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지금은 세계화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기이다.
– 걷잡을 수 없이 파급되는 아시아 금융위기
필립 S. 골럽(Phillip S. Golub)
<주간정세동향 편집자주>
이 글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1998년 1월호에 실린 것으로 한국 및 동아
시아 금융공황에 관한 글입니다. 작년 연말쯤 작성., 발표되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간 시기가 지난 것이긴 하지만 해외에서는 한국의
공황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
여 번역.전재합니다.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편집자주>
지난 12월 18일 한국에서는 새 대통령으로 김대중씨가 선출되었다. 그러
나 그는 내년 2월 말까지는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 나
라 법률에 그와 같이 되어 있다. 그 때까지 한국은 파산의 위협을 받는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한편, 인도네시아와 태국도 파산의 위협에 직
면해 있다. 그러나 시세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거대 금융기관들
이 이 나라들이 발행한 채권(債券) 가운데 싸구려 채권들에 대해서 채무
부담을 경감시켜 주고 있다.
한편 일본의 은행체계는 지금 위협에 처해 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새로운 충격 요법이 동아시아 지역 나라 모두에서 사회변혁을 촉발할 위
험을 보이고 있다. 금융 세계화에 의해 촉발되는 전 지구적 소용돌이를
야기할 잠재요인들이 점점 더 많이 축적되어 가고 있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세계화란 다름 아니라 금융의 고도화이며 이렇게 고도화된 금융의 세계
화이다. 이 세계화가 사상 최대의 파국을 향해 길을 닦아가는 사람들, 바로 그처럼 파괴적인 사람들
(소지 소로스 같은: 역주)이 극도로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주1) 이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는 그 책에서 1930년대의 대공
황과 그 공황이 빚어낸 비극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1920년대에 환상이 만연했
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환기시키고 있다. 즉 1920년대 당시에 증권시장
에는 투기가 범람했으며, 금융자산들의 가치는 부풀려졌다. 금융자산들은 정신
차릴 수 없이 빠르게 그 가치가 늘어났었다.
위에서 인용한 갤브레이스의 이야기가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만이겠는가? 그
이야기는 근자에 금융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만연되고 있는 환상들이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는 데도 꼭 들어맞지 않겠는가? “공산권이 붕
괴된 이후 자유주의 이념이 개발도상국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사태 전개
로 1990년대는 19세기 말 이래 세계 자본주의 역사상 두 번째로 큰 번영의 시기
가 될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전망했다.*주2) 그러나 실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
가? 한 금융위기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성장 전망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80년대 초부터 “보수주의 혁명”을 추진해 왔다. 금융의 세계화
는 그 보수주의 혁명이 낳은 산물이다. 그리고 이 금융의 세계화는 금융 부분을
자율화했다. 그리고 이렇게 자율화된 금융 부문이 실물경제 부문을 자신의 논리
에 따르도록 복종시켰다. 이렇게 하여 화폐적 신호의 왕국과 그 화폐적 신호의
왕국이 대변하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실물경제의 현실은 상호 경제와 실물경제는 대개 다소간 괴리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렇게 심하게 괴리
된 적은 근래의 역사에서 –1920년대를 포함해서 보더라도–전례가 없던 일이
다. 1970년대 이래 자본의 국제적 이동은 그 규모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팽창해
왔다. 그런데 이런 팽창은 그에 상응하는 규모의 상품(재화와 서비스)의 실물적
거래액의 증가를 동반하는 것이 아니었다.*주3)(상품 대금의 결제나 생산적 투
자 자금으로서가 아니라 증권과 외환에 대한 투자 즉 투기 목적으로 자본이 흘
러다니고 있는 것이다: 역주)
국가는 공동선을 위하여 사회관계에서 폭력 행사를 규제하는 것을 책임지는데
오늘날의 국가는 자신의 주요한 책임인 이 규제를 포기하고 있다.(그리하여 용
역깡패같은 사적 폭력이 범람하고 있다: 역주) 국가는 또 자신의 주권이 심각하
게 손상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으로써 국가는 사회, 경제, 정
치의 진보를 개별적이고 특수하며 사적인 이해관계가 마음내키는 대로 휘두르는
