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록]
신자유주의 체제와 개발도상국의 발전 : 동아시아 모델의 종말?*
제임스 크로티, 제랄드 에프스타인 및 패트리샤 켈리**
* 이 글은 필자들이 1997년 8월 13일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가 주최한 「세
계화, 탈(脫)규제화, 그리고 그 결과들」이라는 주제의 ‘제5차 서울경제
학 저널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다국
적 기업과 자본 이동”을 전면 개작한 글 중의 일부이다. 필자들은 97년
하반기에 격화된 아시아 위기를 겪은 후 98년 1월 중순경 원래의 논문을
“다국적 기업, 자본 이동,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제목으로 전면
개작하여 발표하였다. 여기서는 이 개작된 논문 중에서 아시아 위기 및
한국 사태에 대한 분석이 담겨있는 부분만을 번역.전재한다.
** 제임스 크로티(James Crotty)와 제랄드 에프스타인(Gerald Epstein)은
미국 매사추세츠(Massachusetts)대학 경제학 교수이고, 패트리샤 켈리
(Patricia Kelly)는 퀴니펙(Quinnipeac)대학의 경제학 교수이다.
“국가제도 문제”라는 제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체
제가 개별국가들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은 각 나라에 고유하고 독특한 제도와 관
례들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다수 민중을 위해 최선의 경
제적 진보를 성취하였던 그러한 나라들은 또한 “워싱턴 여론”(초국적 자본의 이
해관계를 대변하는 미국의 요구와 지시를 말한다: 역주)에 담겨있는 원칙들(신
자유주의적 원리들: 역주)을 일관되게 거부했던 나라들이다. 각 나라에 고유한
제도들의 일부는 임금 정체, 불평등, 사회적 안전망의 침식 그리고 저(低)성장
등을 초래하는 범지구적(global) 세력들로부터 민중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였
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압력은 그러한 제도들을 어디에서나 침식하고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이러한 주장들 중의 마지막 주장―신자유주의의 압력이 민
중의 이해관계를 보호하였던 국가제도들을 침식하고 있다는―이 개발도상국들에
게 적용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동아시아의 역사를 검토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동아시아 모델을 파괴하기 위해 강요한 국내 및 국제 금
융시장에 대한 탈규제가 아시아 위기를 초래했다
지난 30년 동안 발전에 성공한 사례의 대부분은 동아시아에 있다. 실제로 일
본, 한국, 대만, 중국 및 기타 나라들의 최근 수십년 간에 걸친 훌륭한 경제적
성취는, 특히 다른 개도국 나라들 대부분의 저성장 및 높은 불평등과 대비되어,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또한 경제발전의 “동아시아
모델”에 대한 감탄을 확산시켰다. 물론 이러한 나라들의 뛰어난 경제적 성취를
인정하는 것이 그들의 정치.경제의 모든 측면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예컨대, 이 나라들 대부분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발전은 심각하게 억압당하고
있다. 보다 높은 임금이나 혹은 보다 좋은 노동조건들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자
들의 조직화 시도는 때때로 야만적인 탄압에 직면하고 있다. 또 재계와 정치권
의 부정부패는 진귀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십년 동안에 일
본 및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서 커다란 경제적 진보가 이루어졌고 경제번영이 폭
넓게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될 수 없다.
비록 동아시아 모델이 반(反)-신자유주의적이기는 하지만, 관련된 나라들은
다양한 정도로 그들 자신을 국제시장에 통합시켜 왔다(비록 한국 및 일본과 같
은 몇 나라들은 외국 다국적 기업들과 그들의 국내 직접투자에 의한 역할들을
의식적으로 최소화시켜 왔지만). 수출-주도 성장이 경제자립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적어도 최근까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자유시장의 명령.지시에 따라서가 아니라 다소간 그들 자신의 조건들에 입
각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자립경제를 추구했다.
서구의 대중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동아시아 모델은 단일하지 않다. 즉 아시
아의 “기적” 나라들 각각은 서로 다른 발전 경로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 나라
들은 한가지는 서로 공유했다. 즉 이 나라들 가운데 어떤 나라도 자신의 미래의
발전 전망을 탈규제된 시장시스템의 변덕스러움에 맡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
느 나라에 있어서나 발전은 여러 형태의 국가-주도의 산업정책에 의해지도되어
왔다. 그리고 국가-주도의 산업정책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활용하여 발전을 지
도하였다. 즉 신용할당, 규제되고 차별적인 이자율,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은행,
우대되고 특권이 부여되는 산업 및 기술들, 투자계획의 조정, 노동시장의 규제,
교육 및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높은 국가지출, 관리무역, 나라를 유.출입하는
화폐자본의 이동에 대한 통제, 해외 직접투자의 유.출입에 대한 규제 등등이 그
것이다.
이것은 그 나라들의 높은 성장의 핵심 요인 혹은 원인이 정부계획이었다는 것
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민간부문의 혁신적인 제도와 관행들―예컨
대 일본기업의 노동정책, 일본의 계열(系列, Keiretsu; 일본의 계열은 일본식
기업복합체로서 계열사간 주식을 상호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재벌과
유사하다. 그러나 극소수의 대주주가 “폐쇄적”, “가족적”으로 결속하여 소유.지
배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재벌과 구별된다. 따라서 계열은 오너에 의해 선단
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관련 각 기업은 소유.경영상으로 서로 얽혀 있으나 일
정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일본도 재벌형태를 취하
고 있었으나 패전 후 미국에 의해 재벌은 해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의 발발로 인해 완전해체되지 못하고 ‘계열’의 형태로 존속되었다: 역주)과 한
국의 재벌(재벌은 가장 극단적으로 “독점적”인 형태의 기업복합체이다. 극소수
의 대주주가 “가족적”으로 결속하여 배타적으로 소유.지배하고, 또 종적.횡적인
주식 상호보유에 의해 계열회사들을 일체화함으로써 기업복합체를 선단식으로
경영하는 것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역주)이라는 독특한 산업구조, 긴밀한 은
행-기업 관계, 그리고 높은 저축율 등―이 역시 중심적으로 중요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 주식회사”와 “한국 주식회사”라는 명칭을 얻을 정도로
궁극적인 통제권은 국가가 가지면서 국가와 민간요소들을 매우 긴밀하게 통합하
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원리들보다 의식적인 국가-주도의 산
업정책들을 채택했기 때문에, 아시아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민총생산(GDP) 및
자본 당 국민총생산(GDP)의 높은 성장률을 경험한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만약
아시아의 성장률이 상당한 기간 동안 상당한 정도로 낮아지게 된다면, 이 논문
에서 우리가 강조해 온 ‘총수요의 불충분한 증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심각하
게 악화될 것이다.
