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새천년 앞두고 임금밀린 채 목매 자살

“세상살이가 이렇게 힘이 들 줄 몰랐습니다. 윤회를 통해 환생 을 한다

면 바람으로 태어나 이곳저곳 아무런 생각, 아니 공포 걱 정 근심 없이 날

아다니고 싶습니다. ”

성탄절 연휴 끝무렵인 26일 밤 11시10분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2가 오

목교 밑 교각에선 연말연시의 떠들석한 사회 분위기를 뒤로 한 채 한 20대

노동자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정현규. 나이 22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그의 유품은 한 장짜리 유서

가 포함된 다이어리 한 권과 38원의 잔액이 찍힌 ㅎ은행 통장 하나가 전부

였다.

지난 24일부터 26일 저녁까지 자신의 집에 정씨를 재워준 동네 선배 조아

무개(26)씨는 “현규가 최근 두 달 동안 충청남도 안면 도에서 쭈꾸미잡이

뱃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해 무일푼이 돼 고민하긴 했지만, 스스로 목

숨을 끊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씨 등에 따르면 정씨는 2살때 어머니가 가출한 뒤 할머니 손에서 자랐

다.

하지만 정씨는 어려운 생활형편에 등록금마저 낼 길이 막막해지자 지난

93년 서울 ㅂ중학을 자퇴했다.

그 뒤 어린 나이에 전국의 공장을 전전하며 금형 사출일을 했지만, 생활

은 늘 고달프기만 했다.

게다가 유일한 의지처이던 할머니마저 2년전 세상 을 떠났다. 엎친데 덮

친 격으로 구제금융한파가 몰아친 뒤엔 그나마 박봉의 일자리마저 구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노숙자의 신세로 전락한 정씨는 지난 1월 4일 노숙자 쉼터인 영등포

`자유의 집’을 찾았다.

정씨는 이 곳에서 공공근로를 하며 차츰 재활의 의지를 되찾는듯 보였다.

자유의 집 김정호 실 장은 “현규는 늘 밝은 표정에 의욕이 넘치는 건실

한 친구였다” 고 기억했다.

자유의 집 동료 김마석(22)씨도 “현규는 누구를 만 나든지 쾌활했다”며

“지난 7월에 자립하겠다고 해 웃으며 떠나 보냈는데 그렇게 가다니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유의 집을 나와 강원도 평창의 공원묘지에서 막일을 했다.

일을 하다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서도 결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지만, 임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정씨는 다시 안면도로 가 뱃일을 했지만, 거기서도 죽어라 일만 한채 임

금은 받지도 못했다.

유품인 다이어리에 정씨는 지난 1일 “올해도 겨우 한달밖에 안 남았다.

이달만 지나면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답

답하다”고 썼다.

정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27일 경찰에 나온 정씨의 아버지는 “ 유언대로

주검은 화장하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숨지고서야 바람 이 되고싶다는 소망 하나를 이루게 됐다.

[저 자] 손원제 기자

[출 처] 한겨레

[발 행 일] 1999.12.28

[발 행 처]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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