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모토 신야의 <철남>은 그 기괴함과 폭력적인 도발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메니아들을 중심으로 많은 컬트팬을 가진 영화였다. 흑백의 거친 화면 속에 기계와 결합되어 변형된 사이버펑크적 인간, 숨을 끊어버릴 듯한 빠른 호흡과 기괴한 이미지는 방향을 상실한 청년들에게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츠카모토 신야는 <동경의 주먹>으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이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의 한 명으로 <쌍생아>가 극장 개봉되었다.
영화는 들끓는 벌레와 동물의 뼈에 남은 살점을 파고 들어가는 쥐들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어떤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신음과 탄식을 연상시키며 공포를 자극시키는 음악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과격하다고 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려 관객의 심기를 자극하고 푸르스름한 빛이 얼굴에 만들어내는 컨트라스트가 강한 음영은 원초의 광기가 서려있다. <쌍생아>를 통해서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강렬한 감각에 사로잡혀있을까.
<쌍생아>의 주제의식은 크로넨버그의 <데드링어>를 마르크스와 결합시키고, 키에슬롭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의 동물적 공격성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 듯이 보인다. 계급갈등이 심하던 메이지 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부유한 집안의 유망한 의사인 유키오는 가난을 경멸한다. 그런데 화재로 기억을 상실하였다는 링이라는 여자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이 집안에는 기묘한 불안감이 스며든다. 깨끗하고 부유하고 평화로운 집의 외피를 비집고서 그 집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하고 유키오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의문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후 유키오와 같은 얼굴을 한 스테키치가 나타나 유키오를 우물 속에 처박는다. 그리고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유키오와 스테키치는 우물의 안과 밖에서 서로 쳐다본다. 스테키치는 유키오의 일란성 쌍둥이 형제였으나 몸에 문신을 하고 태어나서 버려졌고, 이후 빈민가에서 키워졌었다. 이쯤 되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가 잡히기 시작한다. 계급의식을 형성하고 귀족적 삶을 영위하는 것의 심층,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저 깊은 심연의 밑바닥에는 원죄, 혹은 이데올로기적 광기와 억압의 폭력성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고, 그것이 스테키치를 통해 현실의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마는 것은 뭔가 부적절해 보인다. 링은 원래 빈민가 출신이었고 스테키치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링과 스테키치의 사랑은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원초적 에로티시즘의 영역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스테키치가 마을에서 쫓겨난 후 링은 유키오의 부인이 된 것인데,어느날 자신의 옆자리에 누워있는 것이 유키오가 아니라 스테키치라는 것을 알게된 링은 예전의 동물적인 사랑을 요구한다. 그런데 스테키치는 자신이 유키오라고 말하며 자기를 거부한다. 그는 완벽한 유키오가 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복수를 거의 완성한 듯이 보이는 스테키치가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귀족사회의 표면을 성취하고 하는 것 속에는 또다른 무엇인가의 증오와 계략이 숨어있어서일까? 링의 존재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스테키치에게 예전의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을 요구하지만, 유키오 역시 사랑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무언가 광기의 그늘에 사로잡혀있던 것으로 보이던 그녀의 존재감은 부박해진다.
그런가 하면 우물안에 쳐박혀 있는 유키오의 모습은 점차 스테키치의 동물적 모습을 닮아간다. 그리고 결국 스테키치를 닮아간 유키오는 유키오를 닮아간 스테키치를 죽이고 다시 유키오의 외피와 스테키치의 광기의 심성을 결합한 듯한 기묘한 웃을 띄며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이런 복잡한 나열이 보여주는 것처럼 영화는 끊임없는 모호성의 영역, 즉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너다’의 무의식의 영역으로 달려가는데, 그곳에 마르크스를 끌어들이고,공포 영화의 관습을 끌어들이고, 원초적 에로티시즘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을 모호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링과 스테키치가 가지고 있던 원초적 야성의 불꽃은 오히려 꺼져버린 듯 하고, 영화를 보
고 나오는 관객에겐 오직 의미를 상실한 현란한 이미지의 과잉만 남게 되는 것 같다.
츠카모토 신야는 89년의 <철남>에서 <쌍생아>에 이르기까지 약 10년간 다섯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세기말의 혼돈, 포스트모던한 문화적 현상들에 츠카모토 신야의 작품들은 잘 맞아떨어진 면이 있다. 그러나 그가 21세기를 대표하는 감독의 한 명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요소들을 혼성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철남>에서 보여주었던 독창적인자신만의 스타일과 아마추어리즘을 잊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쌍생아>는 제도권에서 만들어져서 공포영화와 상업영화의 컨벤션과 츠카모토 신야의 독특한 스타일이 불협화음처럼 만나고,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의미가 탈색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인간 육체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에로티시즘과 폭력의 결합에 대한 원초적 본능의 힘에 대한 묘사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강준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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