재해구호 등의 3차 안전망을 확충 하면서 현 정부 출범 이후의 성과와 앞으
로의 확충 계획을 밝혔다.
사실상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부분은 실업자와 빈
곤층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너무나 허술하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서슬퍼런 국제금융기구들의 긴축재정 압박 하에서도 공공근로
사업 등 실업대책비가 대량으로 집행될 수 있었고, 고용보험의 확대등 사회
복지제도들의 확충도 부분적으로 가능했다. 특히 지난 8월에 제정된 국민기
초생활보장법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계층의 생계
문제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지를 밝힌 일대 사건이기도 하다. 비록 본격적
인 시행은 내년 10월부터지만, 이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지난 1일 역
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인 최저생계비가 발표됐다.
따라서 IMF 경제위기 상황을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새천년의 시작을 맞게
된 현시점에서 정부가 그 동안의 성과를 내세우고, 나아가 새로운 세기의
비전을 밝힌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이런 노력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금번 발표에서 아쉬움을 주는
부분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사회안전망’이라는 용어의 문제다.
이 용어는 대량실업 사태에 대응하는 긴급처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최근에
일반화된 용어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대책은 이런 긴급처방의 범위를 넘어서 우리나라의
복지체계 전반, 또는 사회보장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대책이다.
그런데도 굳이 ‘안전망’이라는 수비적이고 소극적인 용어를 선택한 것은
우리의 복지수준을 상징하는 무의식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안전망’ 정도의
복지수준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의도적인 선택인지 의아하다.
다음으로 대부분의 내용들이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점진적인 양적 확
충을 제시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의 성과 역시 이같은 점진성에
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고, 또 현실 정치에서 점진적인 개선은 불가피
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많은 개선안이 있을 것이라는 발표
의 이면에는 그 이후에도 개선돼야 할 문제가 많이 남게 됨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복지 수준이 이미 상당한 정도에 도달했다면 점진적인 개선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복지수준은 열악하기 그
지 없다. 정부의 사회복지지출이라는 양적인 지표를 볼 때 우리의 복지수준
은 선진국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국가들과
비교해도 훨씬 뒤처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복지는 항상 문제를 뒤따라가는 복지다. 문제를 미리
예방하거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적극적인 서비스로서의 복지행정을 한번
도 겪어보지 못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들은 50년,100년
전에 완성한 최저생활보장을 이제야 겨우 시작하는 마당에 자랑할 것이 과
연 무엇인가?
우여곡절 끝에 국민연금이 명목상 전국민을 포괄하게는 됐지만 현재의 빈
곤노인들은 그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
영국은 이미 100년 전에 국민연금제도를 실시하면서 보험료를 내지 않은
당시 노인들에게도 연금을 지급하였는데 희망의 새 천년에 84만명의 결식노
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시행한다는 계획이 무슨 자랑거리인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집 걱정과 학비 걱정, 병원비 걱정
에 시달리는데,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획기적이고 적극적
인 복지개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발표는 이제까지의 여느 대책과 마찬가지
로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기 바쁘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이 대책 이후에도
함께 인내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그리고 정부가 앞장서서 어떻게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 등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성
의를 볼 수 없는 게 유감이다.
[저 자] 이영환 성공회대교수. 사회복지
[출 처] 세계
[발 행 일] 1999.12.24
[발 행 처] (주)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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