동아시아 모델들은 모두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발전하였고 적응해 왔다.
다시 말해, 수십년 동안 성장과 변화를 관통하여 내내 효율적인 특정한 국가적
정치-경제 구조는 있을 수 없다. 특정한 정책과 프로그램들의 성공 자체가 바로
상당한 정도의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이상의 성장이나 분배적 평등에
대한 장애물을 창출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과 한국에서 실질임금의 상승은 국내기업들로 하여금 부가가치가
낮은 상품들의 생산을 국외로 이전할 필요가 있게 만들었다. 또 미국이 자동차
에 대해 보다 높은 무역관세를 부과하고 보다 낮은 할당량을 설정하겠다고 위협
하자, 이러한 위협은 일본기업들로 하여금 미국 현지에 직접투자하는 것에 보다
역점을 두게 하였고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에 보다 적게 주력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일본 금융기관들의 거대한 성장은 금융자본의 이동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완화시키는 내부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더구나 중간계층과 노동자계급은, 그 학력이 높아지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보
다 강하게 주장하게 되면서, 민주적인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싸웠다. 다른 한편,
보다 더 강력해진 노동자계급 운동은 국민소득에서 보다 큰 분배 몫을 요구하였
다. 그래서 이러한 다양한 이유들 때문에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아시아 국가들에 있어서 국가 및 민간 부문 모두의 관행들을 상당히
많이 변경시킬 필요가 있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모델”의 구조가 어떻게 조정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들이 각 나라에서 벌어졌다. 변화에 대한 제안의 대
부분은 어느 정도의 탈(脫)규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다양한 계급.계층의 구성과 자각된 이해관계들은 또한 시간의 경과에 따
라 변화.발전하였다. 유력한 국내 금융 및 산업 자본들과 부유하고 정치적 영향
력을 가진 족벌들―이들은 국가-주도의 산업정책을 통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
유해졌는데―은 이제 상당한 정도의 탈규제―특히 국내 및 국제 금융시장의―가
국가-통제를 개정하거나 개혁하는 것보다 그들의 개별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에
더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밀어붙였던 변화들은 이치에 맞거나 혹은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모델이 아니었다. 또 완벽하게 신자유주의적인 종
합정책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계속 부
합하였던 그러한 종류의 국가규제들을 계속 고수하였다.
따라서 쟁점은 변화가 필요한가 아닌가의 여부가 아니라(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 모두가 동의했다), 어떤 형태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있었다.
다양한 발전 모델들을 상당한 정도로 개조할 필요성은 이처럼 내부적으로 제기
되었다. 다시 말해 발전모델의 개조는 외부의 압력이 없었더라도 이루어졌을 것
이다. 그러나 탈규제에 대한 내부의 이러한 압력은 범지구적 신자유주의 세력
들―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힘이 증대하였던―에 의해 강력하게 강화
되었다. 미국과 여타 선진 독점자본주의 강대국들, 주요 초국적 기업들 및 은행
들, 범지구적 금리생활자 이해집단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세계
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조직들은 모두 힘을 합쳐 아시아 국가들이 신자유주
의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했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이렇게 총
집결한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주도 산업정책의 모든 양상들과 그리고 그 변형들
모두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 모델은 불법화되어져야 했다. 그들의 입장
은 신자유주의가 이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발전모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
한 그들의 입장은 소련의 해체 후에 더욱 공세적으로 추구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앞의 5절에서의 마지막 주장을 상기시킨다. 즉 외부의 신자
유주의 세력들은 이용가능하고 다양한 새로운 발전 전략 및 구조들에 대한 알려
진 비용과 편익들을 상당한 정도로 변경시킴으로써 이러한 국가적 논쟁들의 결
과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 결과를 결정하기조차
하였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특정한 국내 계급.계층을
강화시켰고 여타 계급.계층들을 약화시켰다.
달리 말하면, 외부의 범지구적 세력들은 구조적 변화가 동아사아 모델의 전통
내에서의 변화.발전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고, 탈규제.자유화.민영화의 신자
유주의적 경로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자유시장 모델을
지지하였던 나라들에게 탈규제의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지원, 기
술 전문가들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과의 관계 개
선의 형태를 취해서 유리한 조건으로 국제 차입에 접근할 수 있는 물질적 인센
티브를 제공했다. 더 나아가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였다. 그뿐 아니라 매
우 중요한 것으로, 그 나라들의 수출품에 대해 선진 독점자본주의의 거대한 시
장에 접근하는 것을 보장해 주었다. 반면에, 동아시아 모델의 일반적 원리들을
계속 견지하는 것을 지지하였던 나라들에 대해서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정치적으
로 적대시하였고 경제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쉽게 말하면, 자유화가 하나의 실행가능한 전략으로 될 수 있었던 것
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이같은 불순한 구조―신자유주의 체제의 시장 및 기타 제
도들―때문이었다.
국내 엘리트들과 범지구적 세력들의 이러한 연합의 영향력이 1980년경부터
1997년 중반까지의 시기―우리가 아시아 논쟁들의 제1국면라고 부르는 시기―에
결정적이으로 작용하였음이 판명되었다. 국내 금융시장을 공식적으로 규제하였
고, 이자율을 설정하였으며, 신용할당을 신중하게 감독하였고, 투자정책을 조율
하였던 정부들은 이러한 기능들을 각 나라에 있어서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정도
로 민간부문으로 양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국경을 넘나드는 화폐자본의 이동
에 대해 통제하였던 정부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그러한 통제를 완화하기 시작했
다.
그래서 케인즈-민스키(Keynes-Minsky)의 과열된 투기적 호황-불황 순환
(speculative boom and bust cycle; 실물부문에 직접적으로 근거하기보다는 화
폐(금융)자본의 투기적 운동에 주도되어 발생하는 순환으로 붐(호황)과 불황의
두 국면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주)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추어졌
다. 즉 외국 “핫”머니((hot money, 초단기 투기자본: 역주)의 유입이 상당한 규
모에 이르게 되면 그리고 이르게 되었을 때, 순환의 불황국면은 외국 및 국내
투자가들에 의한 자금 회수에 의해 악화되기 쉬웠기 때문에, 그것은 과열된 것
이었다. 심지어 그러한 자금 회수에 의해 경기침체가 시작되어지기조차 하였다.
