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라운드 유감 ­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이창근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지난 10월 6일에서 8일까지 ‘금융위기·금융의 세계화 및 시민사회의 대응’이라는 화두로 대구라운드가 진행되었다. 해외에서는 금융시장 지배에 맞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 ‘쥬빌리(Jubilee) 2000′, ’50년이면 충분하다(50 Years is Enough) 네트워크’ 등 40여명 이상의 사회단체 활동가 및 교수들이 참석하였다. 국내에서는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참여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총’, ‘금융노련’ 등 노동조합에서 참여하였다. 대구라운드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진 주제들은 외채 문제, IMF로 대표되는 국제금융기구의 문제점과 개편방향, 국제투기자본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모 일간지에 ‘대구라운드 유감’이란 기사가 실렸듯이, 참가자들은 상호간의 경험 교류, 공동의 행동 기반 마련이라는 본래의 취지와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껴야 했다. 한번의 회의에서 얼마나 많은 내용이 교류되고 공유될 수 있겠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전제한다고 해도, 대구라운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내외 논의와 사회운동의 경험을 발전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채 말 그대로 ‘선언’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대구라운드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외채’ 문제와 관련된 논의들을 살펴보자. 대구라운드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기획되었다. 그것은 외채위기를 극복함에 있어서, IMF식으로 채무자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가 동시에 지적되어 쌍방통행형의 건전한 국제외채질서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구라운드 선언문에서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을 벌이고 있는 ‘쥬빌리2000(Jubilee 2000)’ 캠페인에 대한 지지”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 귀결은 현재 외채탕감운동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 및 분화경향이 간과된

것이다. 현재 ‘쥬빌리 2000’ 남반구 네트워크와 ‘쥬빌리 2000’ 북반구 네트워크와 상당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북반구 ‘쥬빌리 2000’ 캠페인이 외채 자체의 ‘탕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면, 쥬빌리 남반구(Jubilee South) 네트워크에서는 ‘외채’ 위기를 낳는 조건 자체의 극복, 즉 저발전, 해외투자자에 대한 의존 및 그것에 의한 지배구조 자체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남반구 정부들이 외채 상환의 과정에서 민중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면서, 외채탕감운동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G7/8 정상회담에서 극빈국에 대한 외채탕감-그러나 그 대가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결의 이후, 쥬빌리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에는, 그에 대한 평가와 외채탕감운동의 방향에 대한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대구라운드에 필리핀을 중심으로 한 ‘외채탕감운동연합(Freedom from Debt Coalition)’과 ‘쥬빌리 남아공’ 활동가가 ‘쥬빌리 북반구’와 함께 참여한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상호간의 주장들이 교류되고 토론되지 못한 채, ‘외채탕감운동으로서 쥬빌리 2000 캠페인’에 대한 지지로 결론지어진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결론은 대구라운드가 본래의 취지에서 제기하고 있는 ‘채무자·채권자 쌍방책임론’, 즉 “외채를 갚기 위해서는 갚을 수 있는 채무자의 모럴헤저드와 함께 채권자의 모럴헤저드가 함께 개선되야 하고 쌍방책임에 의한 건전한 외채상환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즉, 불건전한 외채에 대한 탕감을 주장하면서, 외채탕감운동을 ‘건전한(!) 외채상환운동’과 연결지어, ‘쥬빌리 2000’ 캠페인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쥬빌리 남반구가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의 ‘외채’ 문제는 ‘갚느냐 마느냐’라는 ‘모럴’의 수준을 넘어, 그것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조건들과의 연관 속에서 사고하지 않으면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자본자유화와 국제투기자본-진상과 대책’이란 라운드도 비슷한 한계를 노정하였다. 대구라운드 선언문은 “국제투기자본에 대한 일국적·지역적·국제적 통제의 촉구”라는 다소 앙상한 표현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금융의 세계화 시대에 ‘투기자본의 규제 필요성’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심지어 97년 동아시아 외환·금융위기 이후, 자본가들조차도 헤지펀드의 무차별적인(!) 투기활동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제로 상정하여 논의하고 있지 않는가? ‘투기자본 통제’의 필요·필연성은 현재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일정한 동의를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가, 그를 위한 어떠한 운동 전략이 필요한가이다. 물론 대구라운드에서 이러한 주제들이 완벽하게 토론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현재 국제투기자본 통제 캠페인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이나, 캐나다의 ‘할리팍스이니셔티브(Halifax Initiative)’ 등 해외 네트워크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 경험, 한계 등을 교류하고 공유하는 것은 가능하고 필요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히 캐나다와 같은 경우 의회에서 ‘토빈세 도입에 대한 지지 선언’ 채택한 상황이어서, 캐나다 네트워크로부터 선언 채택과정에서의 쟁점, 시민사회의 개입전략, 현황 및 과제 등이 충분히 교류되고 토론될 수 있었다면, 보다 구체적인 투기자본 통제운동의 전략을 수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 투기 활동을 제도적으로 합법화시키고 보호해주는 각종 ‘투자자유화협정’에 대한 대응의 문제는 너무 간과되었다. ‘가변예치금제도’로 유명한 칠레가 미주대륙자유무역협정(FTAA)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그 제도를 유예시킨(의무예치금비율 0%)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 대책들을 불법화하는 투자자유화협정에 대해 대응하지 않으면, 이러저러한 투기자본 규제 대책은 자칫 탁상공론으로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대부분의 투자자유화협정에서는 “수익의 자유로운 회수와 자유로운 송금”을 절대적인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투기자본의 수익률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토빈세와 같은 통제 수단은 투자협정 및 자유무역체제와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구라운드에서는 이 문제가 진지하게 다뤄지지 못함으로써, 투기자본 통제를 위한 튼튼한 기초작업이 간과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한번의 회의로 어떤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대구라운드 역시 국제회의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대단히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많은 해외 단체들이 참여했음에도, 대구라운드가 그들이 스스로의 경험들을 충분히 발표하고 상대방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은 반드시 짚어져야 할 것 같다. 매 라운드마다 평균 15명 정도의 발제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5분∼10분도 안되는 시간에 ‘일방적으로’ 쏟아내야만 했다면, 어떠한 토론이 가능했겠는가?

규모보다는 내실을, 한번의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행동의 공유 장으로서 국제회의가 필요할 때이다. 더 나가서 최소한의 것이라도 공유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당장 우리 앞에는 밀레니엄라운드가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대구라운드 선언문에 표현되어 있듯이 “세계무역기구(WTO) 밀레니엄라운드 모라토리엄 지지”라는 입장이 행동으로 표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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