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동남아, 금융위기 이후 반미 분위기 급속히 확산
동남 아시아에 중동 못지 않은 반미 열풍이 불어닥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
남아 경제를 공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통화위기의 배후로 미국계 초국적 금융자
본인 조지 소로스의 투기 행위가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동남아 지역이 1980년대
들어 초국적 자본의 하위 파트너(후발 개도국)로 편입되어 고도성장 신화를 이
루면서(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을 통해) 제3세계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친미적인
기류를 형성해 오다 이제 그것이 깨지면서 역풍이 불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말레이시아에서 반미 기류가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지난 13일 말레이
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서 1백여 명이 반미 시위를 벌였고 미국 대사관에는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미국인 4명을 이미 살해했다는 내용을 포함해 미국인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 왔다. 그러자 미국 대사관 측은 서둘러 말레이시
아에 체류하는 미국인에게 신변 안전을 각별히 당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같
은 사태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가 최근 동남아 통화위기와 관
련해 유대계 미국인 조지 소로스의 투기자금이 그 배후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미 국무성과 의회가 즉각적으로 모하메드 총리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며 사임을 촉구하는 내정 간섭에 나서면서 국가간 대결 양상
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나스가 이란 가스전 개발에 합작을 하
기로 하자 미국이 제재에 나선 것도 갈등을 증폭시킨 요인이 되었다. 동남아 국
가 중에서도 이슬람 국가로서 민족적 성향이 강한 말레이시아는 함께 통화위기
를 겪으면서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백여억 달러씩 긴급 지원을 받은 태
국과 인도네시아와는 상황이 또 달라 강한 반미 성향을 띠게 된 것이다. 지난 8
월에 열린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총리 회담에서도 말레이시아 모하메드 총리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에 국제관계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에
새로운 힘의 중심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에서도 미국인에 대한 테러가 발생했다. 지난 12일 파키스탄
수도 카라치에서 차를 타고 가던 미국인 회계사 4명이 총격으로 피살됐다. 이
사건은 지난 93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2명을 살해한 키스탄인 미르 아이말 카시가 미 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지 이틀만에 발생한
것으로 이에 대한 보복 테러의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13일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에 대해 바깥출입을 삼가도록 지시하고 미국인 학
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대해 잠정 휴교 조처를 취했다. 또한 파키스탄 지역에 미
국인들의 여행을 금지하는 한편 범인색출을 위해 연방수사국 요원을 급파했다.
특히 미국은 내년 초 클린턴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에 앞서 16일로 예정되었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문일정을 강행하고 나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13일 동티모르에서 분리독립운동을 벌이는 학생
시위대를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미국인 린 앤 프레덱슨에 대해 강제출국 조치
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이처럼 동남아의 지역의 반미 분위기는 미국인에 대한 테러와 추방 등 극단적
인 양상을 띠면서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직 반미운동이 노동운동이나 민주
화운동과 전면적으로 결합되면서 대중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지는 않고 있지만 주
요한 흐름의 하나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 지역은 냉전 해체 이후 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을 중심으로 지역 자
주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 동안 대내적으로는 지역통합을 강화하면서 대외
적으로는 미국 일변도에서 중국, 유럽 등과의 등거리 외교를 통해 지역의 이익
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역내 국가의 상당수가 종교적으로
이슬람의 영향하에 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와해시키고자 미국
은 냉전 해체 이후 제3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신자유주의형(무력이 아니라 금융
공황을 통해 제3세계의 통화가치를 하락시킴으로써 이 지역의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산업적으로든 금융적으로든 이윤 수취율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제국주의 공세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멕시코에 이은 타게트의 일순위로 아세안
을 삼았다.(물론 다음 타켓은 한국, 홍콩, 대만 등 동북아의 선발개도국 —
NICS이다) 그리고 그 결과 동남아가 중동에 이은 반미 열풍지대로 전환되고 있
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금융위기 격화 후 동남아 반미 분위기의 급속한 확산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초일류 강대국이 되면서 정치, 군사적
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까지 유일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한편으로 강대국 내에서는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이 이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형성되고 다른 한편으로 중동만이 아니라 아시아 중남미 지역 등
제3세계 전반으로 반미 열풍이 확산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흐름 역시 거대하게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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