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9일 37층에서 취침중 오전4시경 갑자기 “비상! 비상!”이라는 남자직원 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신발을 신고 복도를 나와 구호를 외치며 노동가 를 불렀고, 남자직원들은 비상구를 열심히 봉쇄하고 있었다. 공권력이 침투될거 란 사실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겁이났다. 복도안에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자욱했으며 메케한 냄새가 진동하고 눈이 매워 앞도 잘 보이지 않아 무서웠다.

하지만 남자직원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비상구 봉쇄에 힘쓰며 여직원들을 안 심시켰고, 담요나 비닐 등 문을 막을 수 있는 천과 각종 집기들을 문쪽에 세우 며 방어막을 열심히 쌓고 있었다. 간간이 빈틈 사이로 공권력쪽에서 뿌리는 소 방수에 카펫이 젖었으며 어떤 남자직원들은 온 몸이 흠뻑 젖었다.

긴박한 상황이 오고가는중 갑자기 폭탄소리가 나더니 카펫위로 불길이 확 일 며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화재로 질식사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남자직원이 서있는 바로 앞에서 터졌으며 그 광음에 남자직원들이 놀랐 다. 모두들 긴장과 흥분속에서 일분일분 힘겹게 싸워갔다. 모두들 날이 밝으면 공권력이 철수할 것이라며 우리모두 날 밝을 때까지만 열심히 사수하자며 다짐 했다. 날은 점점 밝아왔지만 경찰들은 철수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압박해 왔다.

불길이 확 일며, 매운 공기와 자욱한 흰 연기가 나는 최류탄 같은 것을 발사 해 왔다. 그때마다 바닥층은 흔들렸으며 공포감은 더욱 심해져갔다. 하지만 남자직원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여직원들을 보호해주고 격려해줘 아주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이라 숨쉬기가 곤란했다. 어쩔 수 없이 그때부터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전부 깰 수도 있었으나 필요한 만큼만 깼다. 공기가 통하니 조 금은 살 것 같았다.

오전6시경, 그때까지 복도에서 구호를 외치던 여직원들은 모두 깨진 유리창쪽 으로 다가가 구호를 외치며 바닥 카펫위에 깔렸던 비닐을 창밖으로 늘여뜨렸다. 우리가 위험에 처해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기에 종이를 찢어 밖으로 날리기도 하고, 종이비행기를 접기도 하고, 휴지를 풀어 늘어뜨리기도 했다. 붉은 테이프 로 SOS를 유리창에 썼으며 붉은 수건을 매어두기도 했다. 건너편 삼성화재 건 물 옥상에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숨쉬기 위해 유리창을 깼다

그러나 밑의 사람들이 다칠만한 건 절대 던지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떨어뜨렸을때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칠만한 유리나 무거운 물건은 절대로 창밖으로 던지지 않았다.

그러기를 2시간 정도 했을까… 오전 8시경 갑자기 한쪽 비상구쪽에서 6∼8발 정도의 사과탄 같은 폭탄이 연발로 터지면서 카펫쪽으로 불길이 확 일었다. 모 두들 잔뜩 겁이 났다. 순간 남자직원이 여직원들에게 한쪽 벽면으로 엎드리라고 했다.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와!’ 하는 소리와 함께 경찰병력이 우르르 들어왔 다. 무서웠다 누군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여직원만은 때리지 마”

곤봉과 쇠파이프로 바닥치는 소리, 사람 때리는 `퍽!퍽!’ 소리가 나며, “모두 고개숙여! 고개드는 것들은 이 몽둥이로 대가리 맞을 줄 알아” 하면서 우리를 한쪽으로 몰아 무릎을 꿇게했다. 그때 남자직원들이 “여직원만은 절대 때리지 마”라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너무 무서웠다. 그 소리를 들은 경찰은 “이 새끼야 너 죽을라고 환장했어? 너 나 고개숙여 이 새끼야” 하면서 쇠파이프로 무지막지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얼 마나 때렸는지 그 직원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경찰은 우리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남자직원들을 군화발로 차고, 방패로 내려 찍고 쇠파이프로 얼굴·목·등·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여기저기서 푹푹 꼬 꾸라졌으며 반항하는 남자직원의 목소리도 간혹 들렸다. “나랑 눈 마주치는 것들은 내가 그 눈깔 후벼파주겠어!” “이 씨발놈들아 내가 너희들 때문에 잠 한숨 못자고 새벽부터 이 짓하고 있어. 개새끼 씨발놈들 같으니라고” 하면서 분이 안풀렸는지 앞에 있던 남자직원들을 또 때리기 시작 했다. 그때부터 입에도 못 담을, 생전 들어보지 못한 욕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개숙이고 있던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벌레만도 못하다는 생 각이 들었다. 그때의 모멸감, 치욕감이란 그 상황에 없었던 사람은 절대 느끼지 못했으리. 이들이 진정 우리와 같은 국민인가. 이들에게 누가 민주경찰이며 민 중의 지팡이라고 했던가. 치욕과 혼돈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TV에서나 봤던 광 주사태가 떠올랐다. 지금은 2000년이지만 그날의 상황은 80년대 그대로였다. 우리는 진짜 방어할 만한 몽둥이도 없었고 모두들 얇은 옷을 입고 있었을 뿐 이었다. 순간 이 상황이 싫은 것 보다, 롯데가 싫은 것 보다, 우리나라가 싫었 다. 그리고 5·18 광주사태를 거친 김대중 대통령이, 공권력에 맞아 아직도 다 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김대중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정말 알 수 없었고 분 하기만 했다.

기자들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어떤 욕설도 폭력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솔개부대 철수!”라는 외침이 들렸고, 뭔가 후다닥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들과 함께 후레쉬가 막 터졌다. 대장같은 사람이 “야, 니들 미쳤어! 곤봉 뒤로 안치워! 너희들 영창가고 싶어 환장했어!” 라고 소리를 쳤다. 아마 기자들을 의식하고 전경들의 과진압을 중단시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떠한 욕설도 폭력도 없었다.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피흘리는 우리를 쳐다볼뿐 이들이 진정 같은 국민인가?

기자가 들어와 사진을 찍으며 1시간가량의 공포스런 시간은 조금은 덜 해졌 다. 우리들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모두들 다리에 경련이 일었으며, 화장실이 급했다. 또 너무 맞아 머리가 찢어져 피가 줄줄 나는 사람, 최류탄 파편에 다리를 찔 려 피가 흐르는 사람, 등허리를 쇠파이프로 맞아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사 람, 장애인 등록증을 보이며 때리지 말라고 애원했음에도 무자비하게 맞아 호흡 조차 곤란해하던 아저씨, 머리에 혹이 주먹만하게 난 아저씨…. 너무너무 무서 운 광경이었고 붉은 피들이 얼굴에서 다리에서 팔에서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비규환이었다.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석처럼 가만히 서서 피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우리를 그냥 응시하고 있었다. 오전9시경 모든 상황은 종료된 듯했다. 경찰은 짐승 잡듯이 부상당한 사람들 의 옷을 잡고 질질 끌어냈다. 우리는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2열로 어깨 동무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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