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권영길 /(가칭)민주노동당 상임대표
“놀고먹는 자들의 정치를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로”
1815년 지중해상 엘베섬에 유배돼있던 나폴레옹이 섬을 탈출, 그를 따르던 군대를 이끌고 파리로 진격해 가는 과정에 따라 바뀌어 간 파리신문의 보도태도는 권력에 대한 언론의 속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예로 자주 거론된다. ‘코르시카의 괴물, 주안만에 상륙’ ‘왕위찬탈파, 그르노블에 들어오다’ ‘보나파르트, 리옹점령’ ‘나폴레옹, 퐁텐블로에 가까이 오다’ ‘황제폐하, 내일 파리로 귀환예정’ 나폴레옹이 섬을 탈출했을 때 처음에는 폭압자로 부르다가 파리진격이 계속되고 가능성도 엿보이자 성명을 붙여줬고, 권력탈환이 눈앞에 드러나자 마침내 ‘황제폐하’라는 아부의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바로 우리 언론에서 숱하게 보아왔고 지금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떨어지기 어려운 관계다.
한나라당의 정형근의원이 ‘김대중정부의 언론탄압 실상’이라며 문건 하나를 폭로한 뒤 촉발된 여야의 공방이 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유지, 당리당략에만 눈이 멀어 벌이는 저질 정쟁이다. 언론도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주연인지 조연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태도로 이 저질게임에 신나게 뛰어들고 있다. 국민회의나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독립언론, 자유언론을 원한다면 언론노련이 언론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통합방송법’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을 입법화하는 길이다. 그러나 여야는 파업까지 단행하면서도 요구한 언론노련의 개혁법안을 외면했고 ‘언론대책문건’ 공방 속에서도 제도개혁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언론탄압’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임을 내거는 보수정치판의 공방이 정쟁이고 정쟁의 속셈은 다른 데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이것이 바로 보수정치놀음의 한 단면이다.
우리는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누가 이렇게 만드는가. 권력자들, 보수정치꾼들이다.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중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권력기관, 보수정치판이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더라도 “거짓은 거짓이고 진실은 진실이다”라는 것을 훤히 읽을 줄 안다. ‘언론문건’ 저질놀음 속에서 느닷없이(?) 고문경관 이근안이 자수했다. 그리고 검찰은 이근안의 도피행각 비호세력이 누구라는 걸 들추어내고 언론은 이를 또 요란하게 떠들어댄다. 새삼스러울 게 하나도 없는 내막이었다. 노동조합활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하다 수배를 당해본 사람이었다면 “이근안은 못잡는 것이 아니라 안잡는 것”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소위 ‘옷로비사건’이라는 게 터져 검찰이 요란하게 수사를 한다음 “사실은 이렇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사실’ 아닌 ‘그 사실’을 믿는 국민들은 없었다. 진형구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으로 “사실이라면 국기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라며 나라가 떠나갈 듯이 떠들썩했지만 민주노총 조합들은 늘상 당하는 일이었다.
정말 대혼란, 대혼돈의 시대다. 혼돈의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냉철한 자세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뒤가 뒤바뀐 가치를 분간 못하고 진실로 둔갑되는 거짓을 진실로 믿게 된다. 사이비 개혁과 진짜 개혁을 분간 못한다.
보수정치판은 절대 혼돈의 시대를 정리하지 못한다. 그들이 혼돈·혼란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치꾼에게 새로운 사회, 깨끗한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산에 가서 바닷고기를 잡겠다는 것과 같다. 썩어 빠진 세상을 바꾸려면 썩은 정치부터 바꿔내야 한다. 세상을 바로 잡을 주체를 다시 세우는 것만이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이 난국을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 중심의 정당 건설인 것이다.
떼지어 남의 재물을 강탈하는 불한당은 땀흘리지 않는 놀고먹는 무리(不汗黨)를 뜻하는 말이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로 설 때 평화와 평등세상이 온다. 그 길로 가는 민주노동당의 강화는 그래서 우리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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