우연성에 종속시켰다.(진보와 발전을 위한 국가적인 계획이 사라지고 있으며 나
라와 사회의 운영이 독점자본의 무모한 동기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말한다:
역주) 그리하여 민주주의적인 공간을 심하게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국제체제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들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렇게 해서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금융이라는 우주는 신자유주의 이론
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자율규제가 그 특징으로 되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정반대로 금융 우주는 화폐의 무정부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처
럼 혼돈스러운 우주 안에서 진행되는 세계화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커다란 위
험을 야기했다. 그리고 전염병 어휘집과 자연재해 어휘집에 신세를 지게 만들었
다. 이렇게 해서 빌려온 말들이 “전율” “태풍” “해일” 따위이다. 이 자연현상에
관한 어휘들이 사회현상인, 금융위기가 일으키는 연쇄반응을 묘사하기 위해 차
용되고 있다. 이런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뜻밖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럴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투기적인 자본이 대규모적으로 철수함에 따라 진짜 금융지진이 일어나고 있
다. 이 지진은 1982년 이래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실히 가장 큰 지진이다.
1982년이라면 중남미 나라들에서 외채위기가 발생했던 때이다. 그 당시 멕시코
를 비롯한 라틴 아메라카 나라들은 자신들의 외채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지불유
예(모라토리움)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이번은 그 때와
비교되지 않는다. 이번 금융위기는 그 범위가 전 세계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이번 사태를 “아시아” 금융위기라고들 말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사람들이 이번 위기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국
한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 표현은 더 이상 적절한 것이
될 수 없다.
이번 공황은 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충격의 물결이 이웃나라들
을 덮쳤다. 또 이 물결의 강도는 계속 높아져 왔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10월
에 들면서 이 거센 파도에 맥없이 침몰되었다. 잠시 후 세계 11번째인 한국도
이 해일에 휩쓸려 침몰했다. 또 브라질, 러시아와 같은 먼 변방의 금융시장들에
까지 이 파도가 덮쳤다. 이 해일은 여차하면 방향을 돌려 세계 두 번째의 경제
대국이면서 나아가 지구촌에서 으뜸가는 채권국가인 일본을 향해 쇄도해갈 것이
다. ‘카오스'(혼돈) 이론(프리고진느가 제창한 철학이론이다. 작은 나비 한 마
리의 움직임이 세계적인 격변을 가져오게 된다는 이론을 펼치고 있다: 역주)에
서 나비가 그러한 것처럼 태국은 계속 증폭되어 갈 이번 대재앙에 있어서 표면
에 드러난 원인이었을 뿐이다.
위기를 관리하는 전통적인 기술들(중앙은행의 개입, 과세 징수의 자동적인 정
지 등)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폭풍에 휘말려 들어간 나라들은 모두
자국 통화의 난폭한 평가절하를 겪었다. 그리고 증권시장의 급격한 위축도 겪었
다. 그리고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및 한국은 자신들의 은행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구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국
제통화기금의 무자비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되었다. 그 결과
는 필연적으로 경기후퇴로 귀착될 것이다.
하지만 1994년에서 1995년 사이에 있었던 멕시코 금융공황의 경우와는 달리
국제통화기금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금융협약(약속)은*주4) 밀어닥쳐 오는 폭풍우
를 막지 못했으며 누그러뜨리지조차 못했다. 한국의 금융위기는 국제통화기금이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프로그램(구조조정 프로그램의 반대급부로: 역주)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12월에 더욱 격화되었을 뿐이다. 작년 12월 한국에
서는 민간 부문의 일련의 파산에 따라 촉발된 이례적으로 격렬한 새 투기 파동
하나가 터져 나왔다. 이 파동은 금융시장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주5) 더구나
금융시장은 김대중씨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될까 봐 불안해 하고 있었다. 한국은
파산 일보 직전에 있었다.