국내 및 국제 금융시장에서 공히 탈규제가 너무 많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개
혁들”의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결합이 될 수 있다. 국제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
고, 따라서 환율의 과도한 등락이 발생하면 심각한 불안정에 빠지게 되는 나라
들에게는 특히 치명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1980년대 말경에는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맹목적이지 않은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신용대부가 부추겼던 투기적 붐이 전 아시아 지역에서 나
타났다. 이러한 투기적 붐을 부추겼던 은행 및 기타 금융기관들 역시 투기적 도
취에 휩쓸리게 되었다. 이것이 일본과 한국 같은 나라들에 있어서의 주요한 변
화였다. 이 나라들은 이전에는 동아시아 모델의 전통에 따라 신용할당 과정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하였던 나라들이었다. 또한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가 완화된
틈을 활용하여 나라들, 은행들, 산업 및 상업 기업들, 그리고 부유한 개인들에
따라 상이한 속도로 해외차입을 증가시켰다.
이러한 과정은 1990년대에 가속화되었다. 해외자본의 아시아로의 유입은, 포
트폴리오 투자(기업의 경영권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직접투자와 달리 투자수익
만을 목적으로 주식.채권.상업어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
로 표현되는 이러한 자본이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극적으로 증가하였듯이, 극적
으로 증가하였다. 나라간의 이자율 수준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였던 것은 자본
이동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였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혹은 한국의 은행들은
매우 낮은 단기 이자율로 엔화를 혹은 적당하게 낮은 이자율로 달러화를 차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차입한 엔화나 달러화를 각국 통화로 바꾸어서 그것
을 국내 차입자들에게 훨씬 더 높은 이자율로 대부해 줄 수 있었다. 대기업들
역시 이러한 자금 원천으로부터 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었다.
미국 재무성의 장기채권에 투자하기 위해 엔화를 단기대부받는 것은 꽤 상식
적인 관행이 되었다. 투기적 붐의 낙관적 기대가 지속되는 한, 세계시장이 공급
할 수 있는 많은 돈에 대해 매우 높은 이자율조차 기꺼이 지불하려고 할 정도로
국내 차입자들은 항상 넘쳐났다. 그리고 최소한 마지막 몇 년 동안에는 아시아
사람들에게 대부해주고 싶어하는 국제 투자가들이 부족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기의 일본 “거품경제”의 붕괴는 수십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르
게 성장하는 경제들 중의 하나였던 나라에 수년 간의 경기침체를 가져 왔다. 일
본 “거품경제”의 이러한 붕괴가 이웃나라들에게 국내 금융에 대한 탈규제와 금
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의 극적인 약화가 초래할 위험을 경고했을 것으
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반대로, 아시아의 투기적 붐은 그 격렬함이 더
해졌다. 그리고 일본보다 훨씬 더 단기 해외차입에 크게 의존하였던 나라들에서
투기적 붐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러한 탈규제 과정과 그것의 동아시아 지역 및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은 국
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범지구적 투자가들 및 주류 경제학자들에 의해 통
상 건전하고 건실한 것으로 보증되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탈규제 과정을 세계
적 차원에서 배치의 효율성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아시아 지역의
보다 높은 장기 성장률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열렬함을 감안하면)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들은 1997년 중반에 대재난이 동아시아 지역을 강타하였던 바로 그 날까지 탈규
제의 전 과정에 대해 그들의 지지를 계속 보증하였다.
만약 범지구적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동아시아 경제들의 변형의 제1국면에서
동아시아 경제들의 변화.발전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해질 수 있다면, 제2국면―1997년 7월에 시작되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
경제”위기”―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아시아 경제의 미래를 직접적으로
지배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매우 완고한 신자유주의 비
평가들조차 미국, 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국제 자본들이 위기에 의해 매우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그러한 나라들에서 합법적인 국가기구들로부터 주요한 경
제 결정권을 강탈하려고 시도하였던 그 전광석화 같은 속도와 뻔뻔스러운 대담
무쌍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위기가 어떻게 끝나게 될지에 대해 예견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지만, 범지구적 세력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경제 제도와 관행들의
진행되고 있는 변형에 대해 거의 제국주의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결국 끝
나게 되리라는 것은 바로 지금 시점에서 불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과 맞바꾼 국내외 금융에 대한 탈규제가 한국의 외환위
기를 초래했다
한국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아마 아시아 사태의 핵심적인 사례이다. 그 하나
는 매우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나라들 중에서도 한국 경제가 가장 크게 위협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한국은 동아시아 “기적”들 중에서도 일본 다음
으로 가장 성공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에 한국에 집중적으로 해
결될 필요가 있는 경제문제들이 있었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한국의
경제성적은 이례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자본 당 실질 국민총생산(GDP)은 지난 20년 동안 매년 약 6%씩 성장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 실질 국민총생산(GDP) 성장률은 매년 평균 7%이상이었다. 인
플레이션이 낮았고 정부예산이 흑자였기 때문에, 실물부문 “기초”(fundamental)
에서의 유일한 골치거리는 1994년 이래의 상대적으로 큰 무역적자였다. 이 무역
적자는 핵심 산업들에서 상당한 규모의 과잉 생산능력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
였던 같은 기간 동안의 투자 붐과 연관된 것이었다.
균형있게 평가할 때, 한국경제는 꽤 양호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서도 기본적으로 건실한 것으로 보증
되었다. 예측가능한 미래에 한국에서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견하는 권
위있는 기관이나 관찰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반면에, 1980년대 초기에 시작되었던 한국의 국내 금융에 대한 탈규제 과정은
1990년대에 그 완성을 향하여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금융 탈규제의 범위는
단기 금융자본의 이동에까지 확대되었다. 그 결과 원화에 대한 투기를 통제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거세되었다. 1994년에서 1996년의 기간 동안 한국은 경
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 위해 폭발적인 자유화 조치들을 취했다. 암스
덴과 윤(Amsden and Yoon)에 따르면, “1995년에 남한은 미국과 파우스트적 거래
(‘파우스트적’이란 권력.지식.부 등을 얻기 위해 영혼을 파는 것을 상징한다.
