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임박한 공황과 노동운동의 대응
지금 즉각 총파업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제공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 우리나라에 곧 공황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고 있습
니다. 공황의 발생은 우리 민중생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입니다. 그
러나 국내 언론의 축소 왜곡 보도로 인해 공황의 가장 큰 피해자인 노동자
민중들에게는 그 심각성이 잘 인지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소 부족하고 시기는 좀 늦었지만 선진노동자 여러분들
이 현실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본 글을 싣습니다.
본 글이 공황이라는 위기 국면의 본질과 그 파급력을 이해하고 노동자 민
중의 인간다운 세상을 향해 투쟁해 나가기 위한 토의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
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차 례>
1. 들어가면서
2. 공황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가?
3. 총자본의 대응
4. 신자유주의 세계에서의 공황 — 그 원인과 특징
5. 한국 자본주의에서의 대공황 — 그 원인과 전망
6. 공황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응 방향
7. 맺음말
* 지면 사정으로 4. 5. 6. 7. 은 다음 주에 이어 싣습니다.
1. 들어가면서
한국 경제에 대공황이 다가오고 있다. 임박한 공황 앞에서 자본도 국가(기구)
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본은 느닷없이 금융실명제 백지화를 들고 나오는가 하
면, 정부는 느닷없이 금융개혁 법안을 국회에 통과시키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또 이번 주 중에 경제위기와 관련한 중대발표를 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 민중을 향해서는 여전히 호언장담을 반복하면서 진실을
감추고 있다. 말레이시아 수상 마하티르를 흉내내어 국제 환투기 세력을 비난하
며 “악성보도가 정부의 외환관리 능력에 대한 불신감과 해외 투자자들의 불안감
을 증폭시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한겨레21 11. 20일자
참조–주) 그리고 총자본의 입노릇만 해 온 언론은 “한국 경제 낙관적”이라는
관제 주장만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본이고 국가(기구)고 언론이고 모두들 아무런 실효성 있는
대책도 없이 진실을 호도하기에 급급한 동안에 세계는 한국경제의 사실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이 파국을 구제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이며, 이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것인지, 또
한국의 공황이 세계 자본주의에 미칠 파장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그 일환으로서 이번 주에는 동경에서 미국, 일본의 당국자가
만나고 이 자리에 한국의 당국자도 참석하여 한국의 임박한 공황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미국의 재무부 서머스 부장관이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
본 대장성 차관과 만날 것이라 한다. 매일경제신문 11. 15일자–주)
그런데 지난 15일 정부 당국은 외국의 금융전문가들이 한국의 심각한 외화자
금난을 타개하려면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서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아야 할 만한 상황이 아
니다”라는 입장을 단호하게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외환
보유고가 부족하지 않은 상태”라며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은 현 단
계에서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한국경
제신문 11. 15일자–주)
과연 정부 당국의 이 말을 믿어도 좋을 것인가?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국가
기구를 담당하는 집단인)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우리는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
시키는 그들의 행위를 통해서 그것을 확실하게 경험했다. 사소한 사안에 대해서
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안일수록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광주에서 학살된 민중의 숫자라든지 그 발포명령
자라든지 하는 것은 결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3당야합의 합의문서도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 김영삼 정권의 대선 자금 규모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
다. 따라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안인 이 경제 공황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이 진
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면 이른바 국제 금융 전문가들의 말을 100% 믿을 것인가? 아니다. 그들
또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 또한 그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측면에 대
해서만 진실을 말한다. 그들 또한 얼마 전 태국을 비롯한 동남 아시아에서 연쇄
적으로 금융공황이 터졌을 때 “한국은 그 나라들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장래
에는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어떠한 공황의 징후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말해
왔다.(캉드쉬 IMF 총장의 발언. 조선일보 11. 7일자–주 )
그런데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이것은 무엇
을 말해주는가? 그들은 이제 한국경제-민족경제로서의 한국경제-를 공략할 시점
이 되었다는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경제를 무너뜨려야 되
겠다고 생각하면 “한국 경제 곧 무너진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말은 ‘예측’
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전망목표’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달까지는 자신들의 그러한 의사를 공개하지 않고 은폐하는 것이 필요했
지만,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를 굴복시키고 난 이제 한국을 공략할 차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의 총자본은 공황을 맞지 않으려 하고 있고,
그래서 공황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국제 금융 기구와 초국적 자
본은 이른바 전문가라는 자들의 입을 빌려서 한국은 공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하
면서, 공황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이 두 개의 힘 경향 세력 가운데 어느 쪽이
관철될 것인가?
