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설립에서 파업까지
회사-항운노조-정부에 맞선 생존싸움
잇따르는 배신과 폭력…”믿을 건 민주노조의 힘 뿐”
3월4일 저녁7시, ‘조합원 단결의 밤’에 모인 운송하역노조 신선대지부(지부장 김영수)와 우암지부(지부장 이상영) 조합원들의 함성소리에 경성대 학생회관 앞 광장이 떠나갈 듯 했다. 서울에서 막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말문을 연 단위원장이 “이제 이 싸움을 여러분한테만 맡겨놓지 않겠다. 민주노총 전 조직이 나서겠다”며 “승리는 확신에서 나온다. 승리를 믿으며 함께 싸워나가자”고 말하자 조합원들의 박수소리는 저 멀리 신선대와 우암부두까지 메아리쳤다. 이어진 화물노련(위원장 김행기)과 민주노총 부산본부(본부장 문영만) 소속 노조대표자와 간부들의 연대인사에 집회장은 승리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조합원들이 단위원장의 한마디에 이토록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지금 회사는 물론 항운노조, 노동부, 경찰, 해양수산부 등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편’은 민주노총뿐이기 때문이다.
1991년 신선대부두가 개장될 당시 항운노조는 조합원 1백40여명을 파견했다. 신선대에도 예외 없이 항운노조 ‘연락소’가 자리잡은 것이다. 한편 공채로 입사한 부두노동자 1백80여명은 IMF 이후 구조조정을 이겨내보자는 생각에 ‘전략적으로’ 항운노조에 가입했다. 그러나 항운노조는 오히려 3교대를 2교대로 바꿔 근무시간을 늘리고, 상여금을 반납하는데 합의했다. 줄어든 임금은 명예퇴직자를 양산하는데 쓰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결국 이들은 지난 해 12월9일 부산항에 민주노조 깃발을 올렸다. 사정이 비슷한 우암부두 노동자들과 함께 운송하역노조 지부를 결성한 것이다. 운송하역노조의 한 간부는 “항운노조에서 파견한 항운노조원 가운데에서도 우리 노조로 가입한 사람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자 이제는 노동부가 나섰다. 회사가 항운노조 눈치를 살피며 교섭을 미루던 중 노동부는 지난해 12월29일 질의회시를 통해 ‘신선대부두에는 항운노조가 있으므로 새로운 노조에 가입하거나 활동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
운송하역노조는 이같은 사태가 정부의 반개혁적 노동정책에서 비롯됐다는 판단 아래 노동부장관 퇴진투쟁을 벌이며 1월26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1월21일과 28일 항운노조원 수백명이 작업대기실에 난입해 조합원들을 집단으로 폭행했다.
운송하역노조는 2월2일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하루 전날 파업을 유보했다. 물량을 다른 부두로 빼돌리고 항운노조원을 동원해 폭력을 휘둘러 유도한 뒤 그 모든 책임을 운송하역노조에 뒤집어씌우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와중에서 2월11일 ‘신선대와 우암지부는 합법적 노조며, 회사는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부산지법의 판결이 나왔다. 운송하역노조는 2월24일까지 교섭에 나서지 않으면 25일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통보했으나 회사쪽은 끝내 이 요구를 무시했다.
신선대지부와 우암지부는 결국 25일부터 태업에 돌입했다. 항운노조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쇠파이프를 들고 부두에 난입해 조합원을 집단폭행하고, 회사는 2월26일 불법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같은 날 부산노동청이 요청한 노사정간담회에 나가던 운송하역노조 간부들이 몰려든 항운노조원들에 감금당하고, 이를 말리던 조합원까지 집단폭행을 당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노동자들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회사쪽은 “항운노조쪽이 ‘운송하역노조와 교섭자리에 나가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고 운송하역노조에 호소하고 있다. 결국 이날 신선대와 우암지부 조합원은 모두 사업장 밖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조합원들은 결국 12월27일 부산 경성대에서 파업농성에 들어갔다. 이 파업투쟁은 3월6일 현재 8일째를 맞고 있다.
이황미 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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