여기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민족경제의 명줄인 금융에 대한 탈
규제.자유화를 전면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민족경제에 치명적 약점을 안게 된 것
을 말한다 : 역주)를 하였다. 존경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 되
는 대가로 한국은 국제 및 국내 모두의 금융기관들에 대한 거의 모든 통제들을
완화시킬 것에 동의했다”(뉴욕 타임스, 97. 11. 27일자).
금융 탈규제는 앞에서 언급하였던 케인즈-민스키 투기적 과정의 일부 요소들
을 촉진시켰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일본의 “거품”보다는 덜 파괴적이었지만,
일본과 유사한 “거품”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한국 주식의 시장가치는 1985년
의 국민총생산(GDP)의 9%로부터 1988년에는 국민총생산(GDP)의 57%로 비약하였
다(우-커밍스 Woo-Cummings, 1997, p. 90.). 1990년대 중반경에는 단기자본에
대한 통제를 탈규제화한 것의 효과가 명백하게 나타났다. 즉 1994년과 1996년
사이에 외국 은행들은 남한에 대한 대출을 50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 이상으
로 배 이상 중가시켰던 것이다(뉴욕 타임스, 97. 12. 22일자). 거의 모든 해외
차입은 민간부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의 대부분은 단기차입이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게, 한국에 대한 해외 신용대부는 한국기업들에
의해 국내 및 아시아 지역에 대한 산업팽창 자금으로 일차적으로 조달되었던 것
으로 보인다. 비록 상업은행들에 의해 다소 전통적인 투기활동으로 흘러들어간
해외 차입금의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1997년 후반경에 한국의 해외부채는 1,600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에서
60% 가까이가 단기외채였고, 대략 20%정도가 1998년 1/4분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것이었다(뉴욕 타임스, 97. 12. 30일자). 차입자들은 외채 만기가 도래하면 해
외 대부자들이 자동적으로 만기를 연장해 줄 것으로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불안정하고 위험해졌다. 과잉 생산능력과 이윤 저하가 수많은 한국
은행들의 대출의 질에서 문제를 야기하였다(한국 은행들에게 부실채권을 떠안게
만들었다: 역주). 많은 상업은행들은 또한 원리금 상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투기
적 대출금의 부담도 안게 되었다. 한국 기업들과 은행들이 그들의 해외 차입금
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은 다음 두 가지 사항에 달려 있었다. 한편으로 지역 통화
(원화)로 건실하게 수입을 계속 올리고, 다른 한편으로 지역 통화(원화)의 환율
이 평가절하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투기적 붐은 취약국면으로 변화.발전하게 되었다. 즉 다음과 같
은 일련의 사태전개에 의해서 쉽게 파열될 수 있는 국면으로 이행되었던 것이
다. 첫째, 국내 성장의 저하, 더욱이 수출시장의 상실, 혹은 이윤의 실현을 방
해하는 기타 다른 요인. 둘째, 주식 혹은 실물 자산의 가격하락. 셋째, 어떠한
이유에서건 단기 차입액에 대해 외국 은행들이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혹은 원
화 및 다른 아시아 통화들의 가치폭락. 그러나 이러한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국내 저축율이 매우 높은 나라의 안녕을 대량
의 단기자본의 유입, 따라서 악명높게 수시로 등락하는 세계적 금리생활자들(국
제 투기자본: 역주)의 변덕스러움에 의존하는 것이 가지는 총체적 무책임성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아시아 위기가 발발하였을 때 투자 자본은 아시아 시장과 아시아 통화로
부터 일반적으로 이탈하였다. 이제 외국 은행들은 만기 연장을 거부하였다. 실
물 및 금융 자산 가격은 아시아 지역 전반에 걸쳐 급락하였고, 환율은 자유낙하
로 폭락하였다. 환율을 유지하려고 헛되게 시도함으로써 외환 보유고를 소진한
후에 나라들은 공황상태를 중지시키려는 시도로 이자율을 올렸다. 그러자 이번
에는 자산가격의 최초의 하락이 (이제 이자율이 높아져서) 이자를 지불할 수 없
게 된 투자가들로 하여금 자산을 헐값으로 “강제”판매하도록 작용하였다.(예컨
대 주식가격의 폭락은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한 투자가들이 깡통계좌에
이르기 전에 신용대부금을 회수하려고 하는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의해 주식을
“강매”하게 만든다: 역주)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약자뿐만 아니라 강자도 역시 쓰러뜨렸다. 원화는 국제
통화기금(IMF)이 한국과 협약을 맺었던 12월 초 이전의 시기 동안 그 가치의 약
20%를 상실하였다. 달러화 혹은 엔화로 대규모 채무를 지고 있던 기업과 은행들
은 부도로 내몰렸다. 그리고 그러한 기업과 은행들의 달러화와 엔화에 대한 필
사적인 수요는 원화를 평가절하하도록 압박하였다. 위험도에 대한 급격한 상향
재평가(이것은 무디스나 S&P와 같은 국제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한국의 국가신인
도 및 국내 은행.기업들의 신용등급의 급격한 하향 재조정으로 나타났다: 역주)
에 따라 이자율은 다시 올랐다. 다른 한편, 거의 채무불이행(default) 상태에
내몰린 은행들은 중소기업들에 대한 신용대출을 연장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
다. 경제성장은 낮아졌다. 그리고 전후(戰後) 한국에서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실업은 11월의 2%로부터 12월에는 거의 3%로 중가하였다. 이와 같이 성장 저하,
이윤 하락, 실업 증가, 이자율 상승, 이자커버비율(interest coverage ratios;
채권의 이자지급에 대한 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채권투자에 도움을 주는
지표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안정성이 좋은 것이나, 이 비율은 원금상환 능력
을 고려하고 있지 않고 1년간의 영업성적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계속성이 없는
단점이 있다. 이 지표는 (발행인의 연간 납세후 경상수익 + 연간 이자지급 총
액) / 연간 이자지급 총액 으로 구한다: 역주)의 저하, 그리고 부도 증가라는
자동적으로 강화하는 순환(seif-reinforcing cycle)이 이제 잘 작동하였다.