당연히 후자가 관철될 것이다. 왜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가? 첫째 그들의
힘 내지 세력이 국내 자본(민간자본과 국가기구의 힘을 합친 총자본)의 힘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국내 총자본은 이미 구조적 및 경기순환
적으로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상황을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
다. 국내 자본이 재벌 기업의 부실과 연쇄적인 도산, 재벌 전반에 걸쳐 추구된
차입에 의한 무모한 확장(과잉 생산시설)에 따른 경영수지 악화와 부도 위험의
증대, 그리고 그 여파로서의 종합금융회사 및 은행의 파산 위기를 맞이하고 있
다.(미시 경제적인 각도에서 볼 때 이러한 상태가 주가(株價)에 반영되어 주가
지수가 500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주가 하락은 공황을 예상하지 않
았던 시기인 금년 연초 같으면 투자가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을 수치이다. 11
월 15일의 종합주가지수는 519.37이다–주)
한편 거시 경제적으로는 국제수지 적자 -> 외환 부족 -> 외채에 의한 외환보
유고 충당 -> 원화 가치에 대한 불안감 증가 -> 외채 조달의 곤란으로 국가 경
제의 파산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국제 투기자본이 준동할 수 있
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국제 투기자본의 대표격인 퀀덤 펀드(그 대표가 조지
소로스이다)에서 벌써 한국을 살피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외환투기와 환율
폭등이 악순환을 구성하여 진행되고 있다. 환율은 이미 1달러 1,000원을 넘어선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1,000원대 이하의 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11
월 14일자 환율은 986.30원이다–주) 연초 같으면 이것만 가지고도 공황적인 충
격으로 받아들여졌어야 할 수치이다.
취약점들이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초국적 자본의 전망목표가
관철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조건 위에서 한국의 총자본이 공황을 계기로 구
조 조정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초국적 자본의 의지를 과연 저지할 수 있을 것인
가? 그 답은 물어보나마나이다.
2. 공황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가?
이 공황은 연말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 산 꼭대기에서 아래쪽
으로 눈덩이가 한 번 구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것이 굴러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갈수록 가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이미 공황을 향해 굴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환율이 1,000대를
넘어서면서 시작된 것이다. 1,000대 선은 공황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는 심리
적(心理的) 마지노 선이었다. 그 선이 무너져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심리
적으로 공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운영에 있어서는 심리적인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근대 경제학
은 자본주의 움직임의 본질을 보여 주지는 못하지만 자본주의의 이러한 현상적
특징은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한계 내에서 부르조아 경제학
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심리적인 한계선이 무너지면 모두들 공황을 기
정사실화하고 공황 상황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타산하기 시작한다. 초국적 자
본은 이것을 전망 또는 예측이라고 이름붙여서 기정사실화하면서 그러한 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므로! 여기에 투기자본들이
활개칠 공간이 생겨나고 이 투기자본은 공황을 가속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소로스의 퀀덤 펀드에서 지난 주에 한국을 다녀갔다. 그들은 “한국이 국제 통
화 기금(IMF)의 구조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철수하겠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재투자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하고 갔다. 그런데 국가기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 헤지펀드들이 투기를 개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직
시각이 문제일 뿐이다. 국제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 미국
대통령 자문관 프레드 버그스텐스도 한국이 대통령선거 이후 국제 통화 기금
(IMF)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경제신문 11. 15일자–주)
헤지펀드들이 외환투기를 하면 외환이 바닥이 날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간
신히 그리고 어거지로 부도를 은폐해 왔던 종합금융회사들과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을 선언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금 종금사들에 대해서만 정리할 생각을
내보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를 함으로써, 종금사 예금자들의 희생을 가지고 국제금융시장에 “신인도”를 높여서
외화 차입을 늘이고, 이것으로 외환보유고 고갈에 의한 국가경제 파산을 면해