요컨대 국제통화기금이 보증을 서고 임창렬 재경원 장관이 한국의 국제적 약
속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언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투기를 동반한 위기가 촉발되
어 디플레이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다. 이 디플레이션 소용돌이는 국제통화기
금이 강요한 긴축에 의하여 더욱 악화되었다. 국제통화기금의 긴축 강요는 신용
을 격심하게 감축시키고 있는 것이다.*주6) 한국의 은행체계는 국제적인 은행간
금융시장에서 사실상 거래를 금지당할 만큼 높은 위험 할증금을 지불하도록 강
요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초과잉으로 부채를 지고 있는 기업체들에게 더 이상
유동성을 공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기업체들은 지금 유동성이 절대적
으로 필요하다. 이리하여 12월 중순에는 단기 신용의 이자가 25%에 달했다. 이
이자율은 16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충분한 자기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
는 기업들은 파산의 궁지에 몰려 있다. 그럼으로써 은행들은 회수불능 채권(부
실채권) 규모를 더욱 키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굴복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제통화기금은 구제금융 지원을 제공함에 있어서 구조조
정 프로그램의 이행을 조건부로 했다. 그런데 이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신용창출
을 꽉 조였다. 그것도 신용창출이 매우 절실하게 필요한 바로 그러한 시기에 그
렇게 했다. 그럼으로써 국제통화기금은 디플레이션을 증폭시켰다. 한국 정부는
두 가지 외국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경제적 및 사회적 후과가 어떤 것이
되건 간에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 복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투기 열병이
더욱 가속화될 위험을 무릅쓰고 은행권의 불량 채권을 정부가 사줌으로써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주7)
만약 한국 정부가 은행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거절한다면 은행들은 필시 대외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사태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인 은행
간 자금시장에 통제불가능한 연쇄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12월 15일부터 연말 사
이에 만기도래하는 단기 외채는 140억∼150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1998년에
만기도래하는 단기 외채는 최소한 천억 달러가 될 것이다.
한국과 동남아에 금융공황이 오면서 다음 차례로 일본의 금융시스템이 이 공
황에 말려들어갈 위험이 시시각각 커져가고 있다. 한국에 대한 최대의 물주인
일본은(243억 달러를 한국에 빌려주고 있다) 이미 동남아시아 금융공황에 의해
서, 또 일본 자신의 내부 사정에 의한 은행들의 실패로 인해서 매우 취약해져
있다.*주8) 이 공황에 대해 다소간 주눅이 들어 있는 <파이낸셜 타임즈> 지는
작년 11월 11일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신흥공업국들의 은행들은 위기
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불안이 심화되면 일본의 은행들도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제: 필자 첨가)금융체계에 미치는 결과는 매
우 심각할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은행간 자금시장에서 커다란 문제들–한
국의 금융위기로부터 비롯되어 파급되고 있는–이 일어나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전통적인 우애에 입각하여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날 혀 믿을 바가 못된다. 작년 8월 국제통화기금의 총재인 미쉘 캉드쉬(Michel
Camdessus)는 “(동남아시아: 필자 첨가) 나라들은 전염병에 대비하는 전략을 수
립할 능력이 있다”*주9)고 하면서 기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 연방준비제
도 이사회 의장인 알렌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작년 10월 24일 세계경제의
장래에 대한 공개 연설을 했는데 그 연설에서 놀랍게도 현재 진행 중에 있는 경
제위기에 대해 단 한 번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탁월한 발휘했다.(장미빛 얘기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역주) 이 일이 있은지 나흘 후 미
재무부 장관인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은 동아시아 사태에 대해 “아시아 나
라들의 경제는 그 기초가 아직 건강하다”는 주장을 상투적으로 되풀이했다. 국
제통화기금은 나아가 1997년도 연차보고서에서 “한국의 거시경제 성적은 인상적
이다”라고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한국의: 필자 첨가) 재정상태는 부러워할
만하다”며 치하했다!
