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 태 > ■
농사꾼과 공공의료 – 농촌에서 공공의료를 다시 생각한다
어느 농촌의 한의사가
시골 한의원을 찾는 환자의 80% 이상은 관절염이나 요통같은 만성적인 운동계
질환을 호소한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들의 등뼈가 과도한 노동으로 주저앉거나 활처럼
휘고 비틀어졌으며 무릎관절을 비롯해 관절이란 관절은 다 닳아서 변형되어 있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몸으로 계속되는 농사일을 감당하고 있
다는 사실에 놀란다.
농촌 살림이 곤궁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거니와 설사 찾더라도 그들은 더 이상 농사꾼이 아니다. 농사꾼들은 거
의 대부분 50-60대 중장년층이며, 그 이상의 노인네들뿐이다. 30년 이상을 농
사일에 매달려 온 그들의 육체가 어찌 정상적일 수 있겠는가.
과도한 농사일에 더불어 시원찮은 먹거리에 매일 들이키는 막걸리나 소주,
그리고 치명적이게는 농약까지. 사실 이런 몸에 농사일은 계속되니 그들은 마
냥 진통제나 스테로이드를 지니고 산다. 오장육부가 다 썩어 문드러져 버렸어
도 그들은 그 수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병원비도 시원찮으니 오죽하겠는
가.
시골 보건소들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곳 사람들도 보건소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몇몇 사
람들이 약국 대신 보건(지)소에서 혈압약을 타거나 급할 때 감기약쯤 이용하는
것, 이것이 거의 전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건소를 탓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 무한경쟁에서 낙
오한 의사쯤으로나 여기는 사회적 시선도 그렇고, 법과 제도적으로 전염병이나
예방하고 파리 모기 구제나 하고 혈압약이나 가끔 나눠주거나 어린애들 예방주
사를 놓는 것 말고는 그들이 의욕적으로 이곳 농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일
을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시골 병의원이나 한의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곳도
먹고 살아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아야 한다. 무한경쟁은 이곳 역시 예외
일 수 없다. 시골 의원들이 어쩌면 더 심하게도 환자유치를 위한 전쟁을 치르
며 살아간다. 3,200원의 치료비로 무엇을 어떻게 해줄 수 있겠는가. 또다시 그
들에게 진통제와 스테로이드를 처방하고 만다.
이같은 현실에서 과연 공공의료란 무엇일까.
보건소 시설을 좋게 하거나 서비스의 질을 놓이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일 수
있겠다. 그나마 농부들이 지출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오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망가진 육체를 붙들고 또다시 논과밭으로 그들을 내모는 농촌의 현실 – 사회
적 현실 말이다.
농촌 말살정책에 한없이 우롱당하고 희생당하기만 하는 배고픈 농촌의 현실
이 그들이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게 하고 치료받고 싶어도 그리 못하게 한다.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누가 농사일을 할 것이며 누가 공짜밥을 주겠는가. 동토
의 땅 농촌의 현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만이 농사꾼들의
‘공공의료’가 아닐까 한다.
또한 중요한 것이 있다. 농사꾼들이 업보처럼 짊어지고 사는 만성질환과 수
십년의 농사일로 망쳐버린 육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
다. 노동자들처럼 그들의 육체도 사회적인 비용으로 복구가 되어야 한다. 농사
꾼들에게도 직업병과 산업재해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들의 육체적인 고통이 개개인의 책임으로 한정되서는 안 된다. 그들의 육
체가 수십년간 우리 모두의 먹거리 생산을 위해 망가져 버린 것이라면 당연하
게도 이 사회가 그들의 최소한의 건강과 생존을 걱정해 주고 대책을 마련해 주
어야 한다.
농민들에 대한 직업병과 산업재해의 인정, 그들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사회
적인 책임,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농촌에서 ‘공공의료’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
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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