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1999년, 구조조정 빙하기와 노사관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10가지

기록

1999년, 대한민국은 아직도 빙하기를 지나고 있다. 거대한 구조조정의 빙

하는 기존의 질서를 거침없이 할퀴고 지나가고, 수십년간 지속돼오던 고용

관행이 휩쓸려간 자리에는 새로운 고용관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새로운 질서의 주변에는 빙하에 부딪쳐 깨진 바위들처럼 노사관계의 아픈

갈등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99년 노사관계 10대 뉴스에는 이런 변화와 갈등

의 파편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대 뉴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구조조정과 관련된 사건들이 많다

는 것이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서울지하철 파업 모두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들이었다. 작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민간부문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었다면 올해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중심 축을

이루고 진행되는 양상을 보였다.

지하철 노조의 파업에서 보여지듯이 노조운동은 구조조정의 거대한 빙산

에 대해 전력을 다해 저항했지만 그 흐름 자체를 뒤집기는 어려웠다.

구조조정의 흐름은 거대한 빙산처럼 기존의 고용관행과 노사관계 질서를

할퀴고 지나갔다. 그런 질서재편 과정에 대한 노동자들과 일반 국민들의 정

서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서 압축적으로 표현됐다.

대다수 봉급생활자들은 2년째 계속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움츠리고, 허

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런 고통의 깊이만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 대한 분노도 컸다.

옷로비 사건을 보면서 고위층 부인들의 사치에 그렇게 국민들이 분노했던

것도 그동안 구조조정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눈물과 한숨의 깊고도 넓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IMF와 함께 시작된 구조조정 빙하기는 만들어 내고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온난한 초원지대가 사라지고, 비정규직

이라는 거친 툰드라 지대로 바뀌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도로 늘어나 전체 노동자의 절반

도 넘는 53%를 기록했다. 이제 누구도 한 직장에서 평생을 의탁할 수 없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유목민처럼 일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세상으

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비록 빙하기가 풀리는 조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

런 새로운 질서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그렇게 형성된 새로운 질서

는 새로운 환경으로 정착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구조조정의 빙하기 속에서도 노동조합에 대한 규제는 조금씩 풀려가

고 있다. 민주노총이 합법화 됐고, 교원노조도 합법화되었다. 학습지 교사

노조가 합법화 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권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

리고 있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의 단결의 자유는 조금씩 풀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87년 이후 단결의 자유는 노조운동

의 오랜 투쟁과제였고, 이제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자유롭게 노동조합이라는

집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까지는 가능성으로만 쥘 수 있

는 권리다.

집을 짓는 것, 다시말해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노조운동의 과제로 남

아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 조

직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노조운동의 커다란 과제로 남겨져 있다.

올해는 양대노총 구도가 공식화된 한해였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면서 양

대노총은 한편으로는 협력하고, 한편으로는 경쟁하는 새로운 역학구도 속에

서 움직이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역학구도 속에서 양대노총의 행보도 이전과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전임자 임금문제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단독 총

파업을 감행하는 과감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남북노동자축구

대회 참가로 투쟁이 아닌 모습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올해는 노동계의 정치적인 요구가 상승곡선을 그린 해이기도 하다. 국회

앞에는 노동계의 집회가 끊이질 않았고, 각종 입법청원이 줄을 이었다.

그만큼 노동계의 정책요구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그런 정치적 관

심은 내년 총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더 가시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노총은 여당과의 정책연합을 파기하면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민주노동당도 민주노총과 손을 잡고 내년 총선 준비에 들어 간 상태

다.

노동계의 이런 정치적인 행보는 내년 총선에서 또다른 역학구도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제 그 가능성에 대한 해답은 미래의 몫이 될 것 같다.

[저 자] 이성희 편집국장

[출 처] 매일노동뉴스

[발 행 일] 1999.12.29

[발 행 처] (주)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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