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노동계가 얻은 성과와 과제
정영태
지난 13일에 치른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노동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98년 상반기에 노동조합법과 선거법이 개정되고 지난해 말에 는 노조의 정치자금기부를 금지하는 정치자금법이 위헌판결을 받음으로써 노동조합의 정치적 시민권을 거의 완전히 보장받은 이후 처음 실시된 선거 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약했던 중요한 객관적 조건 중의 하나인 법조항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성패와 방향은 거의 전적 으로 노동자의 손에 달리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도 정치세력화를 제약하는 객관적인 조건(예, 지역감정, 반공주의 등)들이 남아 있지만, 그것들은 법 적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하기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 들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주체적 조건과 과제에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 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지난 총선의 성과와 향후 과 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노총 ‘당선자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이냐’
먼저, 한국노총은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실시해온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노동계후보와 친노동자 후보를 지지한다’는 방침에 따라, 노총계 후보 9명 (모두 기성정당 공천후보; 지역구 7명, 비례대표 2명)과, 기성정당 후보 중 ‘친노동자’ 후보로 지정한 15명(모두 지역구; 정당별로는 민주당 11명, 한 나라당 4명) 등 모두 24명의 후보를 내세우거나 지지하였다.
이 가운데 노총계 7명(지역구 5명, 비례대표 2명; 정당별로는 민주당 5명 , 한나라당 2명)과, 지지후보 14명(모두 지역구, 정당별로는 민주당 11명, 한나라당 3명)이 당선되어, 77.8%의 당선율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21명 중 4명(19.0%)의 당선자를 낸 92년이나 18명 중 4명(22.2%)의 당선자 를 낸 96년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선자 수나 당 선율만 본다면, 독자정당건설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민주노총에 비해서도 ‘탁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보자 결정방식과 ‘당선자들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이냐’, 다시 말하면, ‘무엇이 정치세력화인가’라는 점에서 따진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국노총의 후보자결정방식은 후보자의 친노동자성향이나 당 선가능성 등 나름대로의 기준을 설정하여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조합원들의 의사를 직접 반영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민주적 방식과는 거리 가 있다.
또한 보스나 그 계파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운영되는 기성정당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친노동자후보는 물론 노총계후보조차 기성정당의 공천을 받 아 선거에 참여하는 한국노총의 방식이 갖는 한계는 명백하다. 더구나 시민 단체에 의해 무능 부패 정치인으로 낙천 낙선운동의 대상인 되었던 인사를 노총계후보로 지정, 지지운동을 한 것이나 결코 친노동자·친노조 정당이라 고 볼 수 없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는 것 등은 자칫 노조를 일부 노총계 인사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도구라는 비판에 직면하거나 명분과 도덕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
노동자 독자적 정치진출 쉬운 일 아님 확인
한국노총과는 달리,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방침에 따 라 모든 후보(11명; 서울과 울산 각 2명, 인천, 경기, 대전, 충남, 부산, 창원 각 1명)를 민주노동당의 후보로 내세웠다. 또한 나머지 10명의 민주노 동당 후보에 대해서는 지지후보로서 지지 지원하였다. 그러나, 노조정치활 동금지를 규정한 법조항이 제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노동자의 독자적인 정치적 진출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님이 확인되었다. 당선 자가 하나도 없는데다가, 득표율도 민중당이 92년 총선에서 얻은 것 (1.5%)보다 낮고 권영길 후보가 97년 대선에서 얻은 1.2%도 넘어서지 못했 다. 또한 전체 출마자의 절반 이상이 나온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지역에서는 10%내외의 평균득표율(서울 7명, 5.82%; 인천 경기 6명, 10.23%)을 기록하 는데 그쳤다.
하지만 성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선, 52명의 후보를 내세워 1.5%의 전체 득표율 5.59%의 평균득표율을 기록했던 민중당과 달리, 그 절반에 못 미치는 21명의 후보를 내세운 민주노동당은 1.2%의 전체 득표율, 12.26%의 평균득표율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1만표 이상을 얻은 후보자의 비율(21명 중 6명, 즉 28.57%)도 민중 당(52명 중 7명, 즉 13.46%)보다 높았다. 뿐만 아니라, 울산의 최용규 후보 와 창원의 권영길 후보는 막판까지 1,2위를 다투는 경합을 벌였으며, 전자 의 경우 최종개표에서 530여표라는 간발의 차이로 낙선하고 말았다.