세계가 놀라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대로, 외부의 신자유주의 세력
들의 강압에 의해 주요 부문에 도입되었던, 최근 몇년 간의 과도하고 불순한 의
도의 탈규제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단지 몇 주(週)만에 ‘경제기적’으로부터
‘경제 대재난’으로 추락시켰다!
뉴욕 타임스 지는 “남한이 산업 거인으로부터 산업 피구호민으로 변형
(transformation)”되었다고 지적했다(97. 11. 22일자). 지난 수년 간 신자유주
의 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 기적의 성공이 국가-주도의 산업정책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의 성공이 자유시장에 의해 이루어졌
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지금까지 그 존재를 부인해 왔던 바로
그 강력하지만 비효율적인 국가의 산업정책 때문에 아시아 위기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했다.
현 시점(1998년 1월 중순)에서, 미국-IMF의 한국에 대한 “구제”를 이끌었던
협상에 매우 깊이 관여하였던 사람들만이 그들이 수행하였던 그러한 방식을 그
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고안했는지를 알고 있다. 잘 알다시피, 국제통화기금
(IMF)이 미국과 일본의 협력 하에 총 25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에 달하는 신중
하게 시차별로 지급하는 외화대부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한 초기 협약은 12
월 첫 안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대부총액은 거의 600억 달러로 증가되었다(필자들이
정보를 잘못 입수한 것 같다. 국제통화기금이 12월 3일 협약을 발표할 때 대부
총액은 550억 달러였다. 그리고 곧바로 20억 달러가 추가되어 예정된 대부총액
은 570억 달러가 되었다: 역주).
한국 정부는 외국 은행들로부터의 단기 차입금으로 인해 한국의 기업들과 은
행들에 의한 대규모 채무불이행 사태가 초래할지도 모를 경제문제들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대부가 필요하다고 믿었음이 분명하다.
채무불이행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비정상적으로 뿌리깊은 것이었음이 틀림없
다. 왜냐하면,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의 전례없는 구속적인 조건들의 전례없
이 많은 요구사항들을 사실상 그 모두를 즉각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서구의 언론에서 한국의 “굴욕”으로 일반적으로 표현되었을 정도로 그렇게 심
각한 조건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왜 그렇게 빨리, 그리고 그렇게 완전하게 굴복
해야 했는지 하는 이유가 모든 관찰자들에게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로,
모든 채무는 한국의 민간부문들에 의해 빌려진 것이었다. 정부는 잘 정립된 신
자유주의 원리들에 따른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즉 한 민간 당사자가 다른 민
간 당사자와의 계약을 위반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일이 전혀 아니라는 입장이다.
둘째로, 대규모 채무불이행의 위험은 폭넓게 분담되어 있었다. 채무의 만기를
연장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실제로 한국에 손해를 입혔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
투자가들에 의해 보이코트당하게 될 수 있었다(그러한 보이코트는 경제위기가
끝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채무의 만기
연장 실패는 또한 유럽 및 미국 은행들에게도 상당한 정도의 손해를 입혔을 것
이다. 그리고 일본의 금융위기를 심각하게 악화시켰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
은 세계 금융시스템에 위기와 공황을 유발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양쪽 협상 당
사자들 중 한쪽만이 협상의 실패에 의해 위협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양쪽 당사
자 모두가 위협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이 채무가 공공채무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는 오히려 채무불이행을 공세적으로 위협
함으로써 자신의 교섭 지위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그들의 자본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상황에 직
면하게 되었을 때, 많은 외국 은행들은 채무불이행에 빠진 한국 은행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약점이 적은 은행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만기연장 협상을 하려고 했
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상환에 대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연장된 기간 동안
에 대한 지불보증―필요하다면 국가에 의한―과 함께 선언할 수가 충분히 있었
다.
넷째로, 회고컨대 최소한, 협상의 실패와 그에 따른 채무불이행 사태에 의해
초래되었을 수 있는 문제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개혁들”을 수행하는 것보다
한국의 경제번영과 독립성, 혹은 원화가치에 더 큰 손해를 입히지는 않았으리라
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치밀한 계획하에 경제위기를 이용하여 전례없는 폭력적 방식으로 한국
의 경제주권을 강탈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러한 협상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무부의 로버트 루빈 장관과 로렌스 서머스 부장관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과 같은 미국 관리들이 이 협상을 조율
하였음에 틀림없다. 가(假)협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가협약에 포
함되었던 것을 넘어서는 수많은 추가적인 요구들이 협약에 첨가될 때까지 며칠
동안 그 타결을 지연시켰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 및 부유한 투자가들의 이해관
계를 대변하는 미국 정부는 한국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에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의 지배를 강요하기 위해서 구조적 및 정책적 변화에 대한 희망
사항들을 고안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의 이러한 희망사항들에 대해 한국 정부가
동의하도록 강요하는 데 위기를 이용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만약 한국의
국내 이해집단의 일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의 주요 부분을 지
지한다면―실제로 일부 국내세력들은 지지했는데―그러한 지지는 미국이 외환위
기를 이용해 한국 정부에 자신의 요구를 강요하는 것을 훨씬 더 쉽게 만들 것이
다.