국제간의 대금지불이 불가능해지는 진짜 파국이 올지 모른다는 시나리오는 더
이상 저 먼 데 있지 않다. 일본의 은행시스템이 수축되면 결국 은행간 자금 교
류 장치가 취약해질 것이다. 또 세계의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채권 시장에서 이자율이 자동적으로 폭등하게 될 것이다.
만약에 일본이 국내의 자금 필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또 불황에 빠진 국내경
제를 재차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미국 금융시장으로부터 투자를 철수하는 사태가
일어날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 연방정부의 채권
(債券)을 3,200억 달러(총액의 8.5%) 가량 보유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은 80
년대 이래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채권자가 되어 있다. 이런 까닭으로 일본이 미
국에서 자본을 철수한다면 서구의 금융시장에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작은 위기
들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구조적 파탄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일본과 미국 사이에 무역분쟁이 다시금 긴장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
다. 이 긴장은 불가피하게 계속될 엔화의 평가절하 때문에 당분간 더욱 격화되
어 갈 것이다. 엔화가 평가절하되면 일본 수출품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주10) 워싱턴 당국은 작년 11월 중순 이래 일본 정부에 대해 무역수
지 흑자를 줄이고 국내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조치들을 적극 강구하라는 압력을
높여가고 있다. 97년 12월 12일에는 미 상무장관 윌리엄 댈리(William Daley)는
토오쿄오 당국에 대해 미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나게 되면 “정치적인
문제”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따. 미국은 일본이 “내수시장 성장요인에
의해 (불황에서: 필자 첨가) 탈출”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속셈
미국의 이같은 요구들은 아시아 나라들의 지금의 현실을 매우 경시하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이 지역 나라들의 수도들에는, 미국이 전략적인 이득을 이끌어내
기 위해서 또 무역과 금융상으로 일방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동아시아의 위
기를 이용하려 한다는 감정적인 여론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방콕을 필두로 쿠
알라룸푸르, 토오쿄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국은 1994
년 멕시코 위기 당시에는 파국을 막기 위해 민첩하게 행동했다. 그런데 아시아
위기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조금밖에 하지 않았다.
미국의 전략적 속셈을 가지고 있건 아니건, 클린턴 미 대통령 행정부는 일본
과 동아시아 사태에 대하여 그것이 야기하는 그야말로 거대한 파국의 금융적,
경제적 및 사회적 부담의 핵심적 몫을 동아시아 나라들에게 감당시키려고 하고
있다. 클린턴은 작년 12월 12일 신고립주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의회에 맞서
기를 싫어해서 자신의 영원한 우방인 한국이 간청한 비상금 지원 보따리를 풀어
놓기를 거절했다. 미 의회는 동아시아 나라들과 일본에 대해 그들의 무역수지
흑자를 감축시키도록 교사하기 위해서 무역 제재를 부과하려는 의향마저 내보이
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보복적 성격을 갖는 조치들은 틀림없이 “태평양의 동반
자” 관계에 조종(弔鐘)을 울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설사 이와 같은 극단–1930년 6월 대외 무역에 관한 스무트-홀리
(Smoot-Hawley)의 보호무역주의 법(이 법은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이 초래한 극단적인 결과들과 동일한 결과들을 낳을 수도 있는–까지 가
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과 아시아 나라들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는 중이
다.
