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1999년을 보내고 새 천년을 맞으며…
이찬배
1999년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99년은 단순히 한 해가 아니라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한 세기가 저물어 가는 저녁! 뒤돌아보면 20세기의 역사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피비린내 나는 1, 2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세계공황, 그리고 가
장 눈부신 경제성장의 황금시대, 달이 차면 기울듯이 찾아온 자본의 위기 속에
신자유주의의 두로 중남미의 경제를 붕괴시키고, 이어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경제를 침몰시켰
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환 위기로부터 찾아온 국가 부도의 경제공황
속에서 IMF에 의한 신탁통치는 빚 보증서 하나로 개인의 인생이 뒤바뀌듯이 우
리 노동자의 생활을 송두리째 11년 전으로 후퇴시켰으며, 국가경제의 주권을 고
스란히 빼앗겼다.
이러한 역사의 격변기에 한 세기를 마무리하는 저녁 노을의 빛깔은 누구에게
는 환희의 장밋빛으로, 다른 누구에게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에서는 국가경제가 침몰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1만 선을 넘어선 주가로 인해 고소득과 고소비를 자랑하고 있다. 지금 이 나라
에서도 실업자·노숙자가 늘어나고 있을 때 가진 자들은 주식투기로 돈을 펑 튀
기듯 벌어들이며 없는 자를 비웃고 있다. 이러한 빈부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해
야 할 정치권은 민중의 생존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짓말과 부도덕으로 점철된
수천만 원대의 옷로비 사건은 1년이 다 지나도록 세상을 흔들어 놓고도 끝이 안
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빈부
의 양극화 현상! 국내적으로도 제 계급계층 간에 커져만 가는 빈부의 양극화 현
상! 이러한 가운데 1999년은 정말 세기말답게 인간성 파괴와 도덕성의 타락으로
이어져왔다. 99년을 마감하는 지금, 새 천년은 가진자에게는 희망의 천년이겠지
만 노동자 민중에게는 생존권이 박탈당하는 기약할 수 없는 불안과 혼돈의 천
년인 것이다.
그런데도 올 한해 동안 새 천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이데올로기 공세
는 어느 때보다 극성스러웠다. 자본주의가 날개를 달고 마치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전세계를 누비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적으로 주식 투기가 그것이다. SK텔레콤의 주식이 한 장에 400만 원 선을
돌파하였고 한국통신 주식도 4만 원 하던 주식이 몇 주 사이에 15만 원 선을 넘
어서고 있다. 한국통신 주식 1000주만 가지고 있으면 억대의 자산가가 되는데
노동자가 일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으며 고용안정이니 노동조합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인간에겐 물질이, 돈만이 주인이다. 돈을 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회사에 나가도 업무는 뒷전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사이버 주식투자에 바쁘다. 하루 업무는 그야말로 부업이 되어버리
고 본업은 주식투기이다. 하루저녁에 몇백만 원, 몇천만 원을 벌어 들여 술 사
주고 밥 사주며 자랑하는 노름꾼 앞에 월급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왠
지 잘못 살아가는 것 같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고, 앞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아 살맛이 나지 않는다. 아니! 이 세상을 살고 싶지도 않다.
이미 새 천년의 시작은 이렇게 참된 인간성을 죽이고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부추기면서 번영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내일 모레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새 천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 환상적인 이데올로기처
럼 우리에게 희망의 천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절망
의 천년이 될 것인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볼수록 가슴이 울렁거리며 숨이 가빠온다. 과연
이 커다란 숙제 앞에 자신있게 우리 노동자에게 희망이 있다고, 조금만 기다리
면 정말 좋은 일이 있다고,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
겠는가? 아니! 나 자신조차 솔직히 말하면 새 천년을 자신있게 맞이할 마음의
준비도 안돼 있고 실제 1999년 한 해를 허겁지겁 마무리하기에도 벅차게 달려오
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참으로 신자유주의는 우리 노동자의 순수한 마음과 정신을 물질 만능주의로
물들여 가고 빼앗아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 노동운동은 무엇을 하였는가를 겸허
하게 바라보고 통렬하게 반성하면서 이제 늦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위해 마음의
고삐를 바짝 죄고 정신무장을 단단히 할 때다.
새 천년은, 희망의 천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물신주의를 극복하고 자주
적인 인간성을 회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옆에 있는 동지를 바로 세워주고 1천
4백만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지켜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송두리째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인간의 순수성과 참된 인간성을 물신주의로 야금야금 파먹으며 무너뜨리고 있
는 지금, 번영의 천년, 희망의 천년을 속삭이며 다가오는 바로 지금, 과연 내
자신의 순수한 인간적인 모습은 어디에 있는 지 점검해 보자! 그리고 무너져 내
리는 이 사회, 이 썩어빠진 정치판, 부정부패 비리에 물들어 버린 모든 것을 깨
끗이 심판해 나가자! 내년, 아니 새 천년에는 우리의 인간적인 우월성과 도덕성
을 분명히 보여주자! 이렇게 인간성 파괴와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며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는 세상, 경제주권마저 송두리째 넘어가는 잘못된 세상을 분
명히 바로 세우자! 그리하여 희망의 천년이 가진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바로 우
리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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