국제통화기금(IMF) 독재의 폭과 깊이는 언론에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언급
되었다. 미국의 압력 하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한국의 노
력에 대한 협력자로서가 아니라 군사력을 점령하는 데 보다 적절한 방식으로 행
동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동아시아 모델의 모든 잔존 요소들을 총체적으
로 파괴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대신해서 신자유주의적 제도와 관행
들―미국이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에 부과하려고 투쟁해 왔지만 단지 부분적으
로밖에 성공하지 못하였던 변형―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협상의 중심문제였던 외채문제가 한국 차입자들과 외국 대부자들에 의해 서로
합의에 이르렀을 때 구제의 모든 비용은 한국인들―기업, 은행, 정부, 노동자,
시민―이 부담하게 되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외국 은행들은 국제통화기
금(IMF)에 는 곧바로 그들 쪽으로 재순환되어 돌아갈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이었지 부득이한 것이 아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외국
은행들에게 연장된 기간 동안 부분적으로 상환하게 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었
다. 그리고 이렇게 할 경우에도 외국 은행들로서는 채무불이행이라는 자유시장
적 대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이제 국제통화기금(IMF) 협약의 중요한 항목들의 일부를 언론보도에서 발췌하
여 열거해 보자. 대부분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적법한 목표들 혹은 한국의 경
제상황을 호전시키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즉 다수의 항목들이 경제위기
를 악화시킬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일부는 미국과 기타 선진 독점자본주의 기
업들의 이해관계에 의한 요구사항들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에 대한 요구부터 살펴보자. 긴축 요구는 국제통화
기금(IMF)의 표준적인 처방이지만, 그것은 표준적인 증상을 가지지 않았던 나라
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의 원조를 받았던 라틴 아메리
카의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은 인플레이션이 낮았고, 국가예산이 흑자 상태에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정부지출의 감축, (역진적인) 조세의 증대, 그리
고 이자율의 대폭 인상 등을 고집했다. 실질이자율은 이미 높아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처음에 실질 국민총생산(GDP) 성장률이 1997년의 6%로부터 1998년의 3%
로 반감되어야 했다. 그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협약 하에서 한국경제가 악
화되었고, 이러한 경제의 악화는 1998년의 성장 목표를 1%로 재조정하게 만들었
다. 그러나 민간 연구소들은 이제 1998년에 국민총생산(GDP)이 감소(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3개월 회사채의 이자율은 1997년 11월에는 12%
였는데 1998년 1월 초에는 30%로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 협약의 다른 항목들이 긴축을 강화했다. 국제통화기금
(IMF)은 부실은행들이 매수.합병과 공공기금의 주입을 통해 존속되기보다는 폐
쇄되도록 요구했다. 은행의 대규모 강제폐쇄는 신용의 공급을 줄이고 결정적으
로 중요한 은행-고객 관계를 파괴시킬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국제통화기금
(IMF)은 또한 모든 은행들이 1998년 3월까지 8% 이상의 자기자본비율이라는 국
제결제은행(BIS) 기준을 충족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도 부실대출 손실금 등을
은행자산에서 100% 충당한 후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
했다. 1998년 1월 중순에 잠정 규정(손실금의 100%를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아
니라 △6대 시중은행은 대출손실금의 88%{여타 은행들은 은행별로 다르나 최저
83%}만을 △주식평가손실금은 50%까지만 반영하도록 한 은행감독원의 지침을 말
한다: 역주)에 따른 자기자본비율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한국의 은행들은 단
지 두 개뿐이고, 손실금을 100% 반영하는 기준 하에서 자기자본비율 8%를 충족
시킬 수 있는 은행은 하나도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이러한 요구에 따른 예측가능한 효과는 진행되고 있는
“신용 핍박”(credit crunch; 신용부족)의 악화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기
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은행들은 대부분의 대출금에 대한 만기 연장을 거부해야
했다. 중소기업들은 아무리 높은 이자율로도 대부받는 것이 거부되어졌다. 그래
서 중소기업의 부도율은 극적으로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부도는 이제 은행의 대
부성 유가증권(loan portfolios; 은행이 기업에 할인해 준 기업어음 등을 말한
다. 기업이 부도가 나면 기업어음은 부실채권으로 된다: 역주)을 더욱 더 잠식
하는 원인이 되었다. 또 은행들로 하여금 신용대출을 거부하도록 하는 더 큰 압
력으로도 작용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이전에 금융 상태가 건전하였
던 기업들조차 국제통화기금(IMF)의 이러한 재난을 가져오는 정책에 의해 부도
로 내몰리고 있다.
긴축적인 거시정책과 은행”개혁”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그 효과는 국내수요를
심각하게 제한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처음의 문제들은 수요를 더욱 감소시키는
“승수”(Multiplier) 과정이 작동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가
장 강력한 요구 가운데 하나는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시키는 것을 제한
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법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리해고 제한은 전통적
인 한국의 “평생”고용정책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협약에
따르면, 한국은 대량 정리해고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동시장 “유연성”을 증가
시켜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의 증가는 또한 재벌들이 지지하는 목표이기도 하
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저항이 지금까지 노동법 개정을 저지해 왔지만, 실업은
어쨌건 권고사직 등으로 실질적인 정리해고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부도 등으로 인한
실업도 폭증하였기 때문이다: 역주).
1998년 예상실업률은 이제 7%로 높게 설정되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실업이
라는 것을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고, 1995년까지 실업수당조차 지급한 적이 없었
으며, 실업자의 극소수만이 기껏해야 공공수당을 조금 받고 있는 한국에서는 가
공스러운 사태발전이다. 1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10명의 노동자들 가운데 4
명이 자신의 일자리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
었다. 이것은 소비성향을 크게 감소시킬 것이 확실한 사태전개이다. 그리고 국
제통화기금(IMF) 협약 이후에 원화는 30%만큼 추가적으로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
에, 물가는 폭등하고 있고 실질임금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승수효과가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투자 및 정부지출에 대한
최초의 제한이 부도 증가와 함께 작용하여 실업 증가와 실직에 대한 두려움, 소
비자 신용의 붕괴, 그리고 실질임금의 하락을 창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
들이 이제 소비수요의 급격한 저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 가운데 얼마 만큼
이 끝까지 이행될 것인지 혹은 한국의 노동자들, 기업가들, 그리고 정부의 관료
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 항목들에 대해 얼마만큼 저항할 것인
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약 국
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이 연장된 기간 동안 전적으로 이행된다면, 그
것은 대규모 긴축을 만들어낼 것이고, 한국의 (그리고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구
제하기보다는 금융위기를 증폭시킬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
다.
1997년 6월에 한국은 과잉 생산능력과 금융문제들을 안고 있었지만 상당히 건
실한 실물부문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골치아픈 상황이기는 했지만 결코
파국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초기의 아시아 위기는 한국의 금융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필요했던 것은 국내 혹은 특히 해외 부채를 증가시키지 않으
면서 적절한 성장과 적절한 이자율로 조정하는 기간이었다. 성장은 부채를 갚기
위해 필요로 하는 현금성 자금(cash-flow; 출했을 것이다. 즉 적절한 이자율은 기업의 생존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부채를
상환할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기침체 +
고(高)이자율 프로그램은 질병을 죽이도록 계산된 처방이 아니라 환자를 죽이도
록 계산된 처방이었다. 그리고 심각한 문제였던 것을 더 악화시켜 경제적 그리
고 아마 정치적 및 사회적 파국으로 만들도록 계산된 처방이었다.