그런데 금융 디플레이션은 가까운 몇 달 안에 실물경제에 사람들이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하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시아 나라들은 자신들의 근래
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맞기 직전에 있다. 실업이 폭증할 것이
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실업률은 다가오는 열 두 달 사이에 세배가 되어 9%에
도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중의 분노가 끓어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 분노는
반(反)서구적인 민족주의로 흘러갈 것이다. 이러한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국제통화기금의 긴축 프로그램에 대한 항의가 터져나오기 시작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민중이 정치화되고 있다. 이러한 민중의 정치화는 세계화의 전환기적인 획을 그을 것이다.*주11) 세계화는 사람들이 자유주의 도그마와 규
범에 예외없이 복종하는 데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하지만 세계화는 그와 동시
에 정치적인 협력의 모델에도 좌우된다. 그런데 이 정치적 협력 모델이 지금 붕
괴하기 시작했다. 세계가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러한 상황이 안고 있는 위험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역사가인 찰스 킨들버그(Charles Kindleberger)가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1929
년의 대파국과 그것에 뒤따른 1930년대의 대불황이 가르쳐 주는 핵심적인 교훈
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1930년대의 대불황과 이것이 초래한 비극은
어쩌면 모면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준 측
에서 빚을 가장 많이 지고 있는 지역측에게 도움을 베풀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
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이렇게 해야만 경기순환에 대한 상쇄작용이 될 수 있
다. 그리고 돈을 빌려준 측은 국제간의 지불체계가 통합성과 현금 유동성을 유
지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과 서구는 이러한 이러한
교훈에 반(反)하는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다. 현실로 다가온 이 위기에 대한 서
구, 특히 워싱턴 당국의 반응은 이 교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기미를 조금도 보
여주지 않고 있다.
□ 주 ———-
1)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경제」(The World Economy
Since the Wars), 맨더린(Manderin), 런던, 1995.
2) 데이비드 알(David Hale), 「러시아 혁명 이후의 세계경제」(The World
Economy After the Russian Revolution) 또는 「1990년대는 어째서 19세기 이
래 세계 자본주의의 두번째 대번영기가 될 수 있는가」(Why the 1990s Could
Be the Second Great Age of Grobal Capitalism Since 19th Century), 캠퍼파
이낸셜 컴퍼니(Kemper Financial Company), 시카고, 1991.
3) 국제 외환시장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금액은 70년대 초만 해도 18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조 5천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 금액의 3%만 하면 재화
와 서비스의 실물거래 금액과 그 크기가 버금간다.
4)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각각 230억 달러와 170억 달러를 제공한 국제통화기금
은 12월 4일 한국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자체의 지원금 210억 달러를 포
함하여 총 54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국제통화기
금과 미국 재무부는 1995년에 멕시코에 대해 500억 달러를 제공한 바 있다.
5) 1997년 12월 23일, 한국의 통화인 원은 달러 대비 가치가 역사상 최저로 떨
어졌다. 1달러를 사기 위해 2,000원을 주어야 했다.(1997년 7월에는 1달러에
890원이었음에 비해서 엄청나게 떨어진 것이다. 97년 1월 1일에서 12월 23일
사이에 주식 가격은 평균 75%가 하락했다.
6)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인플레이션율을 5% 수준에 묶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
다. 원화가 대폭 평가절하되어 수입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같이 강요한 것이다!
7) 한국 정부는 12월 12일 은행체계에 유동성(66억 달러의)을 주입하고자 뒤늦
게 이런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또 여러 상업은행(종금사)들의 자본금을 보충
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또 파산 직전에 있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인수했
다.
8) 니혼 게이자이 신문 1997년 12월 8일자에 따르면 일본 금융계가 행한 대출
가운데 받아내기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부실채권은 6,12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 재무성은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부실채권 총액은 그렇게 많
지 않고 1,680억 달러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9) 1997년 8월 23일자 르 몽드 지와의 대담.
10) 엔 화의 가치는 1997년 말에 무너졌다. 달러 대비한 엔 화 가치의 비율은 5
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1달러당 130엔으로).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는 1997년 10월에 3배로 늘어났다. 반면 한국, 싱가포르, 대만 및 홍콩과
의 교역에서 생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 9월 중에 두배로 늘어났다.
11) 경쟁적인 평가절하는 조만간 중국으로 옮겨붙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지난 10년간 연안 지역의 수출과 노동력에 대한 초과착취에 전적으로 힘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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