민주노동당, 새정당의 전형 만들어
이와 같은 수치상의 성과보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우리 사 회의 새로운 정당이 취해야할 전형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일찍부터 당내민주화를 실천하는 정당으로 주목을 받기 시 작하였고, 선거가 끝난 뒤 많은 민주노동당 후보자들은 지역감정 조장 자제 , 정책대결, 깨끗한 선거운동 등을 가장 충실히 실천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 다. 특히 125명의 후보자를 냈으나 3.7%의 득표율을 기록한 민국당이나 21명의 후보자를 냈으나 0.41%의 득표율을 기록한 한국신당과 비교할 때, 전자의 1/6, 후자와 같은 수의 후보자를 낸 민주노동당이 1.2%의 득표율을 기록한 점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정당·정치인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계나 문제점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 선, 한국노총의 경우, 앞에서 지적했듯이 정치방침의 일관성과 민주성이 부 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정책연합은 파기하면서 위원장이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점, 제휴정당의 정책적 이념적 성향보다는 후보자의 당선가능성을 강 조함으로써 노동계·친노동자 후보자 지지라는 원칙을 어긋났다는 점 등은 이것을 말해준다.
노동자 이외 지지기반 확대 필요성 절실
다음,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도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문 제점이 노정되었다. 첫째, 노조의 기반을 강화하고 평상시 노조활동이나 지 역연대활동을 통한 노동자와 지역사회로부터의 신뢰를 쌓는 일이 선거에서 득표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기성정당에 초점을 맞추고 또한 이들간의 이 전투구를 보도하는데 주로 지면이나 시간을 할애하는 보수언론을 고려할 때 , 또한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선거운동기간이 대단히 짧은 현실적 조건을 감 안할 때, 노동자·진보후보자나 정책공약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리고 지지를 획득하는데 가장 믿을 수 있는 방법은 평상시 조합원이나 지역주민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하고 지역적 기반을 확대하는 것밖에 없다. 노동자가 밀집해 있고 평상시 노조활동이 활발한 울산이나 마산 등지에서 고득표율을 기록한 점이 이것을 말해준다. 동시에 이 지역에서의 선거결과의 다른 측면(즉, 노 동자 밀집지역에서조차 당선자를 내지 못한 것)은 이 점에서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시시한다.
둘째, 노동자 밀집지역은 전체 선거구에서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 부분의 지역은 노동자가 전체 주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낮다는 점 을 감안할 때, 그리고 선거에서의 승리를 중요시한다면, 노동조합이나 그 정당이 노동자 이외의 다른 계층, 특히 농민이나 빈민 등 기층대중과 진취 적인 학생층으로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절실히 필요하 다는 점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비중이 낮은 대부분 수도권지역에서 후보 자들의 선전분투와 좋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노조나 정당은 평상시부터 실질적인 지역연대사업 을 추진하여 다른 계층들로부터 신뢰를 쌓고, 정당은 이들을 포괄해내야 한 다.
마지막으로, 각 후보들의 지역에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조나 정당의 중앙조직이 제 역할을 못함으로써 정책대결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지역감정 과 인물대결이 선거운동을 지배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정책 대결이 이루어졌다면, 외환위기 이후 각종 사회적 문제들이 심각해지는 상 황에서 노동자후보의 차별성이 훨씬 더 부각되었을 것이고 선거전에서도 더 유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성정당이나 후보들은 어차피 중산층 이상의 계층과 외세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는데다가 상호간 차별성도 없었기 때문이 다. 물론 이에 대한 주요 책임은 기성정당과 보수언론의 탓이지만 정책대결 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노동조합이나 그 정당, 특히 중앙조직에게도 중 요한 책임이 있다.
[저자] 정영태 인하대 사회과학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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