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서부터 ‘롯데호텔노조’ , ‘sofa개정· 매향리 사격장 폐쇄 범국민대책위’, ‘보건의료노조’, ‘한총련 정치수배단’, ‘사회보험노조’ 농성텐트가 줄지어 있다.

농성텐트에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수배자의 신분으로 눈앞에 보이는 약국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지금 ‘도피중’이 아니라 ‘투쟁중’.

아침 6시. 새벽 기도를 위해 성당을 찾는 신도들은 삭발을 한 학생들이 성당을 청소하는 모습을 먼저 보게 된다. 한총련 정치수배자들로 많게는 7년 이상 도피를 하고 있는 이들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된다. 진재영(94 전남대총학생회장·30) 씨를 비롯해 5명의 ‘학생’들은 사실 전직 학생이지만 여기서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학생으로 통한다. 7년째 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진씨는 명동성당에서 10년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다.

아침 청소에는 가장 늦게 텐트를 친 신입회원(?) 사회보험 노조원들도 동참을 하고 있다.

몸이 건강해야 투쟁도 열심히 할 수 있는 법. 보건의료노조원들은 아침 체조로 불편한 잠자리의 기운을 말끔히 해소한다. 농성중인 간부들의 건강을 걱정해 요가 선생이 직접 아침마다 농성장을 찾아온다. 체조가 끝나면 아침식사가 이어지는데 한총련 학생들과 보건의료노조원들은 교대로 식사당번을 정해서 밥을 직접 해먹는다.

농성중인 사람들은 대부분 조직의 지도부들이기에 아침식사가 끝나면 산하조직의 상황을 체크하느라 분주하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차수련 위원장이 명동성당에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이기에 모든 회의가 텐트에서 이뤄진다. 차 위원장은 “매주 임원회의와 상집이 여기서 이뤄진다. 정부와 민주노총이 경색국면으로 접어들어 앞으로도 이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차 위원장은 현장을 돌아다니며 조합원을 직접 챙기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눈치다.

롯데호텔노조 텐트에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경종 위원장 직무대행을 비롯해 6명이 농성 중에 있다. 아침 9시에 간단한 회의를 한 후 10시부터는 매일 같이 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에 참석하는 롯데 호텔노조원은 1천여명 정도라고 한다. 롯데 호텔노조원은 매일 10시 집회, 저녁 민주노총 집회 등으로 고단할 법 하지만 현 시기 노동탄압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만큼 열성적인 투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경남 사무국장은 대다수가 여성조합원임을 상기시킨 뒤 “여성조합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 살인적인 진압으로 험한 꼴을 다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단결하고 있다”며 감격해 했다. 현재 사측은 조합원들에게 회사 복귀 최후통첩을 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복귀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당혹스러워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의 집회가 시작되는 10시에 사회보험노조 역시 밤사이 상황을 체크하면서 지침을 내리는 등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롯데호텔과 더불어 공권력의 침탈을 당해 조합원들이 격앙돼 있는 상황이고 전국적인 사업장이기 때문에 상황을 취합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명동성당의 농성장이 조금 한가해 지는 때는 태양이 잔인하게 내리쬐는 점심이후. 텐트 내부의 열기는 사람이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 농성중인 사람들 중에는 성당 별관에 있는 ‘만나는 방’에서 독서를 하며 한낮은 더위를 달래기도 한다. 더위를 피하는 것도 잠시, 오후시간에는 농성하는 사람끼리 세미나도 하고 열띤 토론도 한다. ‘sofa개정· 매향리 사격장 폐쇄 범국민대책위’ 농성텐트는 수배자가 없어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자통협 등 여러단체가 공동으로 농성을 하다보니 1주일을 주기로 농성장을 지키는 단체가 바뀌고 있다.

어둠이 깔리고 더위가 한풀 수그러들자 7명이 수배중인 보건의료노조 텐트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한총련 학생들과 보건의료노조원들이 토론을 하고 있었다. 보건의료노조 간부들은 “옆에 있는 국보법 철폐 농성 학생들과 매일 얘기하다 보니 밖에 나가면 통일운동 할 것 같다”고 말하며 “롯데호텔 노동자의 얘기를 듣고 병원과 호텔노동자의 근무가 3교대 등으로 이뤄져 많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은 한총련 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97년부터 수배를 받고 있는 최윤진(26·전 경북대학교 총여학생회장)씨는 농성을 하며 가장 인상깊은 사람을 차수련 위원장으로 꼽으며 “그 동안 노동자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다”고 전했다.

농성장에서 계속 얘기만 할 수는 없다. 저녁이 되면 명동성당의 농성장이 분주해 지기 시작하는데 입구에서는 ‘국가보안법 철폐’ 선전전이 8시까지 진행되고 명동 거리에서는 소파개정, 매향리 사격장 폐쇄 가두 캠페인이 매일 열린다.

농성중인 사람들에게 어려운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김형주 경희의료원 지부장은 자기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것이 힘든 점 아니겠냐며 “아직 파업이 끝나지 않은 사업장이 많은데 발로 뛰지 못하고 여기에만 있어야 하는 점”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부분이 결혼을 한 상황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 농성을 한다는 사회보험노조 윤병철 사무처장은 “잠자리도 불편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했다.

농성중인 사람들의 어려움은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소망은 모두가 똑같다. 빨리 수배가 해제되고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돼 당당하게 명동을 나가는 것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가 않다. “우리는 참 복도 없다는 말을 농담 삼아 한다. 수배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 본부장이 담담하게 하는 말이다. 농성중인 수배자들은 한결같이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쉽게 명동성당을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위기였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 자유를 얻는 날까지 이들의 농성은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농성장에 밤이 깊어가고 내일의 투쟁을 위해 다섯 동 텐트의 수배자들이 몸을 누이는 시각은 별빛이 한창인 새벽 2시가 넘어서였다.

(정경섭jks@kdl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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