미국-IMF의 구제 프로그램이 한국을 황폐화시키려는 것이었다는 것은 결코 비
밀이 아니었다. 비지니스 위크 이야기되는 약은 아시아를 더욱 병들게 만들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아
시아가 성장과 소비를 감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과 소비의 감축
은 소비자를 상처입게 하고, 임금 삭감을 조장하며, 부자보다는 빈자를 벌주는
것이다”고 주장했다(97. 12. 2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지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전 의장이고 세계은행의 현 수
석 경제학자인 조세프 스티글리츠가 “유명한 월스트리트의 경제학자들”과 함께
“국제통화기금(IMF)이 너무 가혹한 긴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크게 회
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98. 1. 8일자.). 스티글리츠는 “이 나라들을 심각한
경기침체로 몰아넣는 것을 원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들
을 심각한 경기침체로 몰아넣는 것이야말로 바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
로그램이 의도하였던 바였다. 그 기사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간의 관
계가 “긴장”되고 있음을 주목하였다.
다른 유명한 경제학자들도 스티글리츠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제프리 삭스(미
하버드대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을 공격하면서 그것을 한
국에 대한 “어리석은” 그리고 “분별 없는 처벌”이라고 불렀다. 그는 “국제통화
기금(IMF)이 지지한다고 보증하는 것은 파멸을 보증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 97. 11. 13일자). 그의 견해는 “아시아 지역은 무리한 예산 감
축, 신용 핍박, 그리고 은행의 긴급폐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시아 지역은
해외차입의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안정적이거나 혹은 오히려 약간 팽창적인 통
화 및 재정 정책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뉴욕 타임스, 97. 11. 13일자).
삭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외국 채권자들이 “상처를 입지 않고 전장(戰場)을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돌이켜 보
면, 만약 국제통화기금(IMF)이 채무자들보다도 채권자들을 처벌했다면 한국의
원화가치가 훨씬 더 폭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뉴욕
타임스, 98. 1. 8일자).
폴 크루그만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보다는 채무불이행이 더 좋
았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즉 “남한이 해외채무 문제에 대해 모라토리엄(지불유
예)을 선언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뉴욕 타임스, 97.
12. 18일자).
그러나 미국-IMF의 구제 프로그램은 긴축과 은행”개혁” 이상의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구제 프로그램은 한국”모델”의 완전한 파괴
를 겨냥했다. 그리고 외국 다국적 기업, 은행들 및 금융 투자가들이 무제한적으
로 착취할 수 있도록 모든 한국시장들을 개방시킬 것을 목표로 했다. 국제통화
기금(IMF)은 정부가 중앙은행 정책에 대한 통제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
고 민간부문에 대한 신용할당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 행사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
다. 다시 말해 그들의 요구대로 하면, 신용할당은 사적 이윤에 대한 고려(이른
바 수익성을 말한다: 역주)에 의해서만 규제될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동아시아 모델의 초석인, 목표로 설정된 기업 및 산업들에
대해 신용대출을 지시하고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정부의 여력을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경험에 의하면, 독립적인 중앙은행들은 성장과 고용을 희생하면서 인플
레이션을 최소화시키도록 기획된 정책들을 추진한다(중앙은행의 이러한 정책은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책으로서 세계적 현상이다: 역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은 관리무역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즉
관세와 수출 보조금은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 이 조치는 한국의 대
기업들이 국내시장 지배 및 수출 생산을 보장받음으로써 ‘규모의 경제’에 의한
생산성 증가의 이점을 활용하는 것을 더 이상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국내시
장 지배 및 수출 생산의 보장은 한국기업들의 일부가 세계시장에서 선진 독점자
본주의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주요 경쟁자가 될 수 있도록 지원했던 관행이였다.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 및 은행을 매수.합병하는 데 대한 법적 제한들이 1998
년 초반까지 폐지될 예정이다. 외국인들의 적대적 매수.합병에 대한 금지조차
폐지될 예정이다. 이것은 선진 독점자본주의 다국적 은행 및 비금융 기업들에게
하나의 대승리를 의미한다(이들은 한국시장에 보다 깊숙히 침투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노력해 왔다). 그리고 법적 제한을 외국인의 적대적 매수.합병 기도를
저지하는 수단으로 기대해 왔던 한국기업들에게는 잠재적인 대타격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의 상업은행들에 대한 외국인 소유는 한국기업들에게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대기업들이 정상적인 시기에조차 부채비율이
높고, 은행-기업 관계가 국가 경제구조의 통합된 한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는 시
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러한 변
화들이 조금도 지체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미국과 국제통화
기금(IMF)의 목표가 한국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지배하는 것임을 웅
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설혹 백번 양보하여 한국 기업과 은행들에 대한 외국인 소유를 개방하는 것이
한국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위기의 한복
판에서 그렇게 개방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합리하다 할 것이다. 원화가치의 대폭
락과 주식시장의 붕괴를 감안하면, 1월 중순의 시점에서 미국 혹은 유럽 기업들
은 바로 6개월 전에 미국 혹은 유럽 통화로 들었을 비용의 약 30%로 한국 국내
기업들을 사들일 수 있게 되었다.
뉴욕 타임스 지는 “한국에서의 기업 처분세일”이라는 제하에서 “미국 및 여타
외국 기업들에 의한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인 매수.합병의 물결”을 예견했다(97.
12. 27일자). 원화가치 혹은 주식가격이 그 “균형”가치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즉 실제로 이들 원화가치나 주가가, 비록 가까운 미래는 아닐지
라도, 장차 상당한 정도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였다. 더구나 한국
대기업들은 달러화 혹은 엔화에 대한 필사적인 수요 때문에 그들 기업의 일부에
대한 터무니 없게 과소평가된 입찰가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있다.