보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은행의 파산은 대선 이후로 미루고 그 부담은 국가재정
즉 국민의 혈세로 매우겠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서둘러 국회에 제
출된 13개 금융개혁법안의 골자이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차제에 한국
경제의 구조를 허물어뜨리고 자신들이 자유롭게 진출하여 지배하기에 유리한 구
조로 “개혁”하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금융공황이 은행들의 파산으로 이
어지지 않는 한–은행들은 국가기구의 통제 하에 있는데–한국경제에 대한 신인
도를 높여주지 않을 것이다. 무디스(Moodys) 또는 S&P(Standard & poor’s)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일제히 한국에 대한 국가 신용평가 등급을 하향조정하고
있는데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종금사에 대한 수술정도로는 쉽게 바꾸어지지 않
을 것이다.(동아일보 10. 24일자–주)
결국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이것을 차기 정권으로 미루고자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바대로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한달이 채 남지 않았으므로 어쨋든
시간문제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초국적 자본은 한국의 은행들의 재벌을 특혜적으
로 지원하는 관행을 깨뜨리고자 하고 있으며, 그것이 관철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에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는 재벌들은 지금까지 은행을 사
금고(私金庫)화 하여 거기에서 부족 자금을 메꾸어서 버티어 왔는데 이제 이것
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행의 돈을 찍어서 은행(국책은행 및 시중은행)을 매개로 하여 재벌에게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재벌들을 버티어 주고 있는 것을 강력하게 문제삼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재벌을 과녁으로 삼고 있다. 그것을 위해 은행을 문제삼고 있다
(물론 은행 그 자체에 대해서도 참여를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들은
심지어 재벌의 지배구조까지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10월 6일부터 10일간 조사
활동을 벌인 국제 통화 기금(IMF)의 찰스 아담스 아.태국장보는 15일 기자회견
을 통해 “IMF는 시장 주도의 경제로의 전환, 규제 완화, 산업구조 조정, 토지용
도 제한 철폐,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지
지한다”며 우회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천명했다. 한국경제신문 10. 15일자–
주)
따라서 은행들이 파산을 하지 않고는 초국적 자본은 입박을 중지하지 않을 것
이다. 은행이 파산하면 은행들은 더 이상 재벌들에게 기업의 신용상태와 상관없
이 국가의 돈을 특혜적으로 나누어 주는 관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리하여 다음 순서로 재벌들이 파상적으로 파산을 선언하고 나오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공황은 외환위기로부터 시작되어 -> 은행의 파산으로 -> 재벌의 파산
으로 -> 그에 따라 중소기업들의 파산 -> 민중 생존의 파산으로 이어지게 될 것
이다.
이렇게 재벌의 경영 악화 -> 은행의 파산 -> 재벌의 파산의 연관관계를 가지
고 공황이 진행되리라고 하는 것은 결코 심오한 분석이나 무속인들의 예지에 의
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상식적인 분석이다. 지난 세기 세계공황들은
대개가 금융공황에서 -> 산업공황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정치경제학 이론의 기
본적인 내용이다.
자본이 평균이윤율을 실현할 수 없는 상황으로 되면(경제순환은 이것의 반복으
로서 호황기에는 그 이상으로 불황기에는 그 이하로 된다) 그 동안 협력관계에
있었던 산업(생산 및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이 때 화폐
(금융)자본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산업자본에게 보다 높은 금리를 요구하거나,
산업자본이 가장 자금이 필요한 시기에 자금공급을 빡빡하게 한다. 그래서 산업
자본 부문의 어려움을 심화시킨다. 이렇게 되면 산업자본의 수익성과 자금 사정
이 더욱 악화되고 파산의 조짐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면 금융자본 분파는 더 이
상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자금을 회수하려 든다. 그리고 이것이 금융시장(일
국적으로는 주식시장, 국제적으로는 외환시장)을 붕괴시킨다. 이것이 다시 산업
자본을 파산으로 몰아넣는다. 이처럼 파국은 산업-금융이 맞물려 있지만 금융부
문에서 선도된다.
다음으로 오늘의 공황은 일국적이 아니라 국제적이다. 일국의 국내적 요인이
좌우하는 공황이 아니라 국제적 요인이 좌우하는 공황이다. 따라서 이는 주식시
장에서 오지 않고 외환시장에서 오고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거시경제적 조
절을 통해서 일국적 공황을 완만하게 나타나도록 다스려 왔다. 이것이 지난 시
기의 케인즈주의적인 경제정책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점차 통
합되어 왔고 국민경제적 조절 능력을 잠식당해 왔다. 그래서 90년대 후반에 이
르면 국가독점자본 대신에 초국적화한 산업 금융자본이 실질적으로 세계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물론 초국적 자본이 그 모국에서 국가와 유착되어 있는 관계를
단절한 것은 아니다. 초국적 자본은 그 모국에서 국가독점적 결합을 하면서도
국제적으로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국가기구의 규제적 성격을 무력화시키고 도구
적 성격만을 살려 나가고 있다. 또 일국에서 자국(自國) 자본이 아닌 타국(他
國) 초국적 자본이 늘어남으로써 자본의 민족적 성격이 저하된다.
