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장하준 칼럼>英美 자본주의는 우월한가

세기말이 되면서 다음 세기에 대한 예측이 유행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인기있는 것은 21세기가 미국의 세기, 더 넓게는 영미식(英美式)자본주의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인데,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이 곧 미국을 추

월할 것이라든지,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든지 하는 예측이 난무

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세계 여론의 변화는 9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근래에 유례없는 장

기적 성장을 누리고, 영국·호주 등도 비교적 한다. 동시에 90년대 일본경제가 장기침체를 겪고 많은 유럽 대륙 국가가

저성장·고실업에 시달리면서‘영·미 자본주의 우월론’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특히 최근 경제 위기로 극도의 자괴감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여 우리도 영·미식 자본주의를 채택하지 않으면 21세

기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까지 나타나 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얼마나 타당한가. 첫째로, 영·미계 국가들의 경제

성과가 지난 7∼8년간 비교적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영·미식 자

본주의의‘새로운 황금기’를 운운할 정도는 아니다. 이코노미스트(The Ec

onomist)지(誌)에 의하면, 1989년에서 1998년 사이 미국의 1인당 경제 성장

률은 불과 1.6%로, 일본(1.6%) 독일(1.9%)의 그것과 대동소이했다. 영국의

경우 1990년대 수십년간 계속되던 경제의 쇠락이 그쳤다는 것이지 현재 1인

당 소득 기준으로 유럽연합(EU) 15개국 중 11위로 떨어진 상대적 지위를 복

구한다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성장률 2% 호황거품 많아**

이렇게 볼 때, 영·미계 국가들의 경제 성적이 좋아 보이는 것은 일본과

독일 등 주요 경쟁국들의 상대적인 침체 때문인데, 이 차이도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영·미계 언론들에 의해 과대 선전된 면이 많다.

둘째로는 영·미계 국가들이 90년대에 거둔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이 과연

그들의 ‘체제적 장점’에 기인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우선 한가지 주목할 점은 현재 영·미식 자본주의의 장점으로 꼽히고 있는

발달된 주식시장, 자유방임적 정부,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등의 제도들이

80년대에만 해도 흔히 영·미계 국가의 상대적 쇠락을 가져온 원인으로 지

적 되었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90년대에 일본이나 독

일 등 비영·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침체를 겪은 것이 이들의 제도적 결함

에 기인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침체가 ‘체제적’ 요인에

기인하지 않은 것이라면 영·미식 자본주의의 ‘체제적 우월성’을 거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90년대 일본의 침체가 거시정책의 실패

에 기인한 것이지, 일본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제도로 여겨지는 산업정책,

장기적 하청관계, 종신고용 등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 독일의 경우도 90년대 상대적 침체를 겪은 것은 통일비용 지출로 인한 인

플레 압력의 제거와 유럽 단일통화 확립에 필요한 통화안정을 위해 지나치

게 긴축적인 거시정책이 추구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세번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기껏해야 최근 10여년 정도의 경

험을 바탕으로 21세기 전반은 고사하고 앞으로 수십년이라도 예측할 수 있

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미국 경제의 호황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가계 저축률이 이미 부(負)로 들어가 있고 주식시장에 거품

이 많이 끼어 있는 상황에서 잘못하여 미국 경제가 경(硬)착륙(hard land

ing)이라도 하게 되면 10년 후쯤에는 사람들이 또다시‘영·미식 자본주의

의 쇠락’을 이야기하고 있게 될지도 모른다.

**日·獨, 제도 아닌 정책실패**

이렇게 불과 10년후의 일도 예측하기가 힘이 드는데, 지금 ‘21세기는 미

국의 세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점술(占術)에 가까운 추측이다. 1850년에

누가 미국이 1백년후에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며,

1900년에 세계 소득 5위인 아르헨티나가 1백년도 안돼 3류 국가로 전락하리

라고 누가 예측하였겠는가.

사실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단기적 추세에 기초하여 장기적 예측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더욱이 이러한 근거도 박약한 예측에 의해 언

어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근간을 뜯어고치자는 주장은 경솔하다.

<장하준·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출 처] 문화

[발 행 일] 1999.12.28

[발 행 처] (주)현대문화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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