한국의 우방이라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이 항목을
아마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외관상 터무니 없는 이러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대해 선진 독점자본주의의 범지구적 세력들의 물질적 자기이익 이외의
어떤 다른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고려해야 할 국제통화기금(IMF) 독재의 마지막 항목은 정부가 국경을 넘나드
는 금융자본의 이동에 대한 잔존하는 모든 제한들을 폐지하라는 요구이다. 이제
부터 외국인들은 내국인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한국 금융시장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에 의한 해외투자에 대한 모든 제한들도 폐지될 것이
다. 그러나 초단기 대부 및 투자에 대해서조차 자본 통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
은 한국과 아시아 여타 국가들을 매우 잘못된 정책방향으로 이끌 것으로 많은
관찰자들은 생각한다. 아시아 위기는 단기 국제자본의 이동에 대한 적절한 통제
의 부재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다. 대략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과도한 단기 신
용대부가 아시아로 유입되었고, 부동산과 금융증권에 대한 투기자금으로 조달되
었으며, 산업 생산능력에 대한 과잉투자 자금으로 조달되었다. 그래서 투기적
붐이 약화되었을 때, 모든 투기적 붐이 결국 그러하듯이, 그에 뒤따랐던 아시아
통화에 대한 대량 투매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도가 당사국 정부에 전혀 없었다
(중국은 예외이다. 즉 중국은 단기자본의 이동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다). 어려운 정도의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전환시켰던 것은 바로 이러한 통화
붕괴였다.
통화붕괴가 아시아 경제에 끼친 손실은 많은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단기자본의
이동에 대한 통제를 반대해 왔던 그들의 입장을 재고하게 만들었다.*주) 뉴욕
타임스 지는 미국경제협회(the American Economic Association)의 1월 회의에
참석했던 경제학자들과의 아시아 위기에 대한 방대한 인터뷰를 보도하였다. “남
한과 같이 어떤 한 나라를 갑자기 산업국가들(선진 독점자본주의 나라: 역주)에
대한 채무에 빠지게 만들 수 있는 단기차입을 제한하기 위한 규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공통된 주제가 등장하였다. 한국은 그러한 단기차입에 대한 제한들을 점
진적으로 폐지하였다는 점에 대해 비판받았다”(98. 1. 8일자).
*주) {{자본에 대한 통제를 지지하는 경제적 및 정치적 주장들에 대한 논의
에 관해서는 제임스 크로티 및 제럴드 에프스타인(1996)을 보시오.}}
그 기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경제학자인 스탠리 피셔조차 칠레의 단
기 해외차입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즉
피셔는 “칠레가 10년 이상 동안의 단기채무 위기를 벗어났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단기 해외차입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화폐의 이동
에 대한 모든 통제를 폐지할 것을 한국에 요구하였던 국제통화기금(IMF)의 일원
이었던 피셔는 미국경제협회(AEA)의 회의에서 “한국 및 태국 정부는 그들의 은
행들이 외화로 차입할 수 있는 상한선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국제통화기금(IMF)의 모순된 태도는 전례가 없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의 멕시코 페소화 위기 후에 내부적인 자본 통제에 대한 지지를 간단하게
철회하였다. 멕시코 위기가 끝났을 때 단지 신자유주의의 정통입장으로 복귀하
기 위해서 그렇게 지지를 철회했던 것이다.
아시아 위기의 “고통”은 신자유주의 체제 전반에 대한 정치적 반격을 불러일
으킬 것이다
현재의 초기 단계에서 아시아 위기로부터 일반적인 교훈을 도출하는 것은 위
험한 일이다. 그러나 몇 가지 결론들은 보증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로, 최
근의 아시아 사태는 단기자본에 대한 완전한 탈규제가 특히 소규모이거나 혹은
적정 규모의 경제에 대해서 재난을 가져오는 정책이라는 신념을 더욱 확신하게
해준다. 단기자본에 대한 탈규제는, 국내 금융에 대한 탈규제와 함께 작용하여,
범지구적 금리생활자들―그들은 도취와 공황의 발작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고통
을 받고 있다―의 불안정성에 의해 시작되거나 증폭되는 심각한 호황-불황 순환
(boom-bust cycle)에 그 나라 경제를 무방비로 노출시킨다. 그러한 호황-불황
순환이 안정적인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순환의 붕괴국면은,
매우 심각할 경우, 한 나라의 장기적 이해관계와 결코 부합할 수 없는 구조적
및 정책적 변화를 채택하도록 강요하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그 나라가 쉽게 공
략당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둘째로, 단기금융의 이동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경
제학자들은 또한 장기금융의 이동과 해외 직접투자는 그러한 제약으로부터 자유
스러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은 이러한 이들의 입장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고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해외 직접투자는, 만약 해외 직접투
자를 밑받침하는 제조건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본국 및 투자 유치국 모두의 민
중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우리는 주장해 왔다. 아시아에서 국제통화기금
(IMF), 미국,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종종
국내 경제엘리트들의 일부와 결탁하여, 위기를 이용하여 아시아 지역을 실물자
본의 이동에 대해 개방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 직접투자가 일자리
를 창출하고 임금을 인상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해주는 그러한 조건
들―적절한 총수요, 해외 직접투자에 대한 효과적인 국가 규제, 그리고 파괴적
이지 않은 경쟁―을 파괴할 것을 또한 강요하고 있다.
셋째로,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제 국가의 경제주권에 대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
민중의 기본권을 침식하고 있다. 오직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외
부세력들이 아시아 모든 나라들―권위주의 정부이든 민주적 정부이든 간에―에
걸쳐,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국가의 정권 당국으로부터 주요한 경제 결정권을
강탈하였다. 외부세력들은 범지구적 금리생활자들과 다국적 기업들이 더욱 부유
해지고 강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민중들이 경기침체, 실업, 임금 하락, 그
리고 공공보조금 감소 등의 고통을 겪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넷째로, 현재의 아시아 사태는 범지구적 세력들이 과연 비(非)-신자유주의적
민족경제 모델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
다. 아시아 사태가 향후 몇년 동안 변화.발전하면서 아마 “대안(代案)이 없다”
는 것은 단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교의(敎義)가 아니라 하나의 사실로 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아시아 위기의 “고통”이 아시아 전반에 걸쳐 확산됨에 따라,
신자유주의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정치적 반격이 가해질 수 있다. 아시아 위기
가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화할 것인지 혹은 약화시킬 것인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끝으로, 아시아 성장률에 대한 대부분의 예측은 앞으로 수년 간 급격한 저하
를 예고하고 있다. 아시아 위기는 1998년의 세계 소득성장에 대한 일치된 예측
치에서 1%만큼 이미 감소시켰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아시아의 성장률이 세계
의 감탄을 불러일으켰을 때에조차, 세계 총수요는 전 세계적 실업의 증가를 중
지시킬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완만하게 증가하였고 부진했다. 만약 아시아의 성
장이 상당한 기간 동안 낮아진다면, 전 세계 근로민중에게 경제적 참화를 가져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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