그런데 초국적 자본의 이 움직임을 규제할 국제적인 국가기구는 존재하지 않
는다. 국제 통화 기금(IMF)은 그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집행위원회일 뿐이고 ‘세
계국가’적인 조절기구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민족경제 안에서 하나의
취약한 자본이 망하는 것(예컨대 우리나라에서 최근 5대 재벌에 속하지 않는 여
러 재벌이 파산했다)과 마찬가지로 세계경제 안에서 취약한 민족경제들이 파산
을 하게 된다. 이것이 전반화하면 세계공황으로까지 비화된다.
그러면 이번 한국경제의 공황은 세계공황으로 비화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초국적 자본의 헤게모니 분파(미국을 중심으로 하는)는
취약한 한국 자본주의의 파산을 전략적 목표로 선택했다. 일국 차원에서 하나의
독점자본 그룹이 파산하면 그것을 나누어 가지듯이 세계적 차원에서 한국경제를
삼킬 수 있으므로! 그러나 그들은 한국경제의 공황이 일본에까지 파급되고 그로
인해서 유럽연합(EU)과 미국 자본주의까지 이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 자기들에게 큰 피해없이 조용히 삼키고자 원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가 무정부적인 현 상태 하에서 과연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될 것
인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공황으로 비화되지 않게 하려고 노
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미국 백악관을 비롯한 당국이
“한국경제의 사태 진행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국경제의 공황은 세계경제에도 상당한 충격파를 미
치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는 국민총생산이 세계 11위이고 세계 교역에서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한국의 재벌은 초국적 자본화(化)를 노려서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이것에 세계 금융시장의 상당한 부분이 물려 있다.(국내 은행만이 재벌에
게 물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외채가 1천억 달러만일지 알 수 없
다. 한국 재벌의 현지회사들이 빌린 외자도 상당액수일 것이다. 해외현지법인의
현지금융이 4백억 달러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세계금융시장에 미
치는 파장이 그만큼 더 클 것이다.
이것 말고도 심리적인 파장이 있다. 지난 달 홍콩 증시의 폭락이 있던 당시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통화 약세에 허덕이던 남미 브라질의 주가가 일거에
10% 가까이 폭락했다. 브라질과 홍콩이 실물적으로나 금융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없는 데도 그렇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국으로부터 공업국으로 진입한 나라 가운데 성공적
으로 진입한 유일한 예가 한국이다. 우선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龍)이라고 해
도 싱가포르, 홍콩은 도시국가이고 대만은 정치적으로 중국의 일개 성(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은 올곧은 국가경제로서 성공한 유일한 경우이
다. 게다가 홍콩, 대만, 싱가포르는 중화학공업이 취약하고 경제의 자립적 재생
산 기반이 취약하다. 초국적 자본의 노동집약적 상품을 공급하는 보완기능 이상
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비록 핵심기술에 있어서 대외 종속적이지만 중화학공
업화에 성공했고 일정하게 생산재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 조선, 철
강, 기계금속 등이 이것을 나타내주는 산업들이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발전은
범세계적으로 하나의 모범사례였다. 동남아 나라들은 이러한 한국모델을 따르고
자 했다. 그들은 싱가포르나 홍콩, 대만을 따르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모델이 파탄나게 된다고 하면 전 세계적으로 제3세계의 자본주의
발전 전망이 전반적으로 흐려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제3세계 전반의 경제성장
과 투자 전망을 불투명하게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심리적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확장 전망을 불신하게 만들 것이다. 자본은 사장되거나. 금투기, 부동산투기,
채권투자, 현금 퇴장 등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세계적인 대공황을 낳지는
않더라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을 위축시키는 파장을–일시적일지라도–낳게 될
것이다.
이 지점까지 초국적 자본의 주관적 의지가 관철되지는 못할 것이다. 초국적
자본은 이러한 사태 전개는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무정
부성과 세계경제의 보다 높아진 통합성은 그들의 의도와 어긋나게 세계적으로
심각한 파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뉴스위크 지는 “과
거에는 호경기가 불경기로 바뀌는 데 여러 해 걸렸다. 그러나 요즘은 세계화 덕
분에 그 변동주기가 단 이틀만에 완성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미국 자본가들의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다.(뉴스위크, 한국판, 97. 11. 12일자–주)
3. 총자본의 대응
이렇게 시시각각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 나라 총자본은 어떻게 대응하
고 있는가?
재벌들은 그동안 초국적 자본이 잡는 바람에 붕 떠서 세계화니, 초일류기업이
니, 공격경영이니, 세계경영이니 하면서 무모하게 설쳐 왔다. 그러면서 그들은
초국적 자본이 제공하는 논리를 앵무새처럼 되뇌어 왔다. 규제완화, 유연화(노
동시장), 자유화, 민영화 등등 김영삼 정권하에서 지난 5년 동안 쏟아져 나온
모든 논의들이 죄다 자신의 창작물이 아니라 초국적 자본의 모조품이었다.
재벌들은 이렇게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논리를 수입해서 사용하는 것이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재벌의 자본축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기
대했다.(재벌은 이제 외자 배분 및 재정.금융상 특혜를 제공하는 반대급부로 정
부가 인허가권을 가지고 통제하는 것을 거부할 만큼 성장했다. 재벌 스스로의
힘으로 은행.증권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각종 인
허가의 폐지를 요구하고 은행 소유.경영권을 재벌에게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 또 기 시작한–의 유효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러한 기대나 생
각은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기구의 통제에서 많이 벗어났고
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것들을 이론
적–이데올로기적–뒷받침을 해 준 것이 신(新)자유주의 이데올로기들였다.
그러나 재벌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그들은 신자유주의가 ‘자본일반’의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초국적 자본, 그 가운데서도 세계 패권 분파의 이데올로기
라는 것을 꿰뚤어 보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논리를 펼치면서 이러저러한 수입개
방에 반대하고(예켠대 자동차 시장), 금융시장 개방에 소극적이었으며, 정경유
착을 통해 재벌에 대한 특혜적 지원을 유지하려 했다. 초국적 자본은 이제 이
지점을 공격해 들어오고 있다. 국내 재벌은 이 지점에서 아무런 할 말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화가 초국적 자본의 세계지배 전략이며 이데올로기라
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것이 현실이고 진리라고 믿었다. 어리석게도 그렇게 믿
었다! 이제 그 대가를 그들은 치르고 있다.
재벌은 세계화 “현실” 속에서 초국적 자본의 반열에 들어가 보자고 무모한 확
장을 의미하는 “공격 경영”과 초국적 자본화(化)를 의미하는 “세계경영”에 경쟁
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는 대우그룹의 김우중을 뒤따라 “세계경
영”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모든 재벌이 “세계초일류” “공격 경영”의 대열
에 들어섰으며 재벌들은 자기자금도 부족하고, 물질기술적 능력도, 조직기술적
능력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일을 벌였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으로의 도약 시도는 도처에서 실패했다. 삼성, 현대, LG,
대우 등 대표적인 재벌의 해외투자는 모조리 적자와 실패를 맛보고 있다. 그리
고 이것이 재벌들의 자금 사정을 악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
라 재벌은 국내에서도 경쟁적으로 “공격경영”을 했다. 삼성이 자동차에 진출하
고, 현대가 제철에 진출하려고 하고, 쌍용이 자동차를 주력산업으로 삼은 것 등
이 그러한 사례들이 가운데 많이 알려진 것들이다. 그러나 한보의 경우에서 극
명하게 나타났듯이 부채를 통한 이러한 무모한 팽창은 특정 재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재벌들의 공통된 전략이었다. 이것이 과잉투자-과잉시설-과잉생
산으로 이어지면서 경영수지를 악화시킨 또 하나의 주된 요인이다.(“1990년대의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 장상환–주)
그런데도 이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정경유착으로, 재벌의 경제 지배력(支配力)
강화로써 난관을 타개하고자 몸부림쳐 왔다. 삼성이 정부를 움직여 기아를 먹어
주려고 한 것은 정경유착에 의한 해결 시도의 한 표본이다. 금융개혁을 외치면
서 재벌이 은행을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私)금고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다른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벌들의 무모한 탐욕은 민중에 의해 묵인되지 않고 있다. 삼
성의 기아 인수 시도는 당분간 어렵게 되었다. 마지 못해 정부는 경제학 교과서
에 없는 이름인 “국민기업”으로 남겨두겠다고 말하고 있다. 재벌의 은행소유는
초국적 자본의 반대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민회의’에 의해 좌초되고 있
다. ‘국민회의’는 초국적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동시에 민중의 저항을 뒷배경
으로 하고서 그러한 입장을 관철시키고 있다. 단지 민중의 저항만이라면 수구.
보수화를 향해 내닫고 있는 국민회의가 그러한 태도를 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
다. 이처럼 재벌들의 계산은 민중의 저항에 부딪치고 초국적 자본의 이해와 상
충함으로써 좌초하고 있다.
마침내 재벌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아주 협소해졌다. 그들은 초국적 자본
이 강요하는 조건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살아남는 길을 찾고 있다.
과연 어떤 길이 있을 것인가?
이 땅의 재벌들이 지난 반 세기 동안 그렇게 해 왔듯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노동자.민중에게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더 많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것뿐이다.
보라! 지난 11월 13일 전경련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거기에서 그들은 두 가
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하나는 금융실명제를 백지화하자는 것이요, 다른 하
나는 “임금 동결”과 “무쟁의 선언”을 전면적으로 관철시키자는 것이다. 전자는
검은 거래를 더 노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도 마
음놓고 하고, 재(財)테크도 마음놓고 하고, 비자금도 마음놓고 조성하고, 정경
유착도 좀 더 과감하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5-6공
수구세력들의 이해관계와 궤를 같이한다. 그들이 숨겨둔 검은 돈이라도 빌려서
부도를 막아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데서 나아가
칼날을 마구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들려오는 얘기로 재벌들이 노동자에게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다고 한다. 살벌
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민적 독점자본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란 이밖
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민중이 보기에는 가당치도 않고 느닷없다고 생각
들게 불쑥 금융실명제 백지화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언
론과 수구-보수정당들이 박자를 맞추어 이것을 대선의 쟁점으로 삼자고 떠들어
대고 있다. 차명(借名)으로 해서 얼마든지 실명(實名)을 밝히지 않고 거래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는 껍데기 금융실명제마저 없애버리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친(親)자본적인 계급.계층의 사람들에게조차 너무 심하다고 느껴질 이야기를 하
는 것을 보면–그래서 내년 대선 이후에 그렇게 하도록 하자고 목소리의 높이를
누그러뜨리기에 바쁜데–그들의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다.
총자본의 또하나의 구성 분파인 국가 부르조아(이른바 국가관료) 분파는 어떠
한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총자본 가운데서 총대변인 역을 맡아 하고 있는 정부
당국은 애써 한국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펼쳐 왔다.(재벌들은 아우성을 치는데
도..) 그러나 그 낙관론을 믿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언론 조작으로 눈과
귀를 막아왔던 일반 대중에게도 사태 전개는 불을 보듯 하다. 세계의 초국적 자
본들에게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이들은 초국적 자본에게 무언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듯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느닷없이 쓰레기통에
쳐녛어질 듯 했던 금융구조 개편안이 국회에 상정되었고, 통과직전에 있다. 이
런 가시적 조치라도 취해서 초국적 자본으로부터 “노력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
아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기구의 점유자들은 이런 조치만 가지고 현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들도 파국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영
철 금융연구원장이 42살밖에 안되는 제프리 삭스라는 미국 하바드 대학 교수에
게 훈수를 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삭스는 “재벌 중심의 경제 모델은 끝
나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 11.14일자–주) 그러면 왜 이런 조치를
취하는가? 금융개혁안도 실은 내년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실시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당장 어떤 개혁을 하자는 것은 아니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이 분명하다.
우선은 부실의 표본인 종합금융회사들–지난 시기 이른바 단자회사들이 이름
만 바꾼 것으로서 대부분 재벌들이 소유하면서 긴급자금을 조달하는 자금창구
역할을 해 왔는데–의 부도사태라도 막아보자는 취지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종
금사 부도는 이 해가 가기 전에 대대적으로 터져나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
게 노력하고 있으니 터지더라도 이번 대선은 넘겨 놓고 터지게 해 달라고 메시
지를 보내고 위해서는 삼성.현대가 돈을 대고 민정계가 조직을 챙기는 신한국당–조만간 이
름이 한나라당으로 바뀐다는데–이 정권을 잡고서, 그 정권 하에서 사태를 맞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대선 이전에 공황이 터져서는 지극히 곤란해
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들의 주문이 초국적 자본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인가? 이 역시 장담
하기 어렵다. 초국적 자본은 한국 자본주의의 패권분파에 대해 아주 싫어하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대북정책에서 클린턴 행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데 있어 이 양자의 이해관계는 기본적으로
같고, 양자의 갈등은 대북정책에서 상호배제적이기보다 상호보완적이라고 보아
진다. 오히려 한국의 패권 분파는 초국적 자본의 시장개방 요구와 구조 조정(즉
시장의 자유화) 요구에 충분히 순응하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국제시장에서 때때
로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격적인 과정을 계기로하여 굴복
시키고자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지배세력을 바꾸는 것까지 생각하는 것은 아
니지만 그들을 강하게 다. 김영삼 정권이 관료들을 통제하지 못했는데 민정계가 주도하는 이회창이 그
것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본다면 초국적 자본은 한국의 지배분파를 버리지는 않겠지만 손을 들
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클린턴이 이번 대선에서 종전과는 달리 이회창을 사전에
만나주지 않고 있다. 이것이 이 점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국내 정치에 깊숙히
관여해서 김대중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할 증거는 없다. 하지만 중립을 지키는
것만 가지고도 간접적으로는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재벌과 지배불럭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들은 일제히 이회창으로의 단일
화를 외치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수구.보수세력의 기수임을 자처하는 조선일보
가 가장 선두에 서고 있다(조선일보 11.16일자 시론 “‘삼국지’는 안된다” 참조
–주) 김대중과 DJP로 정권을 넘겨줘서야 되겠느냐, 내각제가 말이 되느냐고 떠
들고 있다. 내각제는 사실 그들이 바라던 바가 아닌가? 그들이 선전해 오던 것
이 아닌가? 언론은 선거에서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호도해 오지 않았던가? 그련
데 왜 이러는가?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자신들의 권력이 아니라 초국적
자본의 이익에 보다 밀착한 권력이 들어서게 되고 그렇게 될 때 자신들의 기득
권을 지켜나가는 것이 지금보다 불리해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들어선다고 보수를 표방하고 수구화로 내달려 온 그가 민족과 민중의 이해관계
를 대변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런데도 부르조아 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을 자신들의 객관성(허구적인)을 과시하는 징표로 삼아 온 언론이 안
면몰수하고 반(反)DJP로 나서는 것은 그러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처럼 총자본은 민간 분파이든 국가관료 분파든 앞가림을 못하고 있다. 어떻
게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하나의 역설
이 진행되고 있다. 초국적 자본이 한국의 개혁에 대한 기수로 나서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개혁”을 외치고 있다. 정경유착을, 부패관행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은행과 재벌의 결탁관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은행이 자금을 재벌에게만 배분하고 중소기업에게는 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자신만만하게 외치고 있다. 이것들은 한국의 지배블럭의 아킬레스의 건(腱)이므로! 민중이 절실히 바라고 또 요구해
온 것이으로! 이 위에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그림인 신자유주의 질서를 부과하려
하고 있다.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과 이윤추구의 완전한 자유화라는 질서를!
한국의 정부 당국은 몸부림치고 있다. “국제 통화 기금(IMF)로부터 자금 지원
을 받게 되면 그들이 강요하는 구조 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은 곤란하
다”고 말하고 있다. 갑자기 지배블럭이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등장하고 있고 초
국적 자본은 “개혁주의의 탈”을 쓰고 등장하고 있다. 그 민족과 민중의 편인가? “아무도 아니다”가 우리의 답이다. 국제 통화 기금
(IMF)의 구조 조정 강제는 거부되어야 하고, 개혁은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그 내용과 방향이다. 국제 통화 기금(IMF)의 요구 아니면 누가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노동자.민중의 요구인가, 천민 독점자본의 요구인가? 개혁이
필요하다면 그 개혁은 시장 개방과 자본 활동의 자유화가 그 골자인가, 아니면
노동자.민중 자주적 사회운동의 자유와 이를 바탕으로 사회복지를 보장하는 “민
주적 계획”을 수립.집행하는 